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의위)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을 다룬 KBS <추적60분>에 대해 법정 제재인 ‘경고’ 조치를 내렸다. 경고는 방통심의위 제재 중 과징금과 방송 프로그램 관계자에 대한 징계 다음에 해당하는 조치로 중징계에 해당한다.
방통심의위는 21일 전체회의를 열고 지난 9월 7일 방송된 KBS 시사프로그램 <추적60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무죄 판결의 전말’ 편에 대해 경고를 의결했다고 밝혔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무죄 판결의 전말’ 편은 북한에 거주하다가 탈북해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하던 중국인 유모씨가 탈북자 신원정보를 북한에 넘겼다는 혐의로 기소된 사건을 다뤘다. 이 사건을 수사하던 국정원은 유씨의 여동생으로부터 받은 진술을 근거로 삼아 유씨를 기소했으나 나중에 유씨의 여동생이 “국정원의 협박과 회유로 거짓 진술을 했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후 유씨는 8월 22일 법정에서 간첩 혐의에 대한 무죄를 선고받았다.
문제는 방통심의위 산하 보도교양방송특별위원회가 해당 방송이 방송심의규정 제9조(공정성)와 제11조(재판이 계속 중인 사건)를 위반했다고 지적하면서 시작됐다. 해당 방송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1심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피고인 측의 입장만 대변해 제9조를 위반했고, 동시에 제11조도 위반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지적에 따라 지난 10월 23일 방통심의위 방송심의소위원회는 해당 방송에 대한 심의를 진행했지만 심의위원들 간 의견이 엇갈려 최종 징계 여부와 수위는 전체회의에서 결정키로 했다.
방통심의위 측은 “현재 검찰이 항소 계획을 밝히는 등 재판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피고인의 입장 위주로만 단정적으로 보도한 것은 공정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고, 향후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도 담겨 있다”며 전체회의에서 경고를 의결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날 전체회의에서 야당 추천 심의위원들은 모두 ‘문제없음’을 주장했지만 여당 추천 심의위원들의 열세에 밀린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권혁부 부위원장은 “판결이 있기 전부터 무죄를 전제로 취재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편향적이다. 재판이 이러한 언론의 여론 재판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며 제재 조치를 내려야 한다고 강력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추적60분> 중징계 철회하고, 여당 추천 위원들은 사퇴하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방통심의위가 말하는 ‘공정성’은 오로지 국정원이 정권의 도구로 악용당하는 구린내 나는 현실을 감추려는 말장난에 지나지 않고, ‘재판이 계속 중인 사건’을 운운하며 중징계를 내린 것은 그렇지 않아도 정권의 방송장악에 의해 이미 고사된 저널리즘에 대한 확인사살”이라며 “<추적60분>을 중징계하고 정권의 충견노릇에 앞장선 여당 추천 위원들은 당장 사퇴하고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라”고 비판했다.
앞서 전국언론노동조합과 한국PD연합회 등도 이날 오후 2시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표현의 자유 억압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규탄 기자회견’을 갖고 “오늘 방통심의위 전체회의에서 논의될 KBS <추적60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무죄 판결의 전말’ 편의 결과를 지켜볼 것”이라며 “방통심의위가 언론의 비판적 감시기능을 무력화시키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면 우리는 결코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날 언론노조는 “그동안 수차례 방송심의규정 제9조와 제11조의 문제점을 지적했다”며 방송심의규정이 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9조는 방송법 상 보도와 논평에만 적용이 가능한데 방통심의위가 지속적으로 <추적60분> 같은 탐사 프로그램에도 이 규정을 적용하고 있고, 제11조의 경우 ‘재판이 계속 중인 사건’ ‘재판의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어 논란의 소지가 많다는 것이다. 언론노조 측은 이어 “우리 사회 상당수 이슈들 모두 형사소송이나 행정소송 혹은 개별적인 민사소송 등의 법적인 절차가 진행 중인데 심의규정 논리대로라면 대한민국의 보도‧시사 프로그램은 모두 문을 닫아야 할 것”이라며 방통심의위의 정치심의, 표적심의, 과잉심의는 중단돼야 할 것이라고 강력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