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통증 인권위로 인해 한국 인권이 썩을까 두렵다

무통증 인권위로 인해 한국 인권이 썩을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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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한국의 국가인권기구인 국가인권위는 다른 나라에서도 몹시 배울만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국가인권위가 국가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비교적 잘 유지했으며 진정사건에 대한 침해구제만이 아니라 법안에 대한 인권검토 등 정책 활동을 해왔기 때문이다. 독립성이 없다면 국가권력의 인권침해를 방지하고 구제하기 어렵다. 실제 인권위에 진정한 사례 중 70~80%가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라는 사실은 이를 잘 말해준다.

 

그런데 새 정부 들어 한국의 국가인권위는 독립성을 훼손당하며 정부에 휘둘리고 있는 실정이다. 조직을 21%나 축소당했고 조직이 개편되어 정책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을뿐더러 차별시정기구의 인력을 증가하기로 한 약속도 어겨 소수자에 대한 차별 구제의 가능성을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다. 게다가 새 인권위원장 자리에 인권에 대한 감수성도, 관심도 없는 사람을 세워 정권의 하수인으로 만들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과 비판이 높다.

 

인선절차를 마련하라는 시민사회의 요구와 ICC(국가인권기구간 국제조정회의)가 올해 한국의 인권위를 심사하면서 ‘임명 과정은 후보자들의 채용과 심사 과정에서 공식적 공개 자문과 시민사회의 참여에 관하여 아무런 사항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는 우려 섞인 평가를 무시한 채 이명박 대통령은 입맛에 맞는 사람은 절차 없이 인선하였다.

 

세간에는 인권위원장 하나가 무슨 큰 훼손을 하겠냐고 하지만 이는 현실을 모를뿐더러 인권위의 역할을 다른 국가기구정도로 생각하는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인권위원장은 인권침해 진정사건에 대한 결정이나 법안에 대한 정책권고 등의 안건을 전원회의나 상임회의 상정하는 권한을 갖고 있기에 특정한 안건을 유예시키려면 얼마든지 유예시킬 수 있는 사람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인권위원장을 ‘다른 행정기구의 장’ 정도로 생각하면 인권위의 역할을 못한다는 점이다. 입법부나 행정부, 사법부가 반인권적인 정책을 세우거나 집행할 때 이에 대한 비판하는 역할을 하려면 그만큼 ‘인권 감수성’과 ‘권력에 대한 독립의지’가 없으면 할 수 없다. 적당히 대통령이나 의원들의 눈치를 보면서 일한다면, 인권위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런데 이번에 임명된 현병철 교수는 인권위의 조직축소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다했으니 ‘독립성’을 유지할 의지가 없음은 유추가능하다.

 

그래서 현병철 교수가 인권위원장으로 취임하면서 서서히 정권의 하수인 역할을 할까 인권활동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취임한지 일주일도 안 되어 스스로 인권 감수성과 인권원칙에 대한 이해가 없음을 두 번이나 드러내었다.

 

먼저 취임식이 있던 날 경찰이 휠체어 장애인들을 인권위 건물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는데도 새 위원장이 된다는 현병철은 그 옆을 태연하게 지나갔다. 장애인의 이동권이 경찰이라는 공권력에 의해 침해받는 현실을 외면한 채 취임식만 치르면 된다는 태도를 지닌 인권위원장의 ‘무감한 인권감수성’에 가슴이 턱 내려앉았다. 인권활동가들은 긴급구제신청을 하였을 뿐 아니라 경찰의 방패를 온 몸으로 걷어내려 하였다.

 

두 번째 사건은 연일 보도되고 있는 쌍용자동차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입장이다. 쌍용차가족대책위가 진정을 하자 새 위원장이 긴급성명을 냈지만 인권함량 미달의 생색내기일 뿐이다. 전쟁 시에도 의료와 음식은 공급하는 게 인도주의 원칙이다. 공장안의 노동자들이 극심한 생명권의 위협을 받고 있는데도 새 인권위원장이라는 사람은 ‘위협받고 있는 생명권 보호’보다는 ‘양측의 문제이니 양측이 평화적으로 해결’하라는 양비론적인 입장만을 내놓았다. 게다가 국제사면위원회에서도 대테러용인 테이저 건은 살상위험이 있다고 보고한바 있는 무기를 ‘경찰장비 규정에 맞게 사용하면 된다’는 인권적이지 않은 입장을 내놓았다. 인권위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긴급구제조치나 직권조사의 기능을 하고 있지 않은 채 성명으로 적당한 모습만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

 

수십 개의 인권단체가 모여 구성한 ‘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은 정부의 인권위 흔들기가 현 정부의 반인권정책 기조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인권위에 대한 비판과 견제는 정부의 반인권정책에 대한 비판과 견제일수밖에 없다. 인권침해 현실에 대해 통증을 느끼면 바로 치료방법을 찾고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통증조차 느끼지 못하면 썩을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무감각한 인권위의 태도 때문에 사람들의 인권이 썩어 들어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인권활동가들은 인권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인권위가 취하는 행보에 대해 끊임없이 보며 비판하는 활동을 할 것이다.

명숙(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 집행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