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미디어 진영에서 보는 IPTV
벌써 진부한 표현이 되었을 정도로 디지털 혁명은 이미 우리들 삶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다. 반면 이러한 변화를 자본의 방식대로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사회로 만들기 위한 노력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한 듯하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으로 협소하게 표현되고 있는 미디어 융합 현상이 바로 그렇다.
IPTV나 방송통신 융합기구를 포함한 미디어융합에 대한 논의는 그동안 기술이나 산업육성, 그리고 사업자와 행정부처 간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진행되어옴으로써 실제로 이러한 서비스를 사용하게 될 시민들에게 이러한 변화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들의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권리는 이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는 거의 실종된 채 진행되고 있다. 그것은 지금의 방통 융합과 미디어 구조의 변화를 추동하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도 국가 경쟁력 확보와 새로운 시장 창출을 위한 자본, 그리고 이에 편승하는 정부 및 국가기관이기 때문이다. 90년
대 중반 이후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새로운 매체, 새로운 채널에 대한 논의는 소비자들에게 더욱 넓어진 선택권이라는 포장을 쓰고 우리의 미디어를 빠르게 자본의 차지로 만들어가고 있다.
방송과 통신의 본격적인 결합을 의미하게 될 IPTV의 사업 추진방식은 현재 기존 방송에서의 공공성과 인터넷에서의 공공성을 심각하게 축소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힘겹게 얻어낸 방송에서의 퍼블릭 액세스 권리는 이 새로운 융합 미디어의 고려 대상에서 완전히 빠져있으며, 인터넷에서 자발적이고 비상업적으로 이루어지던 시민들의 미디어 참여와 정보 공유는 이곳에서 돈을 지불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폐쇄된 공간에서 돈이 될 만한 내용들만 골라낸 서비스와 UCC의 형태로 제공될 전망이다. 심지어 가입자라는 회원체계와 통합인증, 과금망 구축으로 인한 개인정보 노출도 우려된다. 이에 대한 보완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IPTV와 같은 융합미디어 뿐 아니라 IPTV가 기존 매체들에 가지고 올 공공성의 약화는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므로 지금의 논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꿔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술의 발전 및 사회적 여건의 성숙과 함께 이제 미디어융합 시대의 시민은 단순히 주어지는 서비스에 만족하는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문화를 형성하며 정보를 생산하고 공유하고자하는, 그리고 그러한 권리를 포기할 수 없는 주체로 성장하였다. 바로 이러한 관점의 전환을 통해 우리는 미디
어융합 시대의 미디어 공공성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IPTV에 대한 정책적 접근은 미디어 및 통신 자본의 시장 독점과 이로 인한 폐해를 규제하면서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커뮤니케이션 활동들을 지원, 육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자본이 미디어의 미래를 자신의 뜻대로 그려나가듯이 우리도 적극적으로 우리의 미디어의 미래에 대한 상을 펼쳐나가자.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미디어융합이 폐쇄적인 소통구조와 또 하나의 돈벌이 수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보장받아야 마땅하나 보장받을 수 없었던 우리 사회 다양한 구성원들의 미디어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실현하는 시대가 되도록 하자.
김 지 현 | 미디액트 정책연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