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이동통신의 역사는 곧 속도의 역사였다. 1세대 아날로그 음성통신에서 시작된 거대 통신 3사의 경쟁은 ‘얼마나 빨리 데이터를 받을 수 있느냐’에 맹목적으로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 속도가 대한민국 이동통신의 역사를 관통할 만큼 절대적이고 중요한 사안일까. 이런 의문에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 밖에 없다. 이상하기 때문이다. 속도 외에도 중요한 가치는 엄청나게 많을텐데. 아무리 훌륭한 8차선 고속도로를 뚫으면 뭐하나. 톨게이트 비용이 10만원이고 유지 보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데. 심지어 틈만 나면 고속도로 위에 고가도로를 만들어 기존의 고속도로 이용객을 무시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속도 지향주의’의 폐혜가 따로없다.
지금 대한민국 이동통신은 가히 속도전이다. 많은 데이터를 빠르게 전송하는 것에 사활을 걸었다. 5:3:2의 시잠 점유율을 흔들기 위해 ‘5’의 선택도 속도, ‘2’의 선택도 속도다. 이런 상황에서 그 속도를 가능하게 해주는 주파수는 넝마가 되고있다. 통신사들은 다른 영역의 주파수까지 모두 끌어모아 자신들의 속도를 더욱 업그레이드 하는 것에 올인하고 있으며 정부부처는 ‘옳다구나!’라며 적극 지원하고 있다. ‘내일은 없다. 그저 속도만 있을뿐’
최근 통신사들은 LTE-A 서비스를 내세우며 속도전에 불을 지피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 ‘속도’라는 것이 통신사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중요한 가치일까. 이 대목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오히려 상당수의 전문가들은 통신사의 속도전을 ‘돈 벌이 수단’, 즉 가입자 세뇌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이런 식이다. 통신사는 ‘기존 속도는 10이지만, 우리의 차세대 속도는 20이에요!’라고 외친다. 하지만 실제 속도는 11. 여기에 차세대 속도라는 명목으로 기존 속도를 누리던 가입자들은 완벽하게 배제시킨다. 그 와중에 ‘사실 우리는 10이 아니라 8이었어요. 죄송해요’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이정도면 소비자 우롱이다. ‘넌 나에게 3G를 줬어’라는 광고 카피는 엄격히 말하면 처벌대상 감이다. 지금까지 소비자를 속였다는 사실을 고해성사한 용기를 인정해야 하나. 애매한 부분이다.
통신사들이 강조하는 속도, 즉 데이터 속도는 사실 이동통신 상품의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다. 적당한 데이터 속도와 더불어 안정적인 서비스와 납득할 수 있는 가격 경쟁력이야말로 진정 통신사들이 추구해야 하는 지향점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신사들은 이런 부분을 차치하고는 무조건 속도 경쟁만 불사하고 있다. 전반적인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완전히 배제하고 오로지 속도에만 목을 매는 것이다. 대형 마트가 서비스 향상을 목표로 하면서도 막상 추가적인 투자를 배제한 체 직원들을 ‘감정 혹사의 극치’로 몰고가는 현상과 비슷하다. 확실한 투자와 기술개발을 통해 전반적인 통신의 발전과 합당한 가격 경쟁력을 유도하기는 커녕 마냥 ‘속도’만 부르짖는 통신사. 확실히 문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런 속도 제일주의 통신사들이 그 속도를 위해 국민의 재원인 주파수를 맹목적으로 탐 낸다는 것에 있다. 통신 서비스의 전반적인 향상을 위해 요소요소에 투자를 하기 보다는 그저 막대한 금액을 통한 주파수 확보에만 목을 메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지금 대한민국은 통신 주파수 올인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국방부가 쓰던, 위성 DMB가 활용하든, 와이브로가 쓰든, 방송이 쓰든 모든 주파수는 통신에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정상적인 사회일까.
사실 모든 결론은 아주 간단하다. 통신은 이제 더 이상 속도에만 매달리지 말고 전반적인 서비스 향상을 위한 인프라적 투자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그러면 통신 경쟁력은 착실히 상승할 것이고 그와 연계된 주파수 수급도 원활하게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 주파수 경매에 목을 멘 통신사들의 귀에 이런 충언은 들어오지 않을 것 같다. 그저 ‘속도를 위해!’ 그들은 거짓말도 불사하고 막대한 돈을 가입자에게 털어 경매에 쏟아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