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료 제도, 정치적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해”

“수신료 제도, 정치적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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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백선하) 공영방송 수신료 제도가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공영방송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재정적 검토보다는 정치적 상황 또는 정치적 갈등요소에 좌우되는 현행 수신료 제도로는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방송의 자유를 보장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지난 226일 한국언론학회 주최로 열린 공영방송 재정안정화 기대효과세미나에 발제자로 참석한 고민수 강릉원주대 법학과 교수는 수신료 인상여부에 대한 검토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영방송이라는 과제를 수행하는 데 소요될 재원이 얼마인지 그리고 그에 대한 보장이 충분히 이뤄지고 있는지가 돼야 하는데 현 수신료 인상 논의 과정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며 수신료 제도가 제도적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KBSEBS의 프로그램 제작과 운영에 쓰이는 공영방송 수신료는 월 2,500원으로 지난 1981년 책정된 이후 34년째 동결 상태다. 공영방송의 모델로 손꼽히는 영국 BBC의 연간 수신료는 246천 원으로 우리나라의 8배다. 일본 NHK도 연간 143천 원으로 우리나라의 약 5배에 해당한다.

이에 KBS는 지난 2007년부터 2014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수신료 인상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세 차례 모두 정치적 상황에 따라 논의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2007년에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방송인물 근대사같은 다큐멘터리의 이념성 문제가 불거져 국회 임기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고, 2011년에는 민주당 최고위원회가 도청됐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논의가 중단됐다. 2014년에는 같은 해 4월 발생한 세월호 참사보도와 맞물려 논쟁이 거듭되다 국회의 승인을 얻지 못한 채 또다시 폐기됐다.

고 교수는 헌법 제21조에 나와 있는 방송의 자유를 보장하는 주체가 국가인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방송의 자유를 국가의 이해관계에 종속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방송이 정치의 도구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선 적어도 수신료 인상 시기, 규모, 유효기간 등이 법률에 상세히 규정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수신료 제도로는 헌법적 정당성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제도 개선이 필수라는 것이다.

고 교수는 독일의 공영방송소요재원조사위원회와 같은 수신료산정위원회의 설치를 제도 개선 방안 중 하나로 제시했다. 그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독립성의 보장이라며 위원회가 만들어져도 방송통신위원회 혹은 국회의 단순한 보조기구로 설립될 경우, 위원회의 의견은 단지 권고에 불과할 뿐 기속력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정치적 영향력 배제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이종관 미디어미래연구소 정책연구실장은 방송의 가치 구현을 위해서는 공영방송의 지속가능성 즉 공정책임의 지속가능한 수행의 보장이 매우 중요한 과제라며 이를 위해선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정책연구실장은 영국 BBC의 수신료 산정 방법을 예로 들었다. “BBC는 수신료 산정 시 BBC 활동에 대한 전반적인 비용환경, BBC 서비스의 지불액 대비 가치, BBC 이외의 서비스 제공 사업자와의 비교를 고려 대상으로 삼고 있다이때 지불액 대비 가치를 구성하는 항목 중 하나는 사회적 가치로 공영방송이 존재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시장실패의 규모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영방송의 수신료는 건전한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시장실패를 방지할 사회적 비용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또 공영방송의 재정 위기가 국내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 저하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정책연구실장은 공영방송뿐만 아니라 국내 지상파 방송사가 공통적으로 당면하고 있는 문제가 바로 재정건전성이 지속적으로취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라며 지상파 방송사의 재정이 안정적으로 확보되지 못하면 해외 방송 사업자에 의한 국내 시장 잠식이 발생하고 나아가 대만이나 호주와 같이 콘텐츠 시장의 대외 의존도가 높아져 자국 콘텐츠 산업의 쇠퇴가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홍수가 발생했을 때, 마실 물이 오히려 없는 것처럼 최근과 같은 정글 미디어 시장에서는 공영방송을 통한 공적 가치 구현이 더욱 중요해진다공영방송 재원구조 개선을 통한 공공성 확보와 콘텐츠 산업 발전 도모는 더 큰 의의를 갖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