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그에게서 또다른 나를 발견한다
-<서태지 컴백스페셜 공연>을 마치고
MBC 조명감독 김원영
1990년대 우리나라 음악계에 한 획을 그었던 서태지가 돌아왔다. 90년대 대중문화와 대중음악의 지형을 완전히 뒤엎어버렸던 그가 4년 만에 다시 나타났다. 필자는 지난 8월 6일 방송된 “서태지 컴백스페셜”의 스튜디오와 삼성역 5번 출구 앞 게릴라 콘서트의 조명을 맡았다. 담당 연출자에게 서태지 컴백스페셜에 대한 조명의뢰를 받았을 때 나는 오래 전 나를 다시 만나듯이 가슴이 뛰었다.
그를 실제로 처음 본 것은 13년 전 방송 초년생이던 시절, 여의도의 한 스튜디오에서였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생방송 리허설 현장에서 스튜디오 바닥을 박박 기고 있던 나를 스쳐 바로 1미터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에서 머리를 핑크빛으로 물들이고 하얀 얼굴로 환하게 웃으면서 대기실로 들어가는 그를 처음 보았을 때의 그 감동이란. 한 가지 말하자면 나는 남자다. 그렇다고 오해는 마시라. 난 여자를 더 좋아한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한 92년 ‘난 알아요’가 첫 방송을 탔을 때 나는 저녁을 먹고 있다가 숟가락을 놓고 한동안 바보처럼 웃었다. 88학번으로, 민주화투쟁의 끝물에 발을 살짝 담구고 있던 어설픈 시기를 지나서, 때 아닌 인생이란 무엇이냐는 물음으로 젊음을 태우고 있었던 나에게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과 퍼포먼스는 쇼크였다. 당시에 내가 주로 들은 음악은 Simon and Garfunkel의 「Scarborough Fair」, Smokie의 「Living next door to alice」와 같은 고등학교 때 테이프에 녹음해 놓았던 팝이 전부였다.
늘어진 테이프의 음악을 들으면서 나는 한껏 방황하고 마음껏 위로받고는 했었는데 서태지와 아이들의 흥겨운 멜로디와 랩, 그네들의 복장은 당시의 방황하는 내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어려운 가정형편과 힘든 학교생활, 복잡한 머릿속에서 헤매던 나에게 환한 해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처절한 나의 모습과 너무나도 극명하게 비교되어서, 그들이 보여주는 딴 세상이 나의 세상과는 너무도 달랐기에 웃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나에게 다른 세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떻게 사느냐는 물음에 대한 해답이 하나가 아니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러저러한 세상 사람들의 삶이 각자 다를 수 있고 의미가 다를 수 있구나
그날 저녁 이후에도 많은 시간 살아가는 것에 대해 계속 방황과 고민을 반복했지만 지금도 나는 그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섬광 같은 깨달음을 얻게 해준 서태지와 아이들의 서태지. 그와 함께 공연을 한다는 것은 스물 두 살의 나와 다시 한 번 만나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떨리기도 했다.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서태지 측의 과도한 보안이나 치밀한 마케팅 등을 보면서 약간의 실망감을 갖기도 했지만 어느 저녁 나를 미소 짓게 만들었던 그 느낌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서태지의 팬은 아니다. 그가 문화 대통령이라 불리던, 세대를 가로지르는 반역 정신의 소유자이던, 뛰어난 마케팅능력의 소유자이던 간에 나는 그에게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한다. 하나의 인생으로, 한 사람의 자유인으로서 살아가는 그의 모습에 박수를 보내며 나 또한 내 인생을 자유롭게 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