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초 구글(Google)의 제한적 본인확인제(사실상 인터넷실명제) 적용 거부관련 논쟁이 뜨거웠다. 한마디로 ‘현행법’ 적용과 사용자 ‘이용가치’를 두고 방송통신위원회와 구글의 찬반이 엇갈렸다. 이는 방송통신위원회가 발의해 국회에서 처리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에 따른 인터넷 본인확인제(인터넷실명제) 적용 대상이 지난 4월 1일부터 법 개정 이전 하루 30만 명이상 이용자에서 10만 명이상 사이트로 확대된 것이 원인이 됐다.
지난 3월말 구글 코리아는 방송통신위원회가 법에 따라 밝힌 본인확인제 거부를 선언하면서 유튜브(Youtube) 한국서비스를 철수하려는 계획까지 세웠다. 인터넷실명제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힌 구글의 방침은 당시 인터넷실명제 반대 목소리가 높은 우리나라 누리꾼들에게는 여간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하지만 구글은 지금까지 투자에 비해 손실이 크다는 상업적 판단 아래 최근 유튜브 철수 방침을 철회해 새로운 방안을 내놓았다.
유튜브는 한국 정부의 본인확인제 적용 정책을 비껴가는 방안으로 한국지역 서비스에 대해 동영상 업로드와 댓글(리플) 기능을 없앴다. 국내법을 지키면서 계속 사업을 이어가겠다는 포석에서이다. 즉 유튜브 한국서비스에서 게시판 기능을 없애 실명제 적용 대상에서 피해갔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실명제 정책을 받아들일 수 없고, 국내법을 어길 수 없는 한계 때문에 현행법 적용 범위를 비껴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구글의 동영상 업로드와 댓글 기능 폐쇄 등은 글로벌 서비스의 현지법 준수 범위, 인터넷 속성과 기존 법과의 충돌을 어떻게 조화해 갈 것인지에 대한 또 다른 논란을 야기했다. 재미있는 것은 국경도 허물어진 인터넷 공간에서 물리적 국경만 기준으로 법을 적용하다보면 충돌이 불가피하지만, 빠져나갈 구멍도 있다는 것이 구글의 사례가 증명해 주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본인확인제(인터넷실명제) 적용 대상을 결정할 때 평균 방문자수 외에도 한국에 서버를 둔 서비스, 한국지역으로 등록된 도메인 등을 주요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한국인이 즐겨 쓰는 구글 주요 서비스에 실명제를 적용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이다. 한국에 서버를 둔 구글 서비스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대표적 한국 서비스로 꼽히는 ‘구글 지도’ 도 한국 내 서버는 협력사가 운영할 뿐, 구글 서버는 해외에 있다.
유튜브 한국서비스의 도메인은 ‘http://kr.youtube.com’이다. 이런 도메인을 기준으로 방송통신위원회는 실명제를 적용했다. 하지만 이용자가 기본 이용지역을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로 설정하기만 하면 아무런 제약 없이 현재처럼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구글은 인터넷실명제를 교묘히 빠져나가고 있는 셈이다. 자사의 상업적 고려도 컸다고 하지만 어떻게 보면 ‘현행법’ 적용과 사용자 ‘이용가치’ 선택 중에서 이용자 편을 들어 줬다. 실제로 방송통신위원회가 완전 승리한 것처럼 보였지만 속내를 보면 구글이 판정승을 거둔 셈이다.
어쨌든 인터넷실명제는 인간의 기본권적 권리인 의견의 자유, 밝힐 자유, 쓸 자유 등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표현의 자유에도 분명 사회적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우리 현행법도 부적절한 표현에 대해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로 처벌을 받은 경우도 허다하다. 인터넷상 익명으로 쓴 부적절한 글에 대해 아이피 추적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사례도 있다. 이런 법적 규제가 있는데도 인터넷상 표현을 굳이 실명제와 마찬가지인 본인 확인제로만 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방송 인터뷰도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해 표현한다. 신문 인터뷰도 ‘이 아무개’ 등 익명을 이용해 표현을 하고 있다. 가명을 이용해 책을 낼 수도 있다. 탤런트나 영화배우도 익명을 사용해 의사를 표현하고 있다. 왜 정부는 인터넷상에만 본인 확인(실명)을 요구하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본인확인제를 고집하는 것은 인터넷 여론을 권력의 통제 아래 두겠다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다.
인터넷의 가장 큰 고유 특징은 익명성이다. 본인의 선택에 의해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곳이 인터넷공간이다. 이런 인터넷 공간을 법과 제도로 옭아맨 것은 민주주의의 골간인 국민의 알권리와 다양한 여론수렴에 반하는 것이다.
물론 인터넷을 부적절하게 사용하는 사례도 있다. 과거나 현재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그럴 확률이 높다. 하지만 이런 부작용을 법과 제도로 강제하기 보다는 선플 운동 등으로 인터넷 문화를 바꾸어가면서 바로 잡는 자정노력으로 유도해야함이 옳다.
현재 누리꾼들을 위한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대책은 전혀 없다. 하지만 법으로 본인확인제(인터넷실명제)를 강제했다. 여기에다 사이버모욕죄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전에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 자유로운 말길(言路)을 차단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임이 뻔하다. 이는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해 올곧은 여론 활성화에 역행하는 처사나 다름없다.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인터넷실명제(본인확인제) 폐지를 권고해 본다.
참고로 본인확인제와 실명제는 다르게 느껴진다. 실명제는 웹상에 이용자의 실명이 올라간다. 본인확인제는 실명확인이 되면 인터넷에서 필명, 별명, 아이디 등으로 글을 쓸 수 있다. 이렇게 본인확인제와 실명제가 겉보기에는 다르다. 하지만 기본적인 생각과, 표현의 자유 위축이라는 점에서 보면 동일하다. 본인확인제나 실명제 모두 이용자는 실명과 주민등록번호를 기입하는 확인 절차를 통과해야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개인자료가 보관돼 필요할 때 권력이나 사회적 강자에 의해 잘못 활용될 수 있다. 또 인터넷상에 닉네임으로 노출되지만 본인의 신원은 언제든 파악할 수 있다. 이런 것을 의식하다보면 당연히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기 마련이다. 바로 ‘본인확인제’가 곧 ‘인터넷실명제’와 다름없다. 이글에서 ‘본인확인제’와 ‘인터넷실명제’를 같은 의미로 혼용해 사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철관(한국인터넷기자협회 수석부회장, 배재대학교 공연영상학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