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테스트베드’ 된 웹 예능…허물어진 TV·온라인 경계 ...

방송 ‘테스트베드’ 된 웹 예능…허물어진 TV·온라인 경계
“파일럿 프로그램보다 확실한 실험 공간…레거시 미디어 붕괴 촉진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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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발신지=연합뉴스(서울)] 성공이 보증된 웹 콘텐츠가 방송의 파일럿 프로그램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누적 조회수 555만회를 기록한 윤두준의 먹방 콘텐츠 ‘배부른 소리’가 엠넷에 정규 편성된 데 이어 가수 이찬원과 김희재가 진행하는 ‘플레희리스또’까지 TV조선에서 방영되기 시작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시다.

전문가들은 레거시 미디어인 TV와 온라인의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진 것이 그 배경이라고 분석한다. 일부에서는 콘텐츠의 주도권이 TV에서 온라인 플랫폼으로 넘어갔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TV 방송과 웹 콘텐츠의 경계가 흐릿해졌다는 이야기는 5∼6년 전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JTBC는 ‘스튜디오 룰루랄라’를 설립해 온라인 콘텐츠를 만들어왔고, tvN의 스타 PD인 나영석은 ‘신서유기 외전: 삼시세끼- 아이슬란드 간 세끼’, ‘나홀로 이식당’,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 등의 스핀오프 예능을 웹과 방송에서 동시에 공개해왔다.

최근에는 여기서 더 나아가 웹 예능으로 시작된 프로그램들이 TV 방송에 정규 편성되고 있다.

엠넷의 디지털 스튜디오 M2 채널을 통해 처음 공개된 ‘배부른 소리’는 먹방의 원조 격으로 불리는 가수 겸 배우 윤두준이 먹방을 선보이는 콘텐츠로, 높은 조회수에 힘입어 지난달 말부터 엠넷에서 5주간 방송됐다.

이찬원과 김희재가 DJ가 되어 매주 주제에 맞는 노래를 추천하는 콘텐츠인 ‘플레희리스또’ 또한 누적 조회수 160만회를 돌파하면서 지난 17일부터 매주 수요일 밤 방영되고 있다.

정규 편성은 아니지만 30대 여성 PD의 시골살이를 담은 유튜브 콘텐츠 ‘오느른’도 구독자 26만여명을 확보하면서 최근 MBC TV에서 설 특집으로 방송되기도 했다.

웹 예능이 방송 프로그램의 사전 실험장, 즉 ‘테스트베드'(Test bed·성공 여부를 미리 알아보기 위해 시험적으로 적용해보는 소규모 집단·지역·영역)로 기능하게 된 것이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방송사 입장에서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별도의 팀을 만들어서 방송을 만드는 형식이 비효율적으로 느껴질 것”이라며 “파일럿의 경우 함께한 제작진과 출연자들에게 미래를 담보해줄 수 없는 형태의 실험이지만, 웹 플랫폼은 그렇지 않아 확실한 실험 공간으로 기능하게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예전에는 방송용과 온라인용의 틀이 정해져 있었지만, 이제는 웹 예능을 방송에 활용하는 것이 이물감을 주지 않는다”면서 “웹 콘텐츠와 기성 미디어인 방송의 위상이 큰 차이가 없어지면서 시청자의 취향에 따라 선택될 뿐”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이런 흐름이 레거시 미디어의 붕괴를 촉진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웹 공간을 실험장으로 사용하면서 일시적으로는 부담이 줄어들었다고 느낄 수 있지만, 이것이 계속 반복되다 보면 시청자 입장에서는 TV를 통해 콘텐츠를 소비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웹 공간에서 콘텐츠를 선공개하고 날 것의 영상을 소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오히려 온라인 공간에서의 시청을 촉진하는 꼴이 된다는 것이다.

김성수 평론가는 “이미 웹이라는 공간의 어법이 기본 질서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방송사는 콘텐츠를 직접 생산할 것인지 아니면 편성만 하는 기관으로 역할을 할지를 정해야 하는 갈림길에 선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