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판결 무시하고, 처음부터 다시?

법원 판결 무시하고, 처음부터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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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가 지난달 29일 ‘지상파방송 재송신 제도 개선 방안 공청회’를 열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이날 공청회는 지난해 법정에서 판결한 내용들은 완전히 무시한 채, 오로지 유료방송 플랫폼이 주장하는 ‘지상파 의무재송신 확대(안)’에만 힘을 실어주도록 기획된 듯 했다.

지난해 법원은 “케이블SO는 지상파 디지털 방송 이용에 따른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통위는 줄곧 “지상파 의무재송신을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등 유료방송 플랫폼의 입장을 강하게 대변해왔다. 지상파 방송3사는 그와 관련해 지난 1월 방송협회 차원에서 “의무재송신 확대는 케이블SO만을 위한 위헌적 시도”이며 “현행법에 따른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해줄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한 바 있다. 하지만 이날 공청회 자리에서 한림대 언론정부학부 노기영 교수가 발제한 방통위의 재송신 제도 개선안은 한치도 변하지 않은 방통위의 입장만을 재확인시켜줄 뿐이었다.

이에 대해 지상파 추천 패널로 참여한 인하대 하주용 교수가 법원의 판결을 인용하며 “(지상파와 케이블SO와의 디지털 방송 재송신 거래는) 전적으로 방송시장의 논리에 맞겨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공청회의 논의는 법원 판결 이전으로 훌쩍 되돌아가버린 뒤였다.

유료방송 플랫폼 추천의 장선 변호사는 “지상파 재송신은 수신보조행위”라는 기존의 입장을 다시 거론하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지상파 방송사 추천 패널로 참석한 강릉원주대 법학과 고민수 변호사는 “수신보조행위는 유선방송수신관리법상 중계유선방송사업자(RO)에게만 해당하며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는 해당없다고 법원이 이미 판결했다”며 일축했고, 객석에서는 “SO가 지상파만 재송신하는 무료의 상품이 있느냐”고 뼈있는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또, 유료방송 플랫폼의 추천으로 참여한 서울대 언론정보학부 윤석민 교수는 “사업자들이 해결하기 어렵기에 방통위가 당연히 개입해야 한다”며 “당장이라도 의무재송신 확대 로드맵을 제시하라”고 방통위를 압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상파 추천의 임상혁 변호사는 “이미 법원에서 판결을 내린 바를 존중해야 하며, 자정적으로 방송의 시장기능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방통위의 월권을 우려했다.

   
 

업계 이외에서 추천된 패널들은 ‘지상파와 유료방송 플랫폼과의 재송신 계약관계’를 ‘시청자가 지상파를 볼 권리’로 지나치게 단순화해서 접근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했다.

방송학회 추천으로 참여한 소비자연맹 강정화 사무처장의 주장도 거기에 속했다. “지상파 방송이 끊어지고 화질이 떨어지니 난감했다”며 “유료방송 요금이 올라가는 불편을 피하기 위해 지상파 방송에 공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고민수 교수는 “유료방송 가입자가 지상파를 못 본다면 그것은 서비스중계 의무를 충실히 하지 못한 유료방송 플랫폼의 계약불이행이 원인”이며 “방통위가 약정 등 유료방송 플랫폼의 고객 이동성을 제고해야 할 문제”이라고 논리적인 오류를 지적했다.

한편, 이 자리에 참석한 방통위 뉴미디어정책과 김정원 과장은 “방통위의 개선안이 논리적인 일관성을 갖도록 보안하며, 법원 심리 결과도 반영할 것”이라면서도 “사업자들간의 협상은 계속하되 지상파 재송신은 계속 유지되는 방안이 좋을 것으로 판단한다”며 기본적으로 의무재송신 확대에 방점을 찍었다. 이에 대해 객석에서는 “(이번 SBS와 스카이라이프의 경우처럼) 계약없이 장기간 재송신을 유지하는 상황에서는 지상파가 거래거절을 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