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7일 방송통신위원회가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올해를 ‘창조방송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현 정부의 국정철학인 창조경제를 방송의 영역에서 지원하고 구현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실체가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창조경제가 여전히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방통위의 창조방송이 어떤 방향성을 가질지는 미지수다.
방통위는 2014년 업무보고에서 ‘국민 신뢰를 받는 창조 방송통신 실현’이라는 비전 아래 ▲창조방송 구현과 세계화, ▲방송의 신뢰성 제고, ▲국민행복을 위한 이용자 보호 등 3대 정책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방통위는 KBS 수신료 현실화와 방송광고제도 개선, 시청자미디어센터 설치 전국 확대, 국내 애니메이션 활성화, 중소·벤처기업 광고비 할인, UHDTV·지상파 MMS 가시화, 방송채널 해외진출 등의 세부방안을 마련했다. 이 위원장은 “올해를 창조 방송통신의 원년으로 삼아 한류를 재도약시키고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방송 분야에 활력을 불어넣는 한편, 이동통신 불법 보조금·인터넷상 개인정보 침해 등에 적극 대처하여 이용자를 보호하는 등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을 본격적으로 실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로드맵도 나왔다. 방통위는 차세대 방송으로 주목받는 UHDTV가 중국(가격) 및 일본(품질)과의 세계시장 경쟁에서 앞서 가기 위해 미래창조과학부와 공동으로 UHD 콘텐츠 생태계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방송 콘텐츠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지상파 UHD 방송 역량을 강화한다는 부분이 특기할만하다. 지상파 UHD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700MHz 대역 주파수 활용을 두고 방송과 통신의 첨예한 갈등이 빚어지는 상황에서 방통위의 기본줄기는 미래부와의 협력을 전제로 한 ‘지상파 UHD 전략’으로 선회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미래부와 공동으로 운영 중인 연구반을 통해 주파수 700MHz 활용방안 등 필요한 제반 전략들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또 현재 실험방송을 실시하고 있는 지상파 MMS에 대해서는 시청자 복지와 사교육비 절감 차원에서 정책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국내 방송의 해외 진출도 지원한다. 방통위는 아리랑TV, KBS월드 등 글로벌 방송채널의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한류 확산의 획기적 전기를 마련하고, 중국 등 주요 국가와의 협력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당장 2월 20일부터 아리랑TV가 미국 디렉TV에서 1,100만 가구를 대상으로 방송에 돌입할 예정이다. 동시에 방통위는 국내 애니메이션 활성화를 위해 편성 의무 방송사 및 채널들이 주요 시간대에 애니메이션을 편성하도록 유도하고, 벤처기업에 광고비를 할인해 주는 방안도 확대한다.
KBS 수신료 현실화와 지상파 광고제도 개선도 제시됐다. 방통위는 KBS 수신료 현실화 및 광고제도개선 필요성을 어필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 동력을 극대화 시키겠다고 밝혔다. 또 재승인 심사에 돌입한 종합편성채널에 대해서는 철저한 재승인 심사와 종편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노력을 다짐했다.
하지만 이번 방통위 업무보고를 둘러싸고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창조방송의 개념에 대한 모호성이다. 창조경제에 대한 개념정리가 선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여기에 모티브를 따 만들어진 창조방송이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방향성을 가지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방통위가 제안한 로드맵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당장 방통위는 콘텐츠를 이유로 지상파 UHD 가능성을 강하게 피력하고 있지만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내놓지 못했다. 라봉하 기획조정실장이 “UHD 방송을 하려면 주파수가 가능해야 하기 때문에 700MHz 대역 주파수의 용도가 정해져야 하고, 기술표준을 정해야 하는 문제가 있는 만큼 미래부와 구성한 연구반을 통해 결정해야 한다”고 언급한 부분이 단서다. 사실상 지상파 UHD 전략을 구체적으로 준비하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지상파 방송광고제도개선도 마찬가지다. 방통위는 지상파 방송광고제도개선을 이루겠다는 뜻은 충분히 피력했지만 ‘어떻게’ 관련 정책을 추진할 것인지는 말을 아꼈다. 물론 지상파 중간광고의 사전포석 성격이 강한 광고 총량제가 유료방송의 상당한 반발을 사고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수신료 현실화에 따른 KBS의 광고 축소가 종편을 비롯한 유료방송에 대한 측면지원이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극복해야 하는 방통위의 로드맵은 모호하기 짝이 없다. 이에 대해 김대희 상임위원은 “(지상파 방송광고제도개선에 대해서는) 전반적인 검토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선을 긋는 뉘앙스를 풍겼다. 방송법 시행령 개정이 전제되어야 하는 지상파 방송광고제도개선은 간단하게 추진할 수 있는 정책이 아니다. 당장 방통위의 무대책에 엄청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종편에 대한 방통위의 로드맵도 문제다. 방통위는 업무보고를 통해 방송의 신뢰성 제고를 천명하며 재승인 심사를 앞둔 종편을 정조준하는 분위기를 풍겼다. 하지만 현재 방통위-종편 간 심의위원 명단이 오가는 한편, 방통위는 지난해 9월 마련한 재승인 심사 기준에서 방송 공정성과 기획·편성 등 핵심 평가항목 중 과락 기준을 60%에서 50%로 후퇴시켰다. 또 전체 9개 평가항목 중 7개를 심사위원의 주관이 개입되는 비계량 항목으로 구성하기도 했다. 전형적인 종편 봐주기 정책을 노골적으로 추진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종편 재승인 심사에서 공적 책임을 중점 심사하고 사업계획의 철저한 이행 점검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 투자 확대를 유도하는 한편, 막말 등에 대한 심의도 강화하겠다”고 언급한 것은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종편은 약속했던 사업을 이행하지 않아 방통위 경고와 함께 최대 수준의 과징금까지 받은 상태다. 동시에 일각에서는 이경재 위원장이 지난해 국정감사 시절 “종편 1~2곳을 없앨 수 있다”는 말로 시민사회단체를 안심시키는 한편, 종편에 대한 심각한 위기를 면피시켰던 사례가 다시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도 했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보도·제작·편성 자율성 확보에 대한 부분은 언급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방통위 업무보고가 창조방송이라는 모호한 개념에 빠져 사업자 간 이해관계를 단순 나열하는 것에 그쳤다면, 방송을 산업적 마인드로 재단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방통위의 로드맵은 더욱 충격적이다. 이는 라봉하 기획조정실장의 발언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라 실장은 지상파 UHD에 대한 설명과 함께 “우리가 UHD에 투자하는 게 국가 경제와 산업적 측면에서 중요한가 등의 문제를 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단언했다. 물론 라실장의 발언도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방송은 100% 산업발전의 논리로 판단할 가치가 아니다. 공적인 인프라 구축의 관점에서 민영화, 더 나아가 사영화를 부추길 일말의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창조방송이라는 단어가 창조경제에서 나온 부분도 불안요소다. 창조경제는 현 정부의 국정철학이자 모호한 개념이지만, 대체적으로 ‘가용할 수 있는 모든 고차원적인 수단으로 새로운 경제 동력을 발생시킨다’ 수준에서 이해될 수 있다. 산업발전과 공공의 가치라는 측면에서 보면 공공의 가치보다는 산업발전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는 단어라는 뜻이다. 당연히 창조경제를 지원하기 위한 창조방송은 자연스럽게 ‘방송의 경제성’을 맹목적으로 따지는 수단이 될 확률이 높다. 가뜩이나 현 정부 들어 방송을 산업적 마인드로 재단해 케이블 MSO에 대한 8VSB 허용과 유료방송 중심의 UHDTV 정책이 별 고민 없이 추진되는 상황에서, 창조방송이라는 단어를 심지어 미래부가 아닌 방통위가 주장한 것은 심각한 패착이다. 김대희 상임위원이 “창조방송이라는 것은 복잡하게 생각할 건 없다”며 “(현 정부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창조경제로 가자는 철학을 가지고 있고 그에 부응해 방송차원에서 도울 수 있는 것은 하겠다는 뜻이다. 정부정책에 발맞추겠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된다”고 언급한 대목은 그냥 지나칠 문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