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흰 소의 해 방송계 이슈

[신년특집] 2021년 흰 소의 해 방송계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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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1. 전국언론노동조합, 한나라당 언론관계법 저지 총파업 재개 (2009.02.26.)

전국언론노동조합은 “한나라당이 언론장악 7대 악법을 포기할 때까지 언론노조 전 조합원은 언론악법 관련 보도와 제작을 제외한 모든 업무를 거부한다”고 선포하고, 대기업의 방송 진입 허용, 신문의 방송교차 소유 등을 내용으로 하는 이른바 ‘미디어법’을 저지하기 위한 총파업을 2008년 12월 26일 새벽 6시부터 시작했다.

이 파업에는 MBC, SBS, CBS, YTN 등의 방송사와 부산일보, 대구매일신문, 경인일보 등의 지방 주요 12개 신문사와 한겨레, 경향신문 등이 한나라당의 언론관계법의 문제점을 집중 보도하는 지면 파업을 벌였다. 많은 시민단체의 지지도 받아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산하 금융노조는 “파업을 지지하고 관련 법안의 강행 처리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냈으며, 참여연대,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언론개혁시민연대,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한국PD연합회, 여성단체연합,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민주언론시민연합 등도 파업을 지지하며 언론관계법 개정 폐기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후 2009년 1월 8일 파업을 잠시 중단했지만, 방송법이 상임위원회에 상정된 다음 날인 2009년 2월 26일부터 더욱 강력하게 파업을 재개했다.

2. YTN, 전면 HD 방송 개시 (2009.07.01.)

◆ 1997년
1. 정부, 지상파방송 디지털 전환 발표 (1997.02.)

1997년 2월 당시 정보통신부(현 방송통신위원회)는 국내 디지털 텔레비전 및 FM 방송의 디지털화 계획을 발표했다. 이후 3월 지상파 DTV 방송 방식을 결정하기 위해 지상파 디지털 추진협의회를 구성했으며, 8월 공청회를 개최했다. 미국의 ATSC 방식과 유럽의 DVB 방식을 두고 검토 중 11월 미국 ATSC 방식을 채택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 ATSC 방식은 이동수신이 어려웠고, 결정 과정에서도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 그리고 시민사회단체가 주축이 돼 우리나라 환경에 맞는 전송 방식을 결정하기 위한 비교 시험을 주장했으나 정부에서는 이미 결정한 방식을 고수했다.

2. 2차 지역 민방 개국
1997년 2차 지역 민방인 UBC 울산방송, JTV 전주방송, CJB 청주방송이 개국했다.

3. YTN, 연합통신에서 한전정보네트워크로 대주주 변경 (1997.12.01.)

1995년 개국 이후 운영난을 겪던 YTN은 1997년 IMF 사태를 맞으며 더욱 더 어려움에 빠진다. 당시 YTN 지분 30%를 보유하고 있던 연합통신은 우여곡절 끝에 8월 27일 한전정보네트워크(현 한전KDN)와 230억 원의 합의에 이르면서 YTN의 대주주는 연합통신에서 한전정보네트워크로 변경됐다.

◆ 1985년
1. KBS, 대우통신과 전자교환기 설립공사 계약 (1985.08.)
1982년 11월 9일 제24회 올림픽 개최지가 서울로 결정되면서 올림픽 주관 방송사인 KBS는 통신망 현대화 사업을 시행한다. 이에 1985년에 이르러 대우통신과 전자교환기 설립공사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 전자교환기는 전 방송국을 상호 톨 다이얼(Toll Dial)로 호출하고 전 방송 시설의 즉시통화와 사무 자동화 및 개별로 즉시 연락망을 구축하는 것으로, 기존 기지국을 중심으로 교환망이 구성되도록 했다.

◆ 1973년
1. KBS 창립 (1973.03.03.)

국영방송이었던 KBS는 1972년 12월 ‘한국방송공사법’을 제정하면서 본격적으로 공영방송 체제를 기획하게 된다. 이후 1973년 3월 1일 방송국의 운영처가 국영방송에서 공영방송으로 바뀌고 3일 지금의 한국방송공사가 창립됐다.

2. 석유파동으로 평일 및 토요일 아침 방송 중단 (1973.12.03.)
석유파동의 여파로 1973년 12월 3일부터 평일 및 토요일 아침 방송을 중단했다. 이는 1981년 5월 24일까지 7년 7개월간 지속됐다.

◆ 1961년
1. MBC 창립 (1961.02.21.)

부산 지역의 유력 재벌이었던 ‘조선견직’의 사주 김지태는 1961년 2월 21일 서울민간방송을 설립 등기한다. 이후 몇 차례의 변경 후 10월 10일 사명을 한국문화방송으로 결정하고, 12월 2일 MBC 라디오방송이 서울에서 호출부호 HLKV, 주파수 900kHz, 출력 10kW로 개국하면서 본격적인 상업 라디오방송 시대를 열었다.

2. 대한민국 첫 TV 방송 개시 (1961.12.31.)

1961년 12월 31일 저녁 7시 30분 남산연주소에서 서울텔레비전방송국이 첫 전파를 쏘아 올렸다. 같은 날 오후 9시 KBS-TV 개국식 실황이 중계되면서 한국 TV의 역사가 시작됐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TV 방송이 이뤄진 것은 1956년 5월 16일 HLKZ-TV였지만, 이는 시험 방송이었다.

호출부호 HLCK, 국명 서울텔레비전방송국, 호출 명칭 KBS-TV, 채널 9, 영상 출력 2kW, 음향 출력 1kW, 영상 주파수 817.25MC, 음향주파수 191.75MC로 개국과 동시에 첫 방송을 개시했다. 그러나 군사 정부의 주도하에 정부의 대변자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