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과 미국이 종편의 미래를 말한다

대만과 미국이 종편의 미래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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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까지 케이블방송 매출의 15배의 시장을 형성했던 대만의 지상파 방송사들은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03년에 케이블방송에 비해 3.7배 적은 시장으로 급격히 추락하고 만다. 대만에서는 그 5년의 시간동안 어떤 일들이 벌어졌던 것일까?

1. 대만 케이블TV의 사례

| 1993년, 유선라디오TV법(有線廣播電視法) 제정

대만의 지상파 방송은 1960년대에 출범했지만, 산이 많은 지형으로 인해 공중파가 수신되지 않는 곳이 많았다. 그래서 마치 예전 우리나라에 있었던 중계유선방송사와 같은 형태의 사업자가 공동안테나를 설치하여 지상파 및 자체뉴스를 전송해주었는데, 이것이 대만 케이블TV의 효시가 되었다. 그러나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대만의 케이블TV는 줄곧 음성적으로만 확대되다가 1993년에 이르러서야 유선라디오TV법이 제정되어 합법화되기에 이른다.

| 1999년, 유선TV법(有線電視法)으로 개정

1999년 개정된 대만의 유선TV법은 두가지 변화의 핵을 갖고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케이블방송과 전화사업자의 교차 소유를 허용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자국산 프로그램 20% 의무상영 조건을 없애는 것’이었다. 이 두가지 변화는 대만 케이블TV의 체질을 급격하게 바꿔놓는다.

값싼 외국산 프로그램들을 수입하면서 성장한 대만의 케이블방송사가 높은 시청률을 거둔 반면 케이블방송사에 주도권을 빼앗긴 지상파 방송사들은 광고수입이 감소하면서 제작비에 투입할 여력이 급격히 줄어들게 된다.

   
 

또 그 여파로 많은 제작인력들이 다른 분야로 빠져나가면서 좋은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능력마저 상실하기에 이른다.

결국 제작비 지출 감소는 장기적으로 대만의 콘텐츠 창작에 대한 선순환 구조를 파괴하기에 이르러 이전까지 ‘미국산 프로그램을 가장 적게 받고 자체제작 프로그램이 눈에 띄게 높은 국가’라던 대만에 대한 평가마저 급격하게 사라지기에 이른다.

이에 대해 SBS 정책팀의 엄재용 차장은 이를 두고 ‘대만 내의 제작 기반이 붕괴한 것은 물론 문화주권까지 위협받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 유선TV법 개정 이후의 대만 방송시장

1998년 케이블 텔레비전에 비해 15배 큰 시장을 형성했던 대만의 지상파 방송은 결과적으로 2003년에 이르러서는 케이블 텔레비전에 비해 3.7배나 적은 시장으로 급격히 쇠락한 상태다.

   
 

2010년 현재 대만은 이른바 ‘빅7’으로 불리는 케이블 방송사가 78%의 시청점유율을 보이고 있고, 지상파 방송사는 고작 14% 가량의 시청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80%에 가까운 시청점유율을 보이는 케이블 방송사의 경우도 100개가 넘는 채널과 9개의 24시간 뉴스채널이 난립한 상황을 감안하면 ‘흥하는’ 시장이 아니라 ‘공멸’하는 시장에 가깝다.

| 자극적·선정적 저널리즘의 선봉

대만의 100개가 넘는 방송채널은 이제 방송의 저질화를 넘어 ‘정치·사회적 양극화’의 주범으로 몰리며 대내외적으로 손가락질까지 받고 있는 형국이다.

애초 대만의 24시간 뉴스채널들은 국민당에 편향된 지상파 뉴스에 대한 반발로 생겼다. 그러나 법개정으로 인해 뉴스채널이 9개로 늘어나면서 극단적인 시청률 경쟁이라는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자 이들도 결국 자극적·선정적·가십성 보도를 쏟아내기에 이른다. 채널의 양적 증대가 곧 여론의 다양성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안이한 예상이 처참하게 빗나간 실례라고 할 수 있다.

2. 미국의 거대 미디어그룹들

| 1996년, 텔레커뮤니케이션법 개정

미국은 1996년 텔레커뮤니케이션법을 개정하면서 언론사에 대한 소유지분 제한을 대폭 완화했다. 그 결과 미국에 있는 대다수의 지상파, 케이블, 영화사, 잡지사 등이 불과 5~6개의 거대 미디어그룹에 종속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타임워너는 CNN 등 16개 케이블 방송사, 12개 지상파 방송사 등을 소유하고 있고, 디즈니는 ABC를 비롯해 17개 케이블 방송사, 226개 지상파 방송사 등을 소유하고 있으며, 제너럴일렉트릭도 NBC와 19개 케이블 방송사, 26개 지상파 방송사 등을 소유하고 있다. 그 중에서 FoxTV를 소유한 뉴스코퍼레이션의 경우는 17개의 케이블 방송사와 27개의 지상파 방송사를 소유하고 있는데, FoxTV는 미국 내에서 가장 시청률이 높은 채널로 알려져 있다.

| 여론독과점, 보수획일화

이런 가운데 FoxTV가 미국 내에서 높은 시청률과 지지도를 얻게 된 이유에 대해 비판적인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월에 열린 종편관련 토론회에서 최진봉 교수(텍사스주립대 신문방송학과)는 “FoxTV는 노골적으로 보수층에 편향된 방송을 하며, 시청률을 끌어올리려고 뉴스를 선정적이고 오락성 강한 싸움판으로 만든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FoxTV의 모토가 Fair(공정)과 Balance(균형)인데 막말방송이 난무하고, 대놓고 면박을 주는 것으로 시청자들을 중독되게 한다”며 “절대로 공정하지도, 균형적이지도 않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한국의 종편 사업이 미국의 구조를 따라 구상된 것이기 때문에 그 결과도 미국과 같이 ‘여론독과점’과 ‘보수획일화’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하며, “광고시장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종편이 4채널이나 추가되면 방송시장 전체가 선정성·자극성 넘치는 프로그램들이 난무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3. 종편의 딜레마

| ‘채널의 양적 증대’가 곧 ‘여론의 다양성’?

방송통신위원회가 줄곧 이야기하고 있는 종편사업의 가장 큰 목적은 ‘여론 다양성 확대’이다. 그러나 대만과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 채널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 그대로 ‘여론 다양성의 확대’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대만의 경우처럼 극단적인 경쟁환경이 소수의 주장을 축소시키고,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만을 부각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 글로벌 미디어 그룹의 육성?

대만의 경우 채널의 수가 급격히 늘자 케이블 방송사들이 비용이 적게 드는 외국산 프로그램 수입에만 치중하면서 자국내 프로그램 제작기반을 파괴하는 결과를 낳았음을 살펴봤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결국 제한된 광고시장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종편채널이 추가됨으로써 방송사들이 극한의 경쟁상황에 처하게 되면 글로벌 미디어 그룹은 고사하고 그나마 어렵사리 구축해놓은 콘텐츠 제작환경까지 송두리째 파괴될 위험에 처해 있다.

| 종편은 결국 상업방송이다.

공영 방송과 달리 방송이 상업화될수록 선정적, 폭력적, 자극적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Fox News가 오락적 방송으로 충성스런 시청자를 확보해 살아남은 것이 바로 그런 사례다. 결국 시청률 경쟁이 벌어지면 후발 주자 입장에선 일본과 미국 방송의 선정적 모델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종편은 케이블 방송임을 내세워 더 선정적으로 갈 것임이 분명하다.

| 언론사를 소유는 제한돼야

우리나라의 광고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여서 지속적으로 시청률 경쟁이 심화되면 결국 M&A(기업 인수합병)로 갈 수밖에 없다. 결국 돈 있는 기업이 언론사들을 사들여 여론의 독과점이 이뤄질 것이고, 그러면 우리나라도 거대 언론사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대기업인 GE가 자본력으로 거대 미디어그룹이 된 것처럼 삼성, 현대 같은 대기업이 지분 투자 형태로 언론사를 소유하게 될 수 있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 외국자본의 문화침탈

현재 일본 오락프로그램의 방영은 법으로 금지되어있으나 이미 <중앙일보> 종편에 텔레비 아사히, 매경 종편에 일본경제신문사 등 일본 언론사가 직접 참여했고 <조선일보> 종편 등에도 외국계 자본이 투자한 상태여서, 일각에서는 일본 오락 프로그램 규제 완화가 관측되기도 한다. 더구나 지상파와 달리 비지상파는 프로그램 의무편성비율이 50~20% 수준이므로 외국 프로그램의 안방침투는 더욱 가속화될 수 있어서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문화가 외국자본에 의해 침탈당할 수 있음을 염려해야 한다.

정리 /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