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유진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며칠 전 올림픽 금메달 소식을 전한 인터넷 뉴스에서 이런 댓글을 보았다.
“좋은 대통령과 금메달 소식을 함께 기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착한 국민’의 복잡한 심사가 느껴졌다. 우리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주기 바라는 마음, 그러면서도 올림픽을 틈탄 이명박 정부의 공안탄압, 방송장악 시도 등을 걱정하는 마음, ‘좋은 대통령’을 뽑았다면 올림픽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으리라는 아쉬움 등등.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30%까지 오른 데 대해 ‘올림픽 특수’가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림픽에 관심을 쏟느라 국정운영을 꼼꼼하게 평가하지 못함으로써 대통령을 ‘좋게 보게된’ 국민도 있겠지만, ‘좋은 대통령’을 갖지 못한 탓에 마음 편히 올림픽을 즐기지 못하는 국민들도 있다. 이들에게는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이 선전하는 것도 중요하고, 이명박 정부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도 중요하다.
이런 ‘착한 국민’을 위해서라도 방송이 올림픽에만 빠져 있으면 안된다. 그러나 최근 방송보도들은 ‘스포츠 뉴스’, ‘올림픽 뉴스’라 불러도 좋을 만큼 올림픽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정치, 사회, 경제적 의제들이 소홀히 다뤄졌다. 이명박 정부의 ‘KBS 장악’ 시도 역시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의 ‘정연주 축출 시나리오’는 올림픽 개막식이 열린 지난 8일부터 하나하나 실행에 옮겨졌다. 8일 KBS 이사회가 정연주 사장에 대한 이른바 ‘해임제청’을 의결하자, 11일 이명박 대통령이 정 사장을 해임했다. 이어 12일 검찰이 ‘배임’ 혐의로 정 사장을 강제 구인하고, 13일에는 KBS 이사회가 차기 사장 공모를 논의했다. 방송3사 메인뉴스는 초법적인 정 사장 해임의 배경이나 의미 등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기 보다는 사건 전개와 공방을 중심으로 보도했다. 보도량도 적어 이런 내용조차 충분하게 전달하지 못했다. 특히 SBS의 보도가 양적, 질적으로 가장 소홀했다.
KBS 이사회가 정 사장 ‘해임제청’을 의결한 8일 KBS는 6건, MBC와 SBS는 각각 3건의 관련 보도를 내보냈다. KBS, MBC가 정 사장 ‘해임제청’을 첫 소식으로 다룬 반면 SBS는 올림픽 개막을 첫 소식으로 전하면서 정 사장 ‘해임제청’은 다섯 번째로 다뤘다.
이후 이명박 대통령이 정연주 사장을 해임하는 11일 이전까지 KBS, MBC는 각각 2건과 1건의 관련 보도를 내보내는데 그쳤고, SBS는 아예 관련 보도가 없었다. 반면 올림픽 소식은 KBS, MBC, SBS가 각각 33건, 37건, 26건에 이르렀다.
11일부터 13일까지의 보도 경향도 비슷했다. 이 기간 KBS, MBC, SBS는 각각 31건, 44건, 36건의 올림픽 관련 보도를 내보냈지만 ‘KBS 장악’과 관련해서는 9건, 7건, 5건을 보도하는데 그쳤다. 그나마 KBS가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보도를 했지만 ‘KBS 장악’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국민들에게 제공했다고 보기 어렵다.
방송3사가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 시도를 좀 더 적극적으로 다루지 못한 이유가 올림픽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특히 ‘정부·검찰과 정연주 사장’, ‘여당과 야당’, ‘KBS이사회와 KBS 일부 사원들’의 대립과 공방이라는 틀에서 기계적 균형을 맞추려는 태도는 사실상 올림픽과는 무관한 문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방송사들이 올림픽 보도에 ‘올인’하다시피 열중하면서 방송장악을 비롯한 우리 사회 주요 현안들이 충분히, 그리고 비중있게 다뤄지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여전히 많은 국민들이 이명박 정권의 방송장악이 얼마나 무리하게 진행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올림픽은 분명 국민적 관심사다. 그러나 올림픽이 정권의 방송장악 보다 더 중요한 문제라고 단정할 수 없다. 더욱이 ‘좋은 대통령’을 갖지 못한 탓에 올림픽 중에도 민주주의 후퇴를 걱정하는 국민들이 조금이라도 마음 편히 올림픽을 즐기려면 방송이 감시와 비판의 역할을 더 적극적으로 해주어야 한다. 정권의 방송장악에 소홀한 채 올림픽 보도에 몰두하는 것은 ‘착한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