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은 방송업계 종사자로 살아가고 있는 필자와 지인들에게 많은 것을 남기고 떠나가 버렸다. 만족보다는 아쉬움이 많았던 한 해이자, 새로운 씨앗이 도처에서 잉태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지켜보고, 한숨 쉬기를 되풀이한 한 해이기도 했다. 이글에선 기술적인 요소의 나열이나, 시장에서 흔히 얘기하는 IPTV, 아이폰, 구글 같은 애기를 한마디도 하지 않고 현재의 흥미로운 변화와 그 트렌드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자 한다. 필자가 여러분의 시간을 낭비하는데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2009년은 한마디로 새로운 서막을 알리는 미디어 테크놀로지 사상 여명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트렌드를 반증하는 몇 가지 현상을 나열해본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터넷 미디어의 사회일반 주류화를 보여준 소셜미디어의 영향력 확대, 둘째 모바일 미디어 디바이스 전성시대의 개막, 셋째 심화되는 미디어 소비행태 파편화에 따른 기존 매체시장 와해 가속화 등이 그것이다. 이렇게 쓰면 너무 거창하게 느껴져서 페이지를 넘길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이제 본론으로 가자.
국내에서보다 새로운 미디어 시장의 변화 양상은 해외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2009년 연말을 장식한 주목할 만한 두 가지 사건이 전세계 영어문화권에서 벌어졌다.
2007년 미국 미네소타주 오완타나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며, 코카콜라 창고에서 일하던 아담 영(Adam Young)이란 한 청년이 불면증을 이기기 위해서, 지하실에 꾸민 자기만의 스튜디오에서 만든 유로풍 신스팝(synth pop) 노래 “Fireflies(개똥벌레)”를 myspace.com에 올렸다. 이 작은 행동이 2009년 11월 7일자 미국 빌보드 HOT 100 차트 1위로 이어진 것이다. (미국에서 빌보드 차트 1위 했다고 사기행각을 벌인 JYP의 원더걸스와는 무관하다. ^^) 물론, 2009년에 나온 앨범은 메이저 레이블을 통해서 발매된 것이었지만, 그의 노래는 이미 myspace.com을 통해서 500만 페이지뷰를 달성하였고, youtube, twitter 등 기타 소셜네트워크 사이트를 통해서 소비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재생산 된 결과였다. 국내에서는 이미 SKT의 멜론 서비스가 100위 차트 서비스를 하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인터넷 음원을 통해 인기를 누렸던 조PD 이후, 이렇다할만한 진화된 모습은 나타나고 있지 않고, 계속 SM엔터테인먼트, 양군패밀리, JYP 등의 소속사 연습생들이 데뷔하고 있을 따름인데 말이다. 마치 사교육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보는 듯하다. 두 가지 프로세스의 차이는 극명하다. 하나는 마스터들에 의해서 조작된 시장경쟁이고, 하나는 자발적으로 진화한 시장형성인 것이다.
한편, 크리스마스 바로 전 일요일에 발표되는 2009년도 영국 크리스마스 차트에선 그간 영국의 큰손 기획자인 사이먼 코웰(Simon Cowell)이 이끄는 X-Factor라는 신인스타 발굴 프로그램(2010년 극장가를 강타하고 있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Avatar라는 3D 영화에도 X-Factor출신의 여가수 레오나 루이스가 엔딩 주제가를 부르고 있다)의 독주를 막고, 아이돌의 인기차트 독식을 잠재우자는 소셜미디어 사이트 facebook.com 이용자 부부의 별로 진지하지 않은 외침이 1992년에 발매된 RATM(Rage Against The Machine)이란 골수좌빨 밴드의 냉소적인 곡 ‘Killing In the Name’ (이곡엔 실제로 욕설이 가득하다)을 당당하게 1위로 올려버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사이먼 코웰이 내뱉은 facebook.com 캠페인 페이지 비난 내용이 알려지자 곧바로 이 캠페인은 폴 매카트니 같은 기성 뮤지션들까지 합세하는 폭발력을 자랑하며, 1백만 명의 가입을 불러내고 RATM의 싱글 CD를 구입하는 열혈 운동으로 번지고 말았다. 하루 전인 토요일까지도 RATM의 싱글은 X-factor 출신의 신인 남성가수 보다 1만장 뒤진 판매량을 보였지만, 단 하루만에 5만2천장을 앞서는 성적으로 1위에 올랐다. 이러한 현상이 비단 영국에서만 일어나는 해프닝으로 끝날 일은 아닐 듯 싶다. 국내에서도 워낙 짧아진 음반 라이프사이클과 불법복제 덕분에 CD 1만장에서 3만장을 팔면 1등을 할 수 있다는 얘기가 들려오고 있다. 이 정도 분량이라면, 방송국 직원과 가족, 친지들이 한 장씩 사도 1등을 만들 수 있다는 웃지 못 할 현실이 아닐까 한다. 이제 기득권 세력이 그 권력을 소비자에게 다시 돌려줘야 할 시점이 도래하고 있는 신호탄이 아닐까 한다. 그들이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필자가 연구소를 떠나 현업에 들어와서 목격한 것은 위의 두 가지 사건이 주는 약간 동떨어져 보이는 현실감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공포감을 피부로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현장의 우리들은 애써 그것을 외면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모두 몰라서가 아니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방송산업 자체의 운명은 엔터테인먼트 사업과 광고 사업의 트렌드에 따른다고 보는 것이 2010년이라는 새로운 시기에 대한 예측을 간단명료하게 만든다. 앞에서 다룬 것처럼 엔터테인먼트 사업 자체는 전세계적으로 권력이동 내지는 시스템 해체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새로운 질서가 나오더라도 전체적인 산업의 행방은 중앙집중적인 대량생산보다는 소량 다품종화로 획일성을 벗어나 계속해서 파편화 되는 경향을 보이게 될 것이다. 국내 가요시장이 가장 들여다보기 쉬운 모델이 되고 있는데, 이미 팬들의 파편화 덕분에 다수 멤버로 맞춤 생산을 흉내낸 아이돌 그룹들이 양산되고, 라이프사이클은 매우 짧아져 있다. 평균 한 곡의 아이돌 그룹 신곡이 2~3개월이면 명멸을 마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경향이 드라마에서 나타난 모습을 보자면, MBC의 선덕여왕과 KBS의 아이리스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평균적으로 5명 이상의 주연 및 조연급이 출연하고 이들이 각각 서로 다른 팬그룹의 지지를 받고 있는 듯이 보인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상당히 빈익빈 부익부의 인기 구조를 갖고 있다. 그만큼 소비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피나는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인터넷을 통한 지상파 방송사 등의 홍보도 이제 그 형태가 완전히 달라졌다. 대부분의 방송사 웹사이트는 명목상의 방문용 역할 밖에 하지 못하고 있으며, 대다수의 시청자들은 새로 나온 방송 프로그램이나 인기 드라마 출연자의 정보를 대부분 네이버, 다음 등의 포털 사이트 검색에서 얻고 있다. 뿐만 아니라, 90년대 한때 인기를 누렸던 인터넷을 통한 유료 방송 프로그램 다시 보기도 이젠 포털의 검색을 연계하여 대부분 무료로 이뤄지고 있고, 일부 양성화된 불법 다운로드를 과금하는 방식으로 변모했다. 수익을 얻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노출을 늘이려는 쪽으로 방향이 바뀐 지 오래다. 인터넷 분야에서 만큼은 완전히 사업자의 서비스 주도권을 상실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시 정리해보면, 방송뉴스는 포탈을 통한 검색과 연계하여 광고를 조금 붙여서 무료로 제공하는 형태로 이뤄지고 있고, 나머지 연예, 오락, 드라마 등의 프로그램은 불법공유 웹하드 사이트를 통해서 사용자에게 강요되지 않는 유료(?)의 형태로 제공되고 있는 것이다. 전자를 광고를 이용한 무료, 후자를 소극적인 부분유료화를 통한 수익 모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둘 다 합쳐도 큰 돈은 되지 않지만, 노출을 늘이는 형태로 향한 점은 굳이 애써 변명할 필요가 없다.
반면, 통신사를 통한 인터넷 프로토콜 텔레비전 서비스에서는 거의 반강제적인 정부 시행 방안에 끌려 다니면서, 실시간 방송분과 다시보기 부분에 대해 완전한 개방이 이뤄져 버렸다. 물론 수익 측면에서는 상당히 까다롭게 수신료를 배분 받는 형태로 계약을 했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방송사업자는 완전히 PP로 전락한 꼴이 된 것이다.
방송사 입장에서의 현재 및 근미래에 있어서 먹을거리는 이제 몇 가지 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중 가장 큰 덩어리가 방송광고 매출이고, 그 다음이 각종 유료 방영권이다. 이 두 파이 덩어리들이 2009년 전세계를 강타한 경제 불황 속에서 매우 심각한 타격을 받은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방송광고와 직접적인 경쟁을 벌이고 있는 완벽한 미래의 대체제인 인터넷 광고의 현황을 들여다보면, 정말 올 것이 오고 있다는 생각 밖에는 안 든다. 2009년 인터넷마케팅협회가 집계한 인터넷 광고 매출을 보면, 검색광고는 2008년 8082억원 대비 5.0% 증가한 8488억원, 배너광고로 통칭되는 디스플레이 광고는 2008년 4787억원 대비 6.2%가 감소한 4490억원이 감소하였고, 이 두 가지를 합한 전체 인터넷 광고는 2008년도 1조2,895억원 대비 약 1%가 증가한 1조 2,978억원이 판매된 것으로 집계되었다고 한다. 자세한 집계는 2010년 1사분기가 지나봐야 나오겠지만, 지상파 방송사의 방송광고 매출은 2008년 대비 적어도 10%(20~30% 수준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이상의 감소세를 보이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광고주가 되는 기업들의 생리상 불경기 상황 속에서 광고의 비용효율을 높이기 위해서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무작위 노출보다는 특정소수에 대한 타겟광고가 메인메뉴인 인터넷광고 시장이 계속해서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이치이다. 이러한 현실은 인터넷 광고 속에서도 불특정 다수 노출형의 디스플레이 광고가 직접적인 감소세를 나타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광고주 기업의 광고 담당자가 회사에서 잘리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광고의 직접적인 효과를 명확한 수치로 보고할 수 있어야 한다.
유료방영권의 경우엔 꾸준히 국내외적으로 히트작 대비 매출이 상승하는 형국이다. 하지만, 흥행 산업의 특성상 비인기 프로그램의 판매는 늘 눈엣가시이다. 히트 프로그램이 계속해서 나오지 않는 방송의 속성상, 리스크를 제거하기는 사실상 불가능 하다. 투자대비 매출 비율을 늘이는 쪽으로 경비절감, 치밀한 사전 기획 등이 선행되고 있지만, 두 자리 성장을 한다는 다른 산업들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