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변수, 클리어쾀

또 하나의 변수, 클리어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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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디지털 전환 사업이 점점 가속도를 내는 가운데, 유료 방송 업계를 중심으로 ‘클리어쾀’ 분쟁이 급부상하고 있다.

‘클리어쾀’은 고속의 디지털 변조에 사용하는 기술이자 제한된 주파수 대역에서 전송 효율을 향상시키기 위해 반송파의 진폭과 위상을 조합해 변조하는 방식을 취하는 ‘쾀’을 ‘제거’하는, 즉 ‘클리어(clear)’하는 기술을 뜻한다. 그리고 ‘클리어쾀’은 해당 쾀을 제거함으로서 암호화 되지 않은 채널 이외의 채널을 수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특징이다. 즉 디지털 전환된 영상 신호를 손쉽게 수신할 수 있도록 신호에 걸린 암호를 해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케이블 업체는 클리어쾀 기술을 ‘케이블 디지털 전환 정국의 핵심 열쇠’로 삼고 있는 분위기다. 클리어쾀 기술을 활용하면 비교적 손쉬운 케이블 디지털 전환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도 이례적으로 제조사와 케이블 업체의 실질적인 만남을 주선하고 나서며 해당 기술의 도입을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문제는 클리어쾀 기술이 IPTV나 위성방송에는 해당사항이 없다는 것에 있다. 기술의 특수성 때문에 케이블 업체만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즉 클리어쾀 기술이 상용화되면 미디어 플랫폼 점유면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는 케이블 업체의 시장 지배력이 강해진다는 점에서 IPTV와 위성방송은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특히 위성방송은 가뜩이나 DCS 분쟁을 두고 방통위와 케이블 업계에게 판정패를 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클리어쾀을 두고 벌어지는 그 반발의 정도는 더 심할것으로 보인다. 당장 KT 스카이라이프의 조직적 대응 가능성도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클리어쾀을 두고 벌어지는 논쟁은 업계의 이해관계가 전부라고 볼 수 없다. 해당 기술이 과연 디지털 전환 정국에 있어 ‘실질적인 디지털 전환’에 어느 정도 기여하느냐에 따라 각계의 의견대립도 표면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클리어쾀 기술은 디지털 전환의 혜택 중 하나인 ‘양방향 서비스’가 불가능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수백개의 채널이 제공되는 방송 서비스보다 지상파, 공익, 종교 방송 등 20~30개의 방송 서비스가 제공되는 클리어쾀 기술이 ‘저렴한 투자비용에 저렴한 이용료’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디지털 방송을 아날로그로 보기만 하게 하는 방송’이라는 비판을 가하는 실정이다. 한 마디로 ‘디지털 전환의 미완성’이라는 지적이다. 그런 이유로 1994년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클리어쾀을 지원하는 TV를 시청자가 구매한 다음 해당 기술을 이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펴왔지만 2011년 10월부터는 기본채널의 암호화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바 있다.

그런데 독특한 것은 미국의 경우 2011년 기본채널의 암호화를 허용하도록 요구한 주체가 바로 케이블 업체라는 것에 있다. 비록 ‘미완의 디지털’이라는 비판을 받기는 하지만, 다른 케이블 디지털 전환보다 투자 비용이 적은 저가형 디지털 전환 플랫폼인 클리어쾀을 케이블 업체가 스스로 반대하다니, 무슨 일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케이블 업체 내부에서도 클리어쾀 도입에 따른 부작용이 속속 나타났기 때문이다.

가장 큰 부작용은 저가형 케이블 디지털 전환이 가능해 짐으로서 덩달아 매체 콘텐츠 비용도 ‘저가화’되는 경향이 두드러질 가능성이다.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994년 클리어쾀 도입 이후 수백개의 채널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가입자들이 몰리면서 상대적으로 유통되는 콘텐츠의 가격도 ‘다운’되기 시작했다. 이에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P의 경우 수익급감의 직격탄을 맞기도 했다.

물론 방통위도 이런 분위기를 어느정도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방통위는 클리어쾀 연구반을 통해 아날로그 케이블 가입자 중 저소득층 등 약 35만 가구를 대상으로 해당 기술, 클리어쾀이 내장된 디지털 TV 구매를 보조할 방침이었지만 최근 업계 자율에 맡기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종합하자면, 클리어쾀에 대해서는 IPTV나 위성방송은 물론 케이블 내부에서도 SO와 PP의 입장이 다르고 SO도 각각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방통위는 해당 기술의 현실화를 추진함에 있어 우선 한 발 물러나 숨을 고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