[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2023년 계묘년의 해가 밝았다. 지난해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위한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2년 동안 잊고 있었던 일상이 조금씩 회복되면서 각종 사건‧사고부터 제도 변화까지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회복과 변화의 바람은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본지에서는 올해 방송계 이슈를 간략하게 짚어보고, 각각의 이슈들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살펴보고자 한다.
– 과방위 문턱 넘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방송법 개정안…앞길도 순탄치 않아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12월 2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안건조정위원회를 통과한 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공사법‧방송통신위원회 설치법 등 법률 개정안을 단독 의결했다.
개정안의 골자는 KBS 이사회, 방송문화진흥회, EBS 이사회를 사회 각 분야를 대표하는 21인으로 확대하고, 사장 선임 시 이사회 3분의 2 이상이 찬성토록 하는 특별다수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이사회는 21명으로 구성하되 국회 추천 몫은 5명으로 제한했다. 나머지는 △시청자위원회(4명) △지역 방송을 포함한 방송‧미디어 관련 학회(6명) △방송기자연합회‧한국PD연합회‧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등 직능단체(6명) 추천 인사로 구성토록 했다.
또한 사장 후보는 성별, 연령, 지역 등을 고려해 구성된 100명의 국민추천위원회가 추천하고, 선임 시에는 이사회 3분의 2 이상이 찬성토록 했다. 이렇게 되면 여야 7대4 구조의 KBS 이사회, 여야 6대3 구조의 방문진, 여야 6대3 구조의 EBS 이사회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국민의힘은 날치기 통과라며 반발하고 있다. 여당 간사인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날치기한 것처럼 민주당이 또다시 편법을 자행했다”며 “여당 시절 손 놓고 있던 방송법 개정안을 야당이 되자 손바닥 뒤집듯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야당 간사인 조승래 민주당 의원은 “안건조정위를 통과한 안은 국민의힘 박성중‧허은아 의원이 낸 법안의 내용도 담고 있다”며 “국민의힘 주장도 반영한 안인데 ‘민노총 방송법’이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은 안 했으면 한다”고 반박했다.
방송법 개정안은 법제사법위원회 논의를 앞두고 있다. 의석수에서 민주당이 우위에 서 있기 때문에 국민의힘이 믿을 건 사실상 법사위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인 김도읍 법사위원장이 제동을 걸면 방송법 개정안은 법사위 문턱을 넘기 어렵다. 물론 국회법에 따르면 법사위에서 이유 없이 60일 이상 계류된 법안은 상임위 재적 위원 5분의 3 이상 동의로 국회의장에게 본회의 부의를 요구할 수 있다. 과방위는 정청래 위원장을 비롯해 20명 위원 중 11명이 민주당 의원, 1명이 민주당 출신 무소속 박완주 의원이다. 마음만 먹으면 법안을 손쉽게 처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에 국민의힘은 대통령 거부권 행사 등으로 맞선다는 계획이기에 당분간 여야 대치 국면은 극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 ‘연임 의사’ 밝힌 박성제 MBC 사장…국민의힘 “수사 대비하라”
박성제 MBC 사장의 임기는 오는 2월 만료된다. 박 사장은 지난해 12월 1일 열린 창사 61주년 기념식에서 간접적으로 연임 의사를 밝혔다. 그는 “뒤에서 채찍질하는 보스가 아니라 맨 앞에서 이끄는 리더가 되겠다”며 “이번에도 굳건한 방파제가 돼 맨 앞에서 파도와 맞설 것이다. 합리적인 비판은 수용하되 부당한 간섭과 외풍은 철저히 막아내겠다”고 말했다. 이에 국민의힘 MBC 편파‧조작 방송 진상규명 TF(위원장 박대출)는 “연임이 아니라 수사를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방송문화진흥회는 차기 MBC 사장 선출 방식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는 12월 30일 발행한 노보를 통해 “핵심은 국민 참여를 어떻게, 얼마나 보장하느냐이다”라며 “그 어느 때보다 MBC를 향한 탄압의 강도가 거세진 현 상황을 감안하며, 공영방송 MBC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국민 참여 방식의 확대가 더욱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MBC는 지난 2017년 사장 선임 당시, 후보자들의 정책발표회를 인터넷으로 생중계하고, 이후 시민들이 온라인을 통해 질의한 내용을 모아 방문진 최종면접에 반영했다. 나아가 2020년에는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하고 실질적 의견 반영을 위해 연령‧성별‧지역 등 인구통계학적 기준으로 120명의 시민평가단 선정까지 마쳤으나 코로나19 확산으로 정책발표회가 취소되면서 국민 참여가 무산됐다.
업계에서는 앞서 방문진이 한 차례 박 사장을 재신임했기에 연임을 추인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에 박 사장의 연임을 막을 수 있는 건 검찰 기소밖에 없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오고 있어 MBC 사장 선임에 많은 이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 7월 임기 만료 앞둔 한상혁 방통위원장
자진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의 임기는 오는 7월 만료된다. 한 위원장은 여러 차례에 걸쳐 사퇴 압박을 받았지만 임기 완주 의사를 밝혔다. 지난해 12월 열린 송년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도 “5기 방통위에서는 몸에 맞지 않는 규제를 바꿔 입고 합리화하는 것이 방향성 중 하나였다”며 “많은 일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했다. 5기 남은 기간 성과를 되돌아보고 목소리를 기울이는 것이 남은 기간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방통위는 대통령 소속의 중앙행정기관이지만 방송의 독립성 보장을 위한 독립된 기구로 규정돼 있다. 5인의 방통위원 중 위원장을 포함한 2인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3인은 국회의 추천을 받는다. 결과적으로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3인, 야당이 2인을 추천하는 구조다.
오는 7월 5기 방통위원의 임기가 만료되면 현 정부에서 추천을 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방통위 내 세력 구도가 역전된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방통위의 방송 정책 추진 방향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또한 현재 방통위는 KBS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추천 및 감사 임명을 담당하고 있고, EBS 사장‧이사‧감사 임명을 맡고 있는데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관련 방송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 여부에 따라 많은 부분이 달라질 수 있어 이 과정에서 또 한 차례 파장이 일수도 있다.
– 수신료 현실화는 언제쯤
수신료 2,500원. 1963년 1월 100원으로 출발한 수신료는 1981년 4월 2,500원으로 오른 뒤 40년 넘게 2,500원에 머물러 있다. 수신료 금액은 KBS 이사회가 심의 및 의결한 뒤 방송통신위원회를 거쳐 국회의 승인을 얻어 확정하고 있다. KBS는 지난 2007년, 2011년, 2014년 세 차례에 걸쳐 수신료 인상을 추진했으나 국회 승인을 받지 못해 좌초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역시 갈 길이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 2021년 12월 방통위는 KBS 이사회가 제출한 텔레비전방송수신료 조정(안)에 대한 의견서를 심의‧의결한 뒤 국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앞서 KBS 이사회는 현행 월 2,500원을 3,800원으로 올리는 인상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수신료 인상은커녕 한동안 잠잠했던 수신료 분리 징수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나아가 수신료 폐지까지 언급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국민의힘 미디어특별위원회는 지난해 7월 ‘프랑스 공영방송 수신료 폐지 하원 통과에 부쳐’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 “프랑스 하원이 공영방송 수신료를 폐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영국 정부도 공영방송인 BBC의 수신료를 2028년 무렵에 폐지한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수신료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과방위원장은 “수신료는 40년 전에 2,500원 당시 신문 한 달 구독료로 결정했다. 지금 한 달 신문 구독료가 2만 원 정도 한다고 한다”며 “2만 원까지는 못 올리더라도 어찌됐든 현실화하는 것이 맞다”며 맞받아쳤다. 정 위원장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마련해 주고 공영방송이니깐 방송의 중립성‧공정성을 잃지 마라 그것을 감시하겠다. 이렇게 하는 것이 일머리를 아는 사람들의 말”이라고 덧붙였다.
수신료 조정안이 국회 임기 종료로 폐기되는 상황이 반복되자 학계에서는 수신료위원회를 설치하고 조정안 처리 기한을 설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 속도 낸 ‘YTN 민영화’ 그 결과는
YTN 민영화를 위한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보도전문채널인 YTN은 지난 1993년 연합뉴스 자회사인 연합TV뉴스로 출범해 1999년 YTN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2020년 12월 기준으로 YTN의 지분율은 한전KDN 21.43%, 한국인삼공사 19.95%, 미래에셋생명 14.98%, 한국마사회 9.52%, 우리은행 7.40%, 우리사주조합 0.20%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11월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YTN 지분 전량 매각 내용을 담은 자산 효율화 계획을 의결했다. 이는 각 공공기관이 제출한 자산 효율화 계획을 정부가 승인한 것으로, 한전KDN이 보고한 YTN 지분 21.43% 매각안과 마사회가 제출한 YTN 지분 9.52% 매각안을 수용한 것이다.
이후 한전KDN은 11월 23일 이사회를 열어 보유 중인 YTN 지분 21.43%를 매각하는 안을 의결했다. 지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획득한 YTN 지분을 25년 만에 매각하게 된 것이다. 마사회도 12월 21일 이사회를 열어 YTN 지분 전량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해당 지분을 한 기업이 사들이면 YTN 대주주로 등극하게 된다.
더불어민주당과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 한전KDN 노동조합 등은 “YTN 사영화는 언론 장악의 외주화”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YTN 역시 정부의 일방적인 추진에 유감을 밝혔지만 YTN 민영화를 위한 속도를 줄어들지 않고 있어 YTN을 둘러싼 혼란도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불 지핀 ‘지상파 소유 제한 기준 완화’
현재 자산총액 10조 원 이상의 기업집단은 지상파 방송사의 주식 또는 지분을 10% 이상 초과할 수 없다. 이에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 9월 대기업 소유 제한 규정을 위반해 SBS M&C 주식 40%를 소유한 SBS에 시정명령을 받은 날로부터 6개월 이내 위반사항을 시정할 것을 의결했다.
SBS의 모기업인 태영은 지난해 5월 1일 자산총액 10조 원 이상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됐고, SBS는 방송광고판매대행사인 ㈜SBS M&C의 주식 40%를 소유하고 있다.
SBS를 비롯해 방송계에서는 방송법 시행령상 대기업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방송협회 역시 지난해부터 꾸준히 지상파의 소유규제를 경제성장과 물가상승률에 맞춰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SBS에 따르면 공기업을 제외한 자산총액 10조 원 이상 기업 수는 2008년 17개에서 2021년 47개로 176% 증가했고, 자산총액 20조 원 이상의 기업도 12개에서 17개로 42% 증가했다.
SBS는 9월 20일 입장문을 통해 “방송법 시행령상 대기업 기준은 지난 2008년 10조 원으로 상향된 이후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채 그대로 유지돼 국내 미디어 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낡은 규제로 작용하고 있다”며 “K-콘텐츠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토종 콘텐츠 경쟁력을 약화하는 역차별 규제라는 지적이다.
방통위 시정명령을 따라 SBS가 자산을 매각할 경우 일본 기업이 M&C 최대주주로 올라서게 된다. SBS는 “SBS의 M&C에 대한 의결권이 10%로 제한돼 국내 기업을 크게 상회하는 일본 대기업 제이컴(J:COM)이 아무 제한 없이 M&C 최대 주주 지위를 차지하게 되는 역차별적 상황에 직면했다”며 “우리나라처럼 자산 규모를 기준으로 기업의 지상파 방송 진입 여부를 판단하는 규제는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 세계로 뻗어나가는 K-콘텐츠
2022년은 ‘K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활약한 해였다. ‘오징어게임’은 비영어권 작품의 볼모지로 여겨졌던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상 ‘에미상’ 6관왕을 차지했고, 칸 국제영화제에서는 영화 ‘기생충’을 제작한 박찬욱 감독과 배우 송강호 등 두 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또한 국내 방송과 동시에 OTT에 공개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재벌집 막내아들’ 등은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에 영상 콘텐츠 업계에서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선 세액공제 제도 개선 등 정부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한국방송협회는 “해외 거대 사업자들이 벌이고 있는 치킨게임 속에서 국내 콘텐츠 사업자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해외 주요국 수준으로의 세액공제율 인상이 절실한 상황이고, 외주비율 규제를 적용받는 지상파의 경우 직접 제작 대신 외주사를 통해 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상파의 투자 혜택이 시청자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기 위해선 방송사의 투자 금액도 세액공제 대상에 포함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뒤 “기업의 매출액 규모에 따라 차등적인 공제율을 적용하고 있는데 영상 콘텐츠 제작에 투입되는 비용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경우 대기업에 대한 차별도 정상화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2023년 방송계에서도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하지만 각각의 이슈를 대하는 여야의 온도차가 뚜렷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제기된 쟁점 하나하나 다 정치권, 언론사, 언론 종사자, 시민사회단체, 학계 등의 입장이 충돌하고 있다. 자칫 잘못하다간 언론 및 방송계가 정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수 있다. 다양한 입장과 이해관계가 있지만 건설적 논의를 통해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한해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