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가 궁금한 사람들과 궁금하지 않은 사람들

미네르바가 궁금한 사람들과 궁금하지 않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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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가 궁금한 사람들과 궁금하지 않은 사람들

민일성 / 데일리서프라이즈 기자

‘사이버 경제대통령’으로 불리는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에 대한 반응이 갈수록 양극화되고 있다.

주류언론들과 당국자들은 미네르바가 과연 어떤 사람인지 정체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반면, 인터넷에서는 미네르바가 보내는 메시지가 뭘 의미하는지에 관심을 쏟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관계당국, 신문·방송 같은 주류 언론은 미네르바의 정체 규명에 여전히 주목하고 있다. 정보당국은 신원을 확인했다며 신원조회 사실을 시인했고 기획재정부는 정부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서며 미네르바와 소통을 원한다고 여론을 떠보기도 했다. 언론은 D증권 J 부장이니, 0.1%의 극상위층이니 설에 불과한 풍문을 근거로 그의 정체에 대한 기사를 쏟아냈다.

법무부장관과 한나라당 의원은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범죄 구성 요건에 해당한다면 당연히 수사를 해야 한다”며 수사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언론들은 11월 들어서는 ‘신드롬’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 ‘왜 사람들이 열광하느냐’이다. KBS 시사투나잇의 후속작인 시사360이 첫 야심작으로 ‘미네르바 신드롬’을 다뤘지만 정부측 입장을 전달하는데 주력해 왜곡·편파 보도 시비에 휩싸였다. 당시 인터뷰를 했던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는 편파 방송을 비난하며 “미네르바님 미안합니다”라는 공식 사과 글을 KBS 게시판과 포털사이트 다음 토론방에 올리기도 했다.

경제전문가도 나섰다.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미네르바를 ‘사이비교주’에 비유해 사람들이 맹신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폄하했고 금융위원장은 “고장 난 시계도 하루 두 번은 맞는다”며 미네르바를 비판했다.

반면 인터넷의 누리꾼들은 “‘미네르바’라는 아이디를 가진 정보량 2진수의 01001011의 그냥 단순 데이터”로 만족하며 ‘미네르바 공부하기’에 나섰다.

미네르바가 다음 토론방 아고라 논객이니만큼 아고라의 흐름을 살펴보면 촛불정국 동안 정치, 사회, 자유토론방에 주로 몰렸던 누리꾼들이 경제토론방으로 대거 이동해 아고라는 ‘경제토론 특집판’이 됐다.

미네르바가 글을 올리면 수백 개의 댓글과 본 글이 따라붙으며 그가 언급한 경제 용어와 비유법, 전망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다.

미네르바 글만 모아놓은 카페들이 속속 만들어졌고 누리꾼들은 특정한 주제의 카페를 새로 만들 때마다 아예 ‘미네르바 경제글’ 란을 하부 디렉터리로 만들고 있다. 한 카페는 그의 글을 모두 모아 책으로 출간해 판매하고 있다.

미네르바가 추천한 동영상, 시사프로그램, 다큐멘터리, 일본 드라마 등도 화젯거리다. 누리꾼들은 ‘미네르바 추천 영상’을 찾아서 본 후 감상평을 남기고 다른 누리꾼에게도 권하고 있다.

실제 오프라인으로 연결돼 미네르바 글을 읽고 모여서 토론하는 모임들도 속속 생겼다. “미네르바를 모르면 왕따 당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금융계와 시장 관계자들에게도 미네르바의 신동아 기고와 그간의 글은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서점가에도 ‘미네르바 돌풍’이 몰아쳤다. 절판된 책을 제외하고 그가 추천한 책 대다수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지난 11월 27일 교보문고 집계에 따르면 12권이 분야별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들었다. 경제사 부문에서는 ‘자본주의 역사 바로알기’ ‘더 박스’ ‘지성의 흐름으로 본 경제학의 역사’ ‘세속의 철학자들’ 등이 5위 안에 들었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는 13권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누리꾼들은 이제 미네르바의 정체에 대해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MBC 기자가 ‘미네르바와의 만남’을 요청하는 글을 아고라에 올렸을 때도 누리꾼들은 ‘그냥 놔두라’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오히려 일부 누리꾼들은 최근 미네르바가 다시 글을 올린 것에 대해 우려하기도 했다. 그가 사정당국이나 언론의 포위망에 잡히지 않고 ‘마음속의 영웅’으로 남아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미네르바는 그간 아고라 글을 통해 복잡한 경제 상황을 설명해왔지만 끊임없이 역설해왔던 것은 “사회 구조 매트릭스에 대한 자각과 각성과 깨달음을 통해서 나 자신과 내 가족과 내 경제적 재산권을 지키고 나의 권리를 지켜나가라”는 것이다.

그는 “사회 계급 체제가 이런 식으로 더욱더 견고해지고 이런 사회 구조적인 매트릭스 속에서 천민들 절대 다수가 사육 당하고 있다는 걸, 공동체 의식이라는 걸로 묶여진 사회 매트릭스라는 것 자체가 얼마나  집단 이기적이고 가증스런  피라미드 계급 구조였다는 걸 깨닫고……”라며 현 체제에 대한 강한 불신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의 언급은 연대와 시스템 속에서 해결방안을 찾는 것을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의 기둥을 세워줄 정치세력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스스로의 근력이라도 키우라는 안타까운 조언으로 보인다.

그는 토해낼 만큼 토해냈다. 누리꾼은 이진수로 그를 가슴에 새겼다. 이제 그가 건드린 수많은 금기들을 창조적 파괴로 발전시켜 또 다른 세상을 개척해내는 것은 ‘01001011의 이진수’를 벗어나 실제 현실을 살아내는 시민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