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콘텐츠 지원센터 건립 사업의 출발점에서

방송콘텐츠 지원센터 건립 사업의 출발점에서

687

 

 종합편성채널과 미디어렙 도입 등으로 미디어시장 재편이 예고되어 있기 때문에 새 해에도 시작부터 그리 조용하지는 않을 듯싶다. 혹자는 종편채널의 도입과 방송 광고시장의 경쟁체제 도입이 미디어 산업 발전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하고, 또 혹자는 경쟁과 효율성을 빌미로 미디어의 공공성을 말살하려는 음흉한 음모를 의심하기도 한다. 사실, 어떤 주장이 더 논리적이고 시대정신에 부합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단정적으로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은 편이다. 다만, 종편이나 미디어렙의 도입이 성공하기 위해서라도 방송콘텐츠 산업이 활성화되어야할 것이고, 미디어의 공공성을 실질적으로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양질의 다양한 콘텐츠가 시청자들에게 고루 서비스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논란의 와중에도 ‘콘텐츠’라는 공통분모는 항상 존재하는 셈이며, 오늘날 미디어 산업의 전 세계적인 트렌드 역시 미디어 기술 자체나 플랫폼으로부터 콘텐츠 경쟁력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본격적인 다매체 다채널 시대가 도래 하면서 콘텐츠의 양적인 수요증가 뿐만 아니라 새로운 디지털콘텐츠 부족현상이 야기되고 있으며, 이는 방송영상산업 발전에 분명한 장애요소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볼만한 콘텐츠가 부족한 상태라면 시청자들은 디지털TV 구입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게 될 것이고, 디지털 콘텐츠 시장의 활성화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제작자들 또한 신규 투자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기존의 독과점 시장에 안주하고 있던 방송사업자로서는 이처럼 불확실한 상황에서 스스로 독점적 지위를 박차고 나설 이유가 없다고 판단할 것이고, 이는 결국 디지털 전환의 동인을 훼손하는 악순환의 고리로 나타나지 않겠는가.

 이와 같은 우려에 대비하고 콘텐츠 제작 현장의 다양한 요구들을 반영하기 위해 지난달 말, 방송통신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디지털방송콘텐츠 지원센터 건립’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예정된 순서대로 국회 예산심의를 통과하여 지원센터 건립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른다 하더라도 향후 2년 뒤에라야 제 기능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는 않다. 다만, 디지털방송콘텐츠 지원센터를 통해 종편채널과 미디어렙 도입을 위한 제작 인프라가 강화되고, 시청자들에게 양질의 다양한 콘텐츠를 서비스할 수 있는 여건이 일부 나마 제공된다면, 논란 많았던 올 한 해 방송계 이슈들 중에서 그나마 한마음으로 박수치고 환영할 일이 아닐까 싶다. 지원센터의 성공적 운영을 기원하며 몇 가지 첨언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지원센터 건립이 신규 콘텐츠 제작 및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고 PP와 독립제작사의 제작 여건 개선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는 일반적인 기대와 함께, 지원센터 운영 방식에 대한 우려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지원센터 운영주체가 방송통신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로 이원화 되어 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양 기관으로부터 이중적인 관리.감독을 받을 가능성이 존재하며, 이는 사업운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따라서, 분산되어 있는 정부의 콘텐츠 지원체계를 조정하여 지원센터의 기능적 효율성을 강화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한, 현재까지 지원센터 건축예정지 주변의 도시 자족기능이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에 시설 및 인력의 집적에 따른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기까지 다소의 시간적 지체는 불가피해 보인다. 즉, 지원센터의 자율 운영 능력이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기까지 초기 운영자금 지원이 매우 중요할 것으로 보이며, 이에 대한 대비책이 별도로 마련되어야 한다.

 한편, 지상파방송 혹은 대규모 MPP들의 경우 디지털 전환에 따른 콘텐츠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자체제작시설을 확장하거나 기존 시설을 장기 임대하는 등의 계획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원센터를 건립하더라도 이용할 의사가 없거나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즉, 지원센터 이용 의사를 가진 사업자들 대부분이 중소규모 PP 혹은 독립제작사들이라고 가정한다면, 이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센터 운영 방안을 특화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예를 들자면, 시설사용료 기준을 최대한 낮게 책정한다거나 혹은 지원센터의 일부를 ‘중소규모 사업자 전용’ 제작시설로 특화시키는 방안도 고려해 봄직하다.

 ‘디지털방송콘텐츠 지원센터 건립 사업’이 공론에 부쳐지기까지 관계기관의 숨은 노력이 결코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원센터 건립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쟁력을 갖춘 양질의 콘텐츠 제작을 위해 본격적인 지원정책을 펼치는 일일 것이다. 따라서 지원센터 건립 사업은 이제부터 다시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이재호(동아방송예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