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중(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한나라당이 밀어붙인 미디어 개악은 그 내용 만큼이나 비민주주의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방송산업을 신산업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명분으로 신문과 대기업 심지어 외국자본의 방송 보도 영역 진출을 허용하는 신문·방송 관련법 등 심각한 사회적 논란을 야기할 만한 법안들을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에 통과시키려 했다. 법안에 대한 기초적인 검토 절차도 제대로 하지 않고 의결하려 했다. 그리고 그런 비민주적인 인식이 2009년 7월 22일의 비민주적 법안 강행 처리 과정으로 나타난 것이다.
2008년 12월 졸속 입법 처리 시도에 대한 언론노조와 시민단체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고, 4월 재보선을 앞둔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여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미디어위)도 비민주적으로 운영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언론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미디어 관련법의 개정 논의 기구의 활동을 100일에 한정하고, 자문기구로 그 위상을 제한했다. 그리고 미디어위는 17차례의 회의와 8차례의 주제, 지역별 공청회 정도로 그 활동을 마무리 하였다. 대부분의 시간을 형식 절차 논의와 과제 설정 등에 허비하였고, 부산과 광주의 지역 공청회는 ‘무효’라는 비난까지 받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여론조사도 선동 위험성과 비용문제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거부했다. 그렇다면 선거관련 모든 여론조사도 선동의 위험이 있으니 그만 두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2009년 7월 22일 국민의 반대를 무릅쓴 폭거를 저질렀다. 자리에 없었던 김형오 의장, 나경원 의원이나 단상을 점거하고 있던 다른 의원들의 자리에서 찬성 버튼이 눌러지는 대리투표가 행해졌고, 사회를 보던 이윤성 국회부의장이 방송법안 투표가 종료되었음을 고지한 이후 전광판에 부결로 결과가 나타나자 재투표를 요청했고 결과는 가결로 바뀌었다. 헌재는 이에 대해 위헌·위법 소지가 있다고 보았지만, 해결은 국회가 하라고 결정했다.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헌재의 책임방기였다.
한나라당이 미디어법을 개정하겠다고 내세운 명분은 순차적으로 방송산업의 성장과 여론독과점 완화였다. 애초 방송산업의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내세웠지만 이 논리들이 실증적으로 부정 당하자 지상파 여론 독과점 해소를 주장하였다.
한나라당은 대기업(자본권력)의 진출이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 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매체별로 증가하는 일자리 수만을 제시하였을 뿐, 일자리의 종류(즉 구성)는 물론 일자리 창출의 근거가 되는 기초 자료를 제시하지 않았다. 일자리가 증가한다는 근거도 없지만 그 일자리의 질이 어떤지도 알 수는 없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1996년 FCC가 언론사의 소유제한을 완화했던 ‘텔레커뮤니케이션법’이 통과된 이후 언론계 종사자들의 수가 전체적으로 감소했다는 결과 보고가 있다. 또 케이블 도입 초기 PP에 진출했던 대기업 자본이 다 철수했던 사례처럼, 대기업의 방송영역 진출이 프로그램 질 향상에 기여하지 못할 것이다. 문화의 생산은 자본의 크기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신문방송 겸영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나라는 없고 신문방송 겸영 허용이 세계적인 추세라는 주장과 이것이 궁극적으로 여론 다양성을 강화할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시장자유를 앞세우는 미국도 동일 여론시장에서 신문방송 소유겸영을 금지하고 있다. 2003년과 2007년에 FCC가 이를 풀려고 두 번이나 시도했지만 각각 법원과 상원이 거부하여 실패하였다. 짐 보멜라 국제기자연맹(IFJ) 회장은 신문·방송·통신의 결합으로 유럽 언론이 소수의 자본가에게 집중되면서 언론이 이윤 수단으로 전락하고, 여론 독과점이 심화되고, 언론의 비판기능이 사라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러한 우려가 증대하고 있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면 추세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처럼 과점신문이나 대기업이 지상파 방송이나, 종편․보도 PP에 진입을 허용하는 것은 이미 제도언론에서 강한 목소리를 구축한 기득권층의 입장을 강화하는 것일 뿐 아니라, 소수자, 서민의 목소리를 심각히 위축시켜 결과적으로 여론다양성을 저해할 것이다.
논리도 빈약하고 여론의 지지도 못 받았지만 위헌, 위법하게 미디어 관련법을 통과시킨 결과 대기업, 신문은 지상파 10% 지분 진출이 가능(2012년부터)해졌고, 종합편성채널은 30%까지 진출 가능해졌다. 게다가 지분 소유에 총합개념도 없다. 따라서 전경련 방송, 삼성 중앙 방송, 조중동 방송 등 다양한 조합이 가능하다는 우려도 있는 것이다. 이런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보완은커녕 방통위는 우선 종편 허용을 준비하고 있고 이를 위해 종편 의무재송신, 광고제도 변화(중간광고, 간접광고, 가상광고 도입), 시청료 인상 등을 추진하고 있다.
미디어 관련법의 개악이 단기적으로는 정부, 여당, 기업, 수구 신문 등 보수 진영의 이데올로기 구축에 유리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장 두려운 것은 장기적으로 대기업(자본 권력)이 사회 전체를 장악하는 결과를 초래할 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이번 미디어 관련법 개정을 둘러 싼 갈등의 핵심은 겉으로는 미디어 산업 발전과 방송의 공공성 대립 정도로 보인다. 하지만 진정한 핵심은 민주주의와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언론의 기능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세계관의 차이이다. 1990년대 서구는 이미 1960년대부터 ‘전통적 자유주의’를 앞세워 언론에 진출한 대자본과 기존 언론자본들이 추동하고 있는 미디어 집중 현상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고 대안을 찾기 시작하였다.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는 소위 검찰의 ‘깨끗한 손’ 운동인 마니 풀리테(mani pulite)를 중단시키고, 2004년 ‘가스피리법’을 통해 공영방송을 장악하고, 선거에 자기 소유 언론을 동원하는 등 민주주의를 초토화 시켰다는 이야기가 남의 나라 이야기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현대로 올수록 언론이 정치권력은 물론 자본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민주주의를 지키는 언론 본연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