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etflixing

[기획] I am Netflix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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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7일, 한반도에 거대한 공룡이 나타났다.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인 넷플릭스(NETFLIX)가 한국에 상륙한 것이다. 한국 서비스를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전 소문만으로도 누군가는 기대로 설레게 하고 누군가는 두려움에 떨게 한 넷플릭스. 화제의 중심에 있는 그 넷플릭스를 직접 사용해봤다.

01.홈페이지

홈페이지에 들어가자마자 ‘한 달 무료 이용 시작하기’라는 버튼이 눈에 들어온다. 시선을 뗄 수 없는 것이 강렬한 빨간색 때문인지 ‘무료’라는 달콤한 단어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버튼을 누르면 멤버십 요금제를 선택하는 창이 뜬다. 넷플릭스의 요금제는 총 세 가지로 베이식, 스탠다드, 프리미엄이다. 각각 US 달러로 7.99달러, 9.99달러, 11.99달러로 요즘 환율로 환전해보면 11.99달러는 약 14,500원 정도로 비싸다고 할 수 없는 가격이다. 하지만 사용하는 서비스는 동일한데 환율 변동에 따라 요금이 변한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02.요금제

세 가지 요금제의 차이는 화질과 동시접속 수다. 베이식의 경우 HD·UHD 화질을 제공하지 않고 동시접속은 1명만 된다. 스탠다드의 경우 HD 화질을 제공하고 2명이, 프리미엄의 경우 HD·UHD 화질 모두를 제공하며 4명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다.

요금제를 선택하고 나면 이메일 주소와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창이 뜨고, 이어서 카드 결제 정보를 입력하면 가입 완료다. 본인 인증을 위해 잊어버린 아이핀 비밀번호를 애써 기억해내지 않아도, 휴대전화로 인증번호를 담은 문자가 오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가입만큼이나 해지 절차도 간단하다. 홈페이지 로그인 후 ‘계정’으로 들어가면 한 번에 해지 버튼을 찾을 수 있다. 화면의 저~~~~~어 아래 눈에 띄지 않게 있는 해지 버튼을 찾아 마우스 스크롤을 내리지 않아도 되고 해지는 꼭 상담원 연결로만 되는 의아한 법칙도 없다. 멤버십 변경 등도 클릭 몇 번으로 간편하게 된다.

08.계정

가입 절차가 끝나면 어떤 기기를 이용할 것인지와 이용자의 프로필을 물어본다. 어차피 한 달 무료 이용이라면 제일 비싼 거로 써야겠다는 이상한 심리에 혼자 이용하지만 프리미엄으로 가입했다. 그래서 이용자의 이름을 적는 칸도 네 개. 반드시 채우지는 않아도 되고 이후에 추가·수정할 수 있다. 이용자 프로필에 따라 보던 영상이나 추천하는 영상 등이 따로 관리되기 때문에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이용하더라도 편리하다.

09.가입절차

이 작업이 끝나면 현재 넷플릭스가 제공하고 있는 콘텐츠의 목록을 쭉 보여주며 선호하는 콘텐츠 3개를 고르도록 한다. 이 역시 꼭 하지 않아도 되지만 이를 기준으로 추천 동영상을 보여주기 때문에 어떤 것을 추천해줄지 궁금해 골라봤다. 고민의 고민을 거듭해 선택한 3가지는 <인셉션>, <포레스트 검프>, <비긴어게인>. 특정한 장르를 고집하며 시청하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특성이 반영될 수 있도록 다양한 장르에서 좋아하는 콘텐츠를 골랐다. 꽤 기대감을 가지고 심사숙고하며 골랐는데 추천된 동영상에는 의아한 작품도 있다. 장르가 다양하고 고작 세 작품을 골랐을 뿐이니 세세한 취향까지는 반영하지 못할 거란 건 알고 있었지만, 저 세 작품을 보고 미국식 화장실 개그의 진수라는 <행오버>를 추천해준 것은 도대체 어떤 프로세스를 거친 결과인지 정말 미스터리하다.

12.모바일화면

애플리케이션에서도 홈페이지에서도 넷플릭스는 아주 단순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까만 바탕화면에 보이는 것은 콘텐츠의 이미지 정도뿐이다. 정렬 기준은 추천 동영상, 출시일, 별점, 가나다순 등으로 있는데 별점은 아직까지 많은 이들이 참여하지 않아 신뢰성이 높은 편은 아니다.

이메일 주소와 비밀번호를 쓰고 로그인만 하면 기기 간의 연결이 잘 이뤄져 보던 영상을 본 지점에서부터 기기를 옮겨 편하게 볼 수 있다. 하지만 플레이어의 기능은 아쉽다. 스트리밍이다 보니 기본적으로 장면을 넘길 때 버퍼링이 걸리는 건 어쩔 수 없다 해도 되감고 빨리 감는 시간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게만 해줘도 훨씬 편리할 것 같다. 자막 크기나 위치의 경우에도 개인의 선호에 따라 조절할 수 있다면 좋겠다.

13.플레이어

조금 과장해 말하자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다운로드 받아보는 사람과 스트리밍으로 보는 사람. 다운로드 받아보는 사람들이 스트리밍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사소한 부분 같지만 넷플릭스를 선택하고 선택하지 않는 갈림길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으로 앞으로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자, 이제 드디어 콘텐츠에 대해 말해볼까 한다. 한국 콘텐츠의 부족은 서비스 시작 전부터 단점으로 지적돼 온 부분이다. 실제로도 한국 콘텐츠는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 TV 프로그램 메뉴에 들어갔다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꽃보다 남자>라는 제목을 보고 놀란 사람이 나 혼자는 아닐 거다.

넷플릭스를 두 팔 벌려 환영한 미드(미국 드라마) 팬의 사정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넷플릭스하면 떠오르는 <하우스오브카드>가 이미 국내 이동통신사와 계약이 돼 있기 때문인지 제공되지 않는다. 이참에 그 재미있다는 <하우스오브카드>를 볼까 싶었던 터라 실망이 컸다. <고담>, <데어데블>, <블랙리스트>, <마르코 폴로> 같은 좋은 평가와 기대를 얻고 있는 드라마가 있긴 하지만 지금 나열한 것이 전부라 해도 좋을 정도다.

14.하우스오브카드

넷플릭스 측에서는 수많은 콘텐츠를 한 번에 제공하기는 힘들다고 밝혔고 그 점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거 없다’는 말이 떠오를 것 역시 어쩔 수 없다. 첫 경험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은 상황에서 한 달의 무료 사용 기간 후에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굳이 멤버십을 연장하며 충성심을 보일 이용자가 얼마나 될까? 우리는 하나씩 나오는 코스 요리를 음미하기보다는 상다리 부러지도록 거하게 차려놓은 잔칫상을 좋아하는 한국사람 아닌가.

넷플릭스의 한국 진출로 가장 긴장했던 것은 IPTV업계일 것이다. 그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은 보는 이마저 손에 땀을 쥐게 했던 것 같은데 어찌 된 일인지 최근 양측의 입장을 들어보면 서로를 경쟁자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도 내 눈에는 둘 사이에 ‘VS’가 보이는 건 왜일까? 이용자 입장에서 둘은 분명 경쟁자다. 재미있는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 IPTV와 넷플릭스 두 곳 모두에 이용료를 내려는 이용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15.데어데블

결국, 국내 TV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이들은 IPTV를, 미드를 좋아하는 이들은 넷플릭스를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두 가지 갈림길에 이용자를 세우기 전에 둘은 서로의 콘텐츠를 합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할 것이다. 그런 장기적 관점에서 본다면 둘은 경쟁자가 아니라 협력자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넷플릭스의 진짜 경쟁자는 따로 있다. 미드를 보지 않는 사람이라면 넷플릭스로 시끌시끌한 이쪽 세상이 멀게만 느껴질 것이다. 차차 콘텐츠가 늘어난 후에는 이용자 저변이 넓어지겠지만 서비스 도입 초기인 지금 넷플릭스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은 결국 그동안에도 꾸준히 미드를 봐온 미드팬들이다. 한국에서는 정식으로 공급되지 않는 콘텐츠를 방영되기 무섭게 바로바로 볼 수 있었던 방법, 미드라는 시장을 이렇게 키워둔 원천은 결국 불법 다운로드다. 게다가 우리는 인터넷 속도만큼은 세계 최고, 드라마 한 편을 다운받기 위해 길어봐야 10분만 투자하면 된다.

물론 그동안에는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이러다 경찰에 붙잡혀가는 것은 아닐까 불안에 떨며 다운로드 받았으니,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합리적 가격의 합법적 서비스는 충분히 매력 있다. 그러나 국내 미드팬들은 없는 길을 만들어 나가며 콘텐츠를 즐겨온 이들이다. <하우스오브카드> 정도는 정주행한지 오래다. 이들의 높은 기대와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현재의 넷플릭스는 많이 부족해 보인다. 그렇다면 넷플릭스는 이대로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치는 걸까?

17.마르코폴로

요즘 미국에서는 “뭐해?”라는 물음에 “I am Netflixing.”이라며 넷플릭스를 동사처럼 사용하기도 한다. 여기서 넷플릭스는 드라마 시즌 전체를 한 번에 ‘몰아보는 것’을 말한다. <하우스오브카드>는 뛰어난 정치 드라마로 유명하지만 그보다도 먼저 그 이름을 알린 것은 시즌 전체를 한 번에 공개하는 파격적인 행보였다.

최근 시청 행태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몰아 보기’라고 할 수 있다. 작년 8월 LG유플러스가 VOD 시청 행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왕좌의 게임 시즌4> 전편을 5일만에 다 본 사람이 시청한 이들 전체 중에 70.4%였다고 한다. 얼마 전 미국 TV쇼에서 복권에 당첨되면 무엇을 할 것이냐는 질문의 답을 트위터로 받았는데 “넷플릭스를 볼 때 ‘다음 편 보기’를 눌러주는 사람을 고용하겠다”는 답변이 있었다. 이외에도 다양한 분석들이 많은 이들이 몰아 보기를 하고 있으며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점점 더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시청 습관의 변화는 몰아 보기가 용이한 넷플릭스가 성공한 중요한 요인이다.

하지만 넷플릭스의 진짜 강점은 단순히 몰아 보기가 쉽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몰아 보기를 할 것이라는 ‘예측’을 했다는 것이다. DVD 대여 사업 때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쌓아온 이용자의 시청 행태와 콘텐츠 선호도 등에 대한 빅데이터야말로 넷플릭스의 진정한 강점이다.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용자의 취향을 간파하는 성공하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공급할 수 있는 저력, 그것이 이제는 비단 아메리카 대륙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넷플릭스를 지나가는 소나기로 취급하기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시작은 기대에 비해 다소 주춤한 감이 있지만 앞으로 넷플릭스의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