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표가 아닌 공약(公約)을 듣고 싶다

[사설] 공수표가 아닌 공약(公約)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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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판이 시끄럽다. 선거구를 놓고는 여야가, 공천을 놓고는 당내 계파 갈등이 첨예하게 부딪히고 있다. 투표를 며칠 안 남겨두고 나오는 각 당과 후보자들의 공약 경쟁도 뜨겁다. 새누리당은 일자리 창출을 핵심으로 △유턴기업 경제특구 설치 △코리아 투어 패스 도입 등을 내세우는 한편 △행복 주택 및 공공 실버 주택 공급 △노인 의료비 정액제 기준 인상 등으로 복지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더불어 성장론’을 주장하며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중소기업 기술경영연구소 신설을 총선 공약으로 확정했다. 또 △2018년까지 기초연금 30만 원으로 인상 △100% 국가책임보육(누리과정) 실천 △청년층 일자리 70만 개 확대 등 복지 정책을 내놓았다. 국민의당은 △비정규직 근로자 사회보험료의 사용자 부담 △청년고용할당제 민간 기업 적용 등을 정의당은 △국민 월급 300만 원 △5시 칼퇴근법 등을 내놨다.

하지만 각 당과 후보자들이 내놓는 공약이 진짜 공약(公約)일지 아니면 공약(空約)일지는 두고 볼 일이다. 아마 2개 중 1개, 3개 중 1개만 꾸역꾸역 맞춰놓고는 ‘다 이행했다’는 식일 것이다. 실제로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제18대 국회 종료를 4개월 남겨 놓은 시점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의 공약을 분석한 결과 공약 이행이 완료된 건수는 1,588건으로 약 3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19대 국회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메니패스토실천본부가 지난해말부터 2월까지 조사한 지역구 국회의원의 공약 이행 현황 자료에 따르면 완료된 공약은 약 51%로 18대보다는 많이 이행했지만 절반 수준에 그쳤다. 그래서인지 시민들이 생각하는 공약은 지켜져야 하는 약속보다는 생색내기 위한 공수표에 조금 더 가까운 것 같다.

무리한 공수표 남발은 정치권에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SK브로드밴드는 CJ헬로비전 합병 법인의 콘텐츠 투자 계획에 대해 발표하면서 앞으로 1년 동안 총 3,200억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콘텐츠 제작사 등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합병 법인이 1,500억 원을 출자하고 1,700억 원은 투자 유치를 통해 조달한 뒤 1,800억 원을 재투자해 5년 동안 총 5,000억 원가량을 콘텐츠 산업에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계획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당장 경쟁사에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 금액만 되풀이되는 공허한 계획이라는 것이다. KT와 LG유플러스에 따르면 SK브로드밴드의 실질적인 투자 금액인 1,500억 원은 그동안 SK텔레콤, SK브로드밴드에서 진행해온 금액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다.

현재 SK텔레콤은 어떻게 해서든 인수합병을 반대하는 측을 설득해 여론을 돌리고 싶어하는 것 같다. 하지만 방법이 잘못됐다. 반대 측을 설득하고 여론을 찬성 쪽으로 돌리려면 반대 진영에서 우려하는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M&A를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지역 채널 운영 방안 △일자리 창출 계획 및 유지 계획 △시장 내 공적 책무 등에 관한 계획를 요구하고 있다. 3,200억 원 규모의 펀드 구성 계획이 아니라 M&A 이후에 케이블 채널을 어떤 방식으로 지속경영할 것인지, 외주 업체 노동자들의 고용을 어떻게 할 것인지, 3년 이후에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 보장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방송의 공공성 보장을 위해 최소한 이런 일들은 하겠다던지 등의 계획을 내놓아야 그제서야 조금이나마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SK텔레콤이 지금이라도 공수표가 아닌 진짜 공약(公約)을 내놓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