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렙, SBS와 ‘조중동’의 동상이몽

미디어렙, SBS와 ‘조중동’의 동상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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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웃음이 나왔다. ‘조중동’에서 관련 미디어렙 관련 TFT를 꾸렸다는 얘기와 진성호 의원(한나라당)이 냈다는 미디어렙 관련 법안 내용을 접하고 나서다. 진 의원의 법안에 올인하는 조중동, 진 의원과 같은당 소속 한선교 의원의 법안에 정력을 쏟는 SBS, 아니 정확하게는 SBS를 자회사로 거느린 윤세영 회장이 지배하는 SBS홀딩스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한 의원 법안대로라면, 51%까지 소유할 수 있을뿐더러, SBS뿐 아니라 유료방송에 진출한 계열 PP와 인터넷 분야까지 포함하는 크로스미디어 판매도 열려 있다. 종이신문이나 인터넷 광고의 상당 부분을 잠식하며 이윤을 크게 늘릴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지역민방 네트워크를 ‘필요악’에서 ‘불필요악’으로 전환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그 어느 때보다 SBS 출신 인사들을 방송통신위원회를 포함해 현 정권에 포진시킨 이점을 최대한 살려, 적당한 시기에 SBS를 위성방송이나 케이블을 통해 전국에 재송신하는 이 프로젝트를 관철한다. 그러면, 그동안 지역민방에 내주던 전파료나 연계판매 광고도 고스란히 자기 수중 안에 떨어진다. 위성방송에 재송신 수수료를 준다 해도 이게 더 훨씬 남는 장사다. 다른 오묘한 셈법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게 윤 회장과 SBS홀딩스의 미디어렙 접근법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반면, ‘조중동’은 진 의원의 법안을 가장 반길 수밖에 없다. 법안 내용 자체가 신문, 아니 종합편성채널에 진출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는 조중동의 이해를 전폭적으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상파방송과 동일한 서비스에 해당하는 종합편성채널을 미디어렙 적용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내용이 그렇다. 이렇게 되면, 미디어렙 외부에서 종합편성채널과 종이신문, 그리고 인터넷까지 포함해 마음대로 결합해 영업할 수 있는 이점을 누리게 된다. 게다가, 진 의원 법안은 미디어렙 업무영역을 지상파방송에만 한정해 지상파방송은 크로스미디어 판매하는 길을 봉쇄해 놨다. 자신들에게는 활짝 열어놓고, 지상파방송은 막아놨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게다가, 사적 소유 미디어렙 지분을 10%까지 소유할 수 있도록 배려까지 했으니, 금상첨화다.

흥미로운 상상력의 날개가 돋는 것은 여기에서부터다. 진 의원의 법안에 대해 윤 회장과 SBS홀딩스는 어떤 평가를 내릴까? SBS가 소유할 수 없도록 했으니 당연히 반대할 것이라고 본다면, 단견이다. 사적 소유 미디어렙에 대한 방송사 소유를 금지한다고 해도, SBS홀딩스는 SBS가 아닌 SBS홀딩스의 자회사, 이를테면 윤 회장의 아들 윤석민씨가 지배하고 있는 SBS콘텐츠허브(옛 SBSi)를 통해 사적 소유 미디어렙을 소유하고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 방송법상 지주회사의 자회사끼리는 ‘특수관계자’ 관계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규제 공백을 메우지 않는 한, 진성호 의원의 법안도 SBS홀딩스의 미디어렙 지배를 결코 막을 수 없다. 자유선진당 김창수 의원이나 창조한국당 이용경 의원의 법안도 이런 허점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SBS홀딩스로서는, SBS가 아닌 다른 자회사가 미디어렙을 소유 지배할 수만 있다면, 종합편성채널에 미디어렙이 적용되든 말든 개의치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진 의원의 법안에서 중요해지는 것은, 미디어렙 업무영역을 지상파방송에 국한해 크로스미디어 판매를 3년 동안 원천 봉쇄하는 부분, SBS홀딩스의 자회사가 소유․지배하는 미디어렙에 걸치게 되는 ‘조중동’의 지분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이 지분이다. ‘연립정부’를 허용하지 않는 게 족벌 가문의 속성임을 감안하면, 이 지분은 윤씨 ‘가문’과 방씨 가문(조선), 김씨 가문(동아), 홍씨 가문(중앙) 사이의 방송 시장을 둘러싼 파워게임의 궁극적인 불씨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적 소유 미디어렙을 둘러싸고 SBS홀딩스와 ‘조중동’이 품는 각자의 꿈과는 별개로, 미디어렙에 대한 상식적인 접근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지상파방송과 동일한 서비스인 종합편성채널 역시 미디어렙 적용 대상이 돼야 한다. 미디어렙은 ‘규제’, 그것도 편성의 한 축을 이루는 광고 규제이기 때문이다. 둘째, 2개 미디어렙에 대한 업무영역 지정은, 코바코 전담체제가 두 개의 업무영역을 각각 독점하는 복점으로 분할되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코바코 후신과 사적 소유 미디어렙 두 개로 할 경우, 업무영역은 구분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방송사의 ‘간택’을 받기 위한 미디어렙 간 실질적 경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셋째, 신문․뉴스통신이나 방송은 사적 소유 미디어렙을 소유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방송에 대해 소유를 허용하려면 지상파방송 3사와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이 사적 소유 미디어렙에 동일한 지분을 갖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 넷째, 크로스미디어 판매 도입으로 나타날 수 있는 특정 방송으로의 광고 쏠림과 같은 부작용은 1개 사업자에 대한 점유율 상한선 도입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맞다. 통신산업에서 결합상품 종류와 조건에 대해 규제당국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것처럼 크로스미디어 판매의 종류와 조건에 대해 승인을 받도록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섯째, 방송사를 소유하는 지주회사의 자회사와 손자회사는 반드시 ‘특수관계자’로 규정해야 한다. 그래야 규제 허점을 노려 3년 허가제 아래에서 지상파방송을 주식시장에 마음대로 상장하는 것과 같은 블랙 코미디가 다시는 벌어지지 않는다. 쓸데없는 걱정이 아니다. 일부 지역민방이 ‘SBS 따라 배우기’에 나서 상장을 추진하고 있음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