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방송시장은 케이블TV를 비롯한 유료방송 서비스의 급속한 확장에 힘입어 2000년대 후반까지 양적 성장을 지속해 왔다. 2008년 지상파 방송의 매출액은 3조 8천억 원으로 2000년 대비 약 22% 성장한 반면 같은 기간 케이블SO의 총 매출액은 약 4배(2조 4천억 원), PP의 경우는 약 3배(4조 2천억 원) 이상 증가했다. 방송광고 매출의 경우 지상파 방송은 하향 정체하고 있는 반면, PP의 광고매출액은 8,800억 원으로 2000년 대비 4배 이상 증가하였다. 그러나 방송시장 성장 잠재력은 최근 들어 급속하게 축소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선 지상파 방송의 경우 공영방송의 수신료가 동결된 상황에서 광고매출은 2002년 2조 7천억 원으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 매년 약 1천억 원씩 감소하여 2008년에는 2조 2천억 원을 기록하였으며, 방송사별 경영여건 또한 급속하게 악화되고 있다.
국내 방송시장의 주요한 문제점은 지금까지의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지상파 공영방송의 지나치게 낮은 수신료, 유료방송의 낮은 이용료, 저평가된 지상파 광고요금 등으로 인해 방송시장의 모든 분야에서 저가의 시장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매체별 수익모델이 광고로 수렴되고 있는 가운데 광고재원을 최근 성장정체에 도달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로 인해 사업자간의 경쟁은 날로 심화되어 사업자별 수익성은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어서 방송산업의 지속적 성장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더욱이 방송광고 판매 분야의 경쟁체제 도입에 따라 취약한 수익구조를 갖고 있는 지역방송은 경영의 악화를 예상할 수 있다.
지상파 방송 광고판매 분야의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 독점 체제에 대해서는 한편으로 방송의 편성 ․ 제작과 광고영업의 분리, 광고요금 조절 기능, ‘연계판매’를 통한 취약매체 지원 기능 등을 통해 방송의 공공성 및 다양성 확보에 기여한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 요금 규제로 인한 광고요금 저평가 및 연계판매로 인해 자원 배분의 비효율을 유발한다는 부정적 평가가 공존해 왔다. 방송통신위원회는 2008년 이후 광고시장 자율성 확대를 통한 광고시장 및 방송산업 활성화를 목표로 미디어렙 경쟁체제 도입을 추진해 왔다. 특히 현행 KOBACO 독점 체제의 근간이 되고 있는 방송법 제73조 제5항 및 동시행령에 대한 헌재의 ‘헌법 불합치’로 결정으로 미디어렙 경쟁체제 도입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번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방송광고판매대행사의 범위를 ‘KOBACO와 KOBACO가 출자한 회사로 한정’하는 현행 ‘대행제한제도’의 위헌성을 지적하면서도 방송광고 직접 판매를 금지하는 위탁강제제도의 정당성, 즉 미디어렙의 필요성과 효용성을 인정하였다. 헌재는 특히 복수 미디어렙에 의한 ‘실질적 경쟁체제’의 도입을 요구하면서도 방송의 공공성, 공익성, 다양성 담보를 위한 제도(허가제, 가격 상한제, 프로그램 쿼터제, 보조금 제도, 허가 취소 등)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헌재는 단순히 경쟁 확대만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방송의 공공성 확립과 시장경제 원리의 조화’를 추구하는 입장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경쟁체제 도입을 통한 광고시장 확대 이외에도 매체 간 균형 발전 및 미디어 다원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의원들의 법안에서도 이 부분에서는 이견이 없었다.
의원별 광고판매제도 법안의 핵심 쟁점은 경쟁유형의 선택 또는 경쟁구도의 설정, 소유구조, 설립요건, 업무영역, 취약매체 지원방안 등이었다. 특히 ‘1사 1렙’ 형태의 완전경쟁 유형이 미디어렙 업무영역 확대(이종매체 간 광고결합판매 허용)와 결합될 경우 지상파 3사의 광고시장 독과점 심화로 인해 지역방송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시장성과 및 방송구조 개편 여부 등에 따라 경쟁강도 및 업무영역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미디어렙 경쟁체제 도입을 위해 13년간의 점진적 접근법을 선택한 프랑스의 사례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즉, 1974년 프랑스에서는 국영방송사(ORTF)가 해체되면서 그 산하에 통합되어 있던 3개의 텔레비전방송사(TF1, Antenne 2, FR3)가 각각 분할됨에 따라, 그때까지 ORTF의 광고영업을 대행하고 있던 공영 미디어렙 RFP의 독점유지 여부가 문제로 부상하였다. 프랑스 정부는 RFP의 즉각 폐지로 인한 혼란과 충격보다는 방송 발전과 공공서비스 확충을 위한 재원 마련이라는 공익과 경쟁을 통한 광고시장 발전이라는 효율성을 함께 고려하였다. 구체적으로 TV 방송사 TF1, Antenne 2, FR3의 광고판매를 각각 담당할 3개의 공영 미디어렙인 TF1 Publicité, Antenne 2 Publicité, Espace 3을 출범시켜, 공영 미디어렙 간 경쟁체제를 유도하였으며, 이는 RFP 조정하의 ‘제한 경쟁’이었다. 한편 1980년대에 민간 상업방송(Canal+, La 5, TV6 등)이 잇따라 개국함에 따라 이들 민영방송의 광고판매를 담당할 민영 미디어렙이 설립되었다. 그리고 1987년 프랑스 정부는 RFP를 완전히 해체하고, 민영방송으로 전환된 TF1에 TF1 Publicité의 RFP 지분을 100% 넘김으로써, RFP에 의한 방송광고 독점시대를 종식시켰다. 그리고 현재까지 프랑스는 공영 미디어렙인 France Télévision Publicité(FTP)와 민영 미디어렙 TF1 Publicité가 경쟁하는 공 ․ 민영 미디어렙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점진적인 변화는 경쟁 도입으로 인한 혼란과 충격을 막고 TV 광고비의 급격한 확대가 유발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완화시켜, 방송과 광고산업의 체계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끝으로 경쟁체제 도입 시 매체 간 균형 발전을 통한 다원성 확보를 위해서는 지역방송 지원이 불가피하다. 이와 관련해서는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연계판매 유지 방안, 방송발전기금 활용, 지역방송 전파료 인상, 방송 3사의 광고매출점유율 상한제 도입 방안 등을 합리적으로 혼합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기존 광고비 배분방식 개선 방안에 대한 논의도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수범(인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