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함, 교활함, 그리고 끼리끼리 이전투구
‘난 경제 살린다고 해서 찍었을 뿐이고, 사회안전망 확충 대신에 삽질해서 온 국토 파헤칠지 몰랐을 뿐이고, 이 나라 유권자를 ‘좌빨’과 ‘노빠’ 그리고 나머지 국가관이 투철한 시민으로 나눠 갈라치기 할 줄 몰랐을 뿐이고, 남북 국경이 다시 폐쇄될 줄 몰랐을 뿐이고, 일본과 통화스왑 통해 달러 확보하면서 뭘 내줬는지 궁금할 따름이고…’
요즘 개그 유행어를 빌리면, ‘~했을 뿐’을 연발하게 된다. 아마 관료들도 그럴 것이다. ‘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고, 지금도 시키는 대로 하고 있을 뿐이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다시 완벽하게 살아났다. ‘하면 된다.’ 물론, ‘시키는 대로.’ 지상파 3사의 프라임타임 대에 울려 퍼지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삼성그룹의 이미지 광고에는 빠진 형용사가 하나 있으니 그것이 바로 ‘시키는 대로’다.
예상했던 대로, 2008년 10월 시작된 정기국회는 ‘악법’ 정국으로 흐르고 있다. ‘거대한 전쟁의 시작’이란 영화 <적벽대전>의 부제처럼, 적어도 향후 한국 민주주의의 10~20년에 걸친 운명이 여기서 결정될 것이다. 촛불시위 이후, 질풍노도와 같은 국가권력의 대반격은 마치 초토화 작전을 방불케 한다. 포위망은 점점 더 좁혀 온다. 거기에 ‘영혼 없는’ 관료들은 교활한 뱀처럼 똬리를 튼 태 교활한 여우처럼 분주하게 움직인다. 청와대가 총감독을 맡고 있는 현 정국의 적나라함과 뻔뻔함, 관료의 교활함과 밥그릇 다툼의 실상을 세 가지 사례를 통해 짚어보자.
먼저, 방송법과 신문법 개정안에서 엿보이는 적나라한 뻔뻔함이다. 현 정권의 신문법과 방송법 개정안은 결코 ‘이종매체 간 교차소유’에 관한 내용이 아니다. 지금도 이렇게 말하는 학자나 교수가 있다면 그는 ‘곡학아세’ 꾼이거나 선량한 멍청이다. 상위 10대 재벌과 조중동 거대신문, 그리고 외국자본에 의한 방송 미디어(지상파 방송,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 소유 및 경영 허용이 실상이다.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방송 미디어의 종이신문 소유 및 경영에 관한 내용은 아예 없기 때문이다. ‘쌍방향성’은 용납될 수 성질의 것이다. 거대 신문에 보은하기 위해, 그리고 이들이 등 돌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종매체 간 교차소유’라는 형식마저 파괴한 것이다.
다음은 교활함이다. 한나라당 개정안에는 ‘지상파 디지털 전환 및 디지털 방송 활성화 특별법’이 포함돼 있다. 디지털 전환을 위한 재원 확보와 관련된 규정을 신설하는 내용이다. 디지털 전환 재원의 부족을 호소해온 지상파 방송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내용인즉, "아날로그 텔레비전 방송의 종료에 따라 회수된 주파수의 지정 또는 할당으로 발생한 수익금을 디지털 방송 전환 및 활성화를 위해 사용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법 제12조의2). 이 규정의 신설은 지상파 방송용 주파수의 회수 및 재배치가 기정사실로써 ‘완성’됨을 뜻한다. 아날로그 방송 종료 이전에 주파수 회수 및 재배치를 부동의 사실로 전제한다는 얘기다.
이미 지상파 방송에 배정하는 주파수의 심사할당 기준을 회수 및 재배치에 유리한 쪽으로 개정한 전파법 개정안이 지난 12월14일 발효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주파수 대역이 계속 필요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방송사업자의 근거를 없애는 한편, 주파수 회수 정책을 쉽게 집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현재 지상파 방송은 470~752㎒(채널 14~60번)와 752~806㎒(채널 61~69번)를 사용하고 있는데, 디지털 전환(2012년 12월) 이후 698~806㎒를 회수해 통신 용도로 전환한다는 게 방통위의 기존 계획이다. 문제는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 이후 텔레비전 주파수가 남는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는 데 있다. 신설 규정은 698~806㎒를 회수한다고 확정 결정하는 것에 해당하며, 그 이면에는 디지털 전환 이후에도 시청자가 지상파 방송을 직접수신 할 수 있는 비율을 지금보다 현격히 높아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지상파 방송사업자는 지금부터라도 특별법에 신설되는 이 조항에 대한 위헌심판 청구를 준비해야 한다. 이 규정은 전파법과 방송법상 시청자의 직접수신을 높여야 하는 지상파 방송은 암묵적인 의무와 시청자의 직접수신 권리를 현격히 침해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관료들의 ‘진흙탕 개싸움’과 밥그릇 다툼이다. 한나라당이 내놓은 신문법 개정안은 현행 제16조 경영자료(발행부수와 유가부수, 광고수입과 구독수입) 신고를 의무화한 조항을 삭제하는 대신, 여론집중도 조사에 관한 조항으로 대체돼 있다. 내용의 핵심은 신문과 인터넷신문은 물론 방송의 여론집중도까지 조사해 공표하는 권한을 문화체육관광부에 주는 것이다. 이는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통신기본법’에서 콘텐츠 진흥의 전반적인 권한을 자신들이 보유하겠다는 규정을 포함한 것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가 놓은 맞불을 한나라당이 수용한 것을 뜻한다. 이것이 ‘뻔뻔스럽고 교활하게 시키는 대로 하면서 제밥 그릇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미디어 정책의 현 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