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채용 규모 적어…방송사 ‘인력난’·취업준비생 ‘취업난’
지상파3사, 천편일률 ‘주입식 교육’ 거부…시사·논술 확대
취업준비생, 전공 공부로 취업문 못 뚫어…방법 전환 필요
‘꿈의 직장’이라 불리는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사의 하반기 공채 시즌이 돌아왔다. 요즘 대부분의 방송사가 비정기 공채를 실시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얼마 전 SBS에 이어 곧 KBS가 공채를 실시할 예정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취업시장에서는 벌써부터 취업준비생들의 움직임이 바빠지고 있다. 그렇다면 최근 방송기술인 공채 경향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으며, ‘미래의 방송기술인’을 꿈꾸는 취업준비생들은 여기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취업문 좁아 방송사·공사 동시 겨냥
2년째 지상파 방송 3사의 방송기술직 공채에 도전하고 있는 A씨는 연말로 갈수록 마음이 조급해진다. 타 직종에 한눈팔지 않고 오직 방송사에만 도전하기로 마음먹은 마지노선이 바로 올해까지이기 때문이다.
“군대 제대 이후 남들보다 다소 늦은 나이에 방송기술직 취업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전공분야가 아니어서 ‘공학’ 자체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고, 자격증까지 다 따놓고 보니 나이가 30이 넘는다는 게 걸려요. 그래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방송기술이지만 올해 안 되면 내년부터는 ‘플랜B’로 다른 공사나 공기업에도 지원할 계획입니다.”
A씨와 같은 방송기술직 취업준비생들이 무작정 방송사 입사만을 꿈꿀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일부 방송사들의 경우 과거 정해진 기간에 정기공채를 실시하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대부분 비정기공채를 실시하고 있어 언제까지 채용공고가 나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는 상황이다. 거기다 신규채용 인원까지 대폭 줄어들어 취업문턱이 더욱 높아진 것도 한 우물을 팔 수 없게 하는 이유다.
실제로 SBS의 경우 방송기술직 인력충원이 3년 연속 3명씩에 그치고 있고, MBC의 경우 지난해 불과 2명을 충원하는 데 그쳤다. 그나마 ‘대규모 채용’에 해당하는 KBS가 올해 상반기 35명을 채용한 뒤 하반기 채용을 준비하고 있으나 이 또한 과거와 비교해 턱없이 줄어든 숫자다.
방송기술직 취업을 돕고 있는 한 관계자는 “방송 3사 방송기술직 경쟁률은 보통 10:1로 2000:1에 육박하는 아나운서나 기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해 합격률이 높다”면서 그러나 “방송사의 수요 자체가 적다보니 전공자들 가운데서도 굳이 방송기술직을 고집하는 학생 수가 과거보다 많이 줄었다”고 전했다.
이처럼 갈수록 줄어드는 방송기술직 채용규모는 방송기술직을 희망하는 구직자들의 자격증 취득 경향에도 영향을 미친다. 1차 지망이 방송사라 하더라도 2차로 공사나 통신사 취업에 대비해 입사지원 시 양쪽 다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무선설비기사’ 자격증 취득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 방송·통신 분야 4대 자격증 가운데 어렵다는 ‘정보통신기사’를 제외하고 ‘정보처리기사’는 타 공사, ‘전기기사’는 통신사에서 가산점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필기·면접, 시험경향이 달라졌다
일반적으로 방송기술직 취업준비생들 중에는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한 학생들이 집중돼 있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방송기술직 취업 준비에 들어가면 보통 ‘전기공학’, ‘전자공학’, ‘방송공학’, ‘전산공학’, ‘통신공학’ 등 방송 관련 세부 커리큘럼을 공부하게 된다. 그런데 이 가운데 학원 수강 없이 스스로 공부하기 난감한 대목이 ‘방송공학’이다.
수개월 혼자서 공부하다 국내 유일의 방송기술직 취업 전문학원에 등록한 B씨는 “방송공학을 제외한 다른 과목들은 솔직히 인터넷을 뒤지면 다량의 정보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하며, 그러나 “실제 방송기술 실무를 접해보지 않는 입장에서는 학원이 아닌 어디에서도 접할 수 없는 내용이라 학원을 등록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와는 달리 현업에 종사하는 방송기술인 중에는 학원에서의 경험이 실질적인 업무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학원에서의 커리큘럼은 단지 구분을 위한 구분일 뿐 전공 공부를 통해 통신·전자·IT 등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갖춘다면 그것만으로 필기시험과 실무를 커버할 수 있다”면서 “학원을 거쳐 방송사에 입사한 직원들 중에도 과거 학원수강은 불안감을 없애기 위한 방편의 의미가 컸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곤 한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러한 공방을 뛰어넘어 최근 방송사들이 출제하는 시험경향은 과거 몇 년간 지속된 ‘공학’에서의 기술 관련 출제 일변도에서 벗어나 시사와 논술까지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지난해 MBC의 경우 필기시험의 40%, 올해 SBS의 경우 50% 정도가 시사·상식 관련 문제를 출제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논술이나 약술은 공학 전공자들에게는 취약한 부분으로, 학원 강의를 통해 주입식으로 익히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다수 취업준비생들의 의견이다.
이와 관련해 올해 SBS 필기시험을 치른 C씨는 “예전에 공학을 공부하고 학원에서 정형화된 문제풀이를 연습해 합격했다면 지금은 얕은 공부만으로 시험을 통과할 수 없게 됐다”면서 “이렇게 출제경향이 바뀌면서 취업준비생들도 뉴스, 신문 등을 보며 시사상식을 넓히고 글쓰기, 말하기 연습을 통해 필기와 면접에 대비하는 쪽으로 준비 방식이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능동적으로 움직여서 정보를 찾아라”
이러한 시험경향의 변화에 대해 현직 방송기술인들은 일단 반기는 분위기다. 그동안 각 방송사에서는 예비 방송기술인들의 정형화된 학원 학습에만 의지하는 태도를 지양하기 위해 다각도로 출제방식을 고심해 온 게 공공연한 사실이기도 하다.
방송사 한 관계자는 “예비 방송기술인들에게 실무와 직결된 기술적 지식 이외에 인문학적 소양을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본다”며 “일반에 알려지지 않은 방송기술 관련 정보도 인터넷만 있으면 얻을 수 있지만, 진정 방송기술에 입문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쉬운 방법보다는 스스로 알고자 하는 것을 찾아 나서는 능동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과거 기술인력이 기술적 업무에만 치중했다면 방송국이 변화를 거듭하는 오늘날은 기술직이 오히려 미래 정책을 제시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입장으로 바뀌고 있다”면서 “과거로 회귀해 이들에게 인문학적 소양을 요구하는 것은 거시적인 차원에서 옳은 변화”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현직 선배들이 예비 방송기술인들에게 장밋빛 미래만을 들려주는 것은 아니다. 10년 이상 현업에 몸담고 있는 한 방송사 관계자는 “방송사 상황이 달라지고 방송환경도 변하면서 인력부족이나 업무 자체로 인한 스트레스도 무시할 수 없다”면서 “그럼에도 방송기술인을 꿈꾼다면 방송이 나아갈 활로를 모색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즐거움을 경험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부족한 방송기술인력 – 현장은 지금?
“우수한 신규인력 확대채용 절실”
방송기술직 인력규모가 대폭 줄어든 데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진단이다. 최근 10년 사이 이명박 정부의 공채 축소를 비롯해 기술발전에 따른 인력 대체, 지상파 광고시장 침체에 따른 인건비 절약 등이 주된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문제는 이로 인해 현장에서 겪고 있는 ‘인력난’이다. 특히 KBS의 경우 과거 방송기술직 내 보수·행정 인력과 현업에 투입되는 근무인력이 따로 있었으나, 현재는 ‘4조 3교대’의 법적 기준을 맞추다 보니 상일근 보수·행정 인력이 교대로 들어와 실질적인 행정·보수 업무 발생 시 오프 인력이 투입되는 사례가 제작 현업이나 송·중계소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방송사 한 관계자는 “업무가 과중될 경우 세월호나 아시안게임과 같은 이벤트성 사안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직원들이 체감하는 노동의 강도는 훨씬 더 강해진다”면서 “현재는 거의 마지노선의 교대근무 인력이 충원돼 있는 상태로 업무 효율화를 통한 인원 배치는 거의 한계점에 다다랐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방송기술직 인력 축소의 한 요소였던 방송기술의 발전이 최근에 와서는 업무의 다양화로 인해 새로운 인력이 요구되는 것도 현장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 중 하나다. 방송시스템이 디지털화, 네트워크화되면서 시스템 자체의 생산성이 높아진 반면 유지·관리를 위한 필요인력이 늘고 사용자(시청자) 측 요구의 증대로 업무가 증대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예를 들어 아날로그방송에 비해 고화질, 고음질, 데이터 제공 등의 장점을 갖는 디지털방송을 내보내기 위해 엔지니어는 조명을 더 세밀하게 세팅해야 하고, 5.1채널 오디오 제작 및 관련 장비를 추가로 운용해야 한다. 또 아날로그방송에는 없던 EPG(Electronic Program Guide)와 가상채널 기능을 다뤄야 한다. 한마디로 관리인력이 현저히 늘어난 셈이다.
파일기반 시스템 역시 디지털시대 이후 업무를 폭증시키는 데 한몫하고 있다. 수십 대의 카메라를 동시에 사용하는 리얼프로그램이 대세가 되면서 NPS(Network production system) 시스템 증축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이와 같은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하듯 최근 KBS방송기술인협회가 전국의 협회원들로부터 현안사항을 수렴한 결과 인력부족 문제가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혔다. 이와 방송사 관계자는 “현재 반 기계처럼 일하고 있는 방송기술인력에게 최소한의 인력충원은 인간에 대한 예의”라면서 “방송사는 장기적 관점에서 우수한 신규인력의 확대채용을 절실히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