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짜리 ‘재송신 협의체’ 출범

반쪽짜리 ‘재송신 협의체’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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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지상파 방송사와 유료방송 사업자의 재송신료(CPS) 협상을 마무리하기 위한 정부 주도의 재송신 협의체가 발족했다. 직접적 이해당사자인 지상파 방송사가 참여하지 않아 반쪽짜리 협의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개입 자체가 특정 사업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811일 재송신 협의체를 발족하고 제1차 회의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협의체는 방송경제법률시청자 분야의 전문가 10인으로 구성됐으며 위원장은 미래부와 방통위가 공동 선정한 전영섭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맡았다. 위원으로는 강정화 한국소비자연맹 회장 김경환 상지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김성환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 김주훈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 소장 신홍균 국민대 법학과 교수 윤성옥 경기대 언론미디어학과 교수 최성진 서울과학기술대 매체공학과 교수 홍대식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황근 선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나다순) 등이 참여했다.

협의체는 재송신 관련 사항을 논의하고 추후 공청회 등을 통해 업계의 의견 수렴을 거친 뒤 개선 방안을 정부에 건의할 예정이다. 정부는 협의체가 건의한 사항을 고려해 재송신 관련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미래부와 방통위는 72일 유료방송 사업자들과 협의체 구성에 합의한 뒤 730일 회의를 개최할 계획이었으나 지상파 방송사가 협의체 참석 및 위원 추천을 거부하면서 첫 회의를 연기한 바 있다. 지상파 방송사는 유료방송 사업자와 진행 중인 소송 결과가 나와야 참석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며 회의 연기를 요청했으나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지상파를 대변할 수 있는 전문가를 추천해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지상파 방송사 참여 없이 정부와 유료방송 업계가 추천한 위원들로 구성된 협의체가 출범했고 반쪽짜리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됐다. 실효성 논란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이유다.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지상파 방송사와 유료방송 사업자 간 재송신 갈등은 지난 2012년 법원이 지상파 방송사의 저작권 및 저작인접권 주장을 인용하는 판결을 내리면서 일단락되는 듯 보였으나 이후 CPS 산정 기준을 둘러싼 지상파와 유료방송 간 입장 차이가 극명하게 갈리면서 또 다른 분쟁으로 접어들었다.

현재 지상파 방송사는 계약이 만료됨에 따라 콘텐츠 제작비 상승 및 국민 관심 행사(올림픽월드컵) 중계료 추가 부담 등의 이유를 들어 기존 월 280원의 CPS400원으로 올리는 방안을 제시했으나 유료방송 사업자들은 인상 비율이 과도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유료방송 사업자들은 지상파의 일방적인 가격 인상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정부에 중재를 요청했고 정부는 직접 협의체를 구성해 재송신 갈등 중재에 나섰다. 지난해 말 시청자 권익 보호를 내세우며 직권조정 재정제도 방송 유지 및 재개 명령권 등을 골자로 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의결한 데 이어 또다시 사업자 간 갈등에 직접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정부의 개입 자체가 특정 사업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개연성이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홍원식 동덕여대 교수는 정부가 방송 유지와 강제 중재를 도입하는 것은 실질적인 사업자들 간 협상에 대한 대안으로 작동하기 보다는 협상을 거부하기 위한 절차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협상을 저해함으로써 발생하는 특정 사업자의 이익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CMB 등 일부 유료방송 사업자들은 재송신 계약이 만료됐음에도 불구하고 협상에 적극 임하지 않고 있어 지상파 방송사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다. 지상파 방송사 측은 재송신 계약이 지난해 12월 말 만료됐는데도 CMB가 지상파를 가입자들에게 무단 재송신하고 신규 가입자를 유치하고 있어 일단 신규 영업만 중단시켜 달라는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유료방송 사업자들이 저가 요금 구조로 방송 시장의 균형 발전을 왜곡시키고 있는데 정부가 이를 지적하고 바로잡기는커녕 오히려 콘텐츠 제작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콘텐츠의 안정적인 재생산을 위한 합리적인 수익 배분을 추진하지 않는다면 국내 방송 산업의 미래를 낙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