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하고 설을 보내도 시작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는데 3월을 문턱에 서고 나니 비로소 무언가가 시작하는 것 같다. 아이들은 새로운 학교와 친구들 생각에 들떠있는 요즘, 방송가는 새로운 드라마의 첫 방송을 앞두고 설레고 있다. 3월에는 드라마의 대격전이 치러질 예정이다. <미세스캅2>, <피리부는 사나이>, <굿바이 미스터 블랙> 등 많은 드라마가 3월 초부터 말까지 첫 방송을 앞두고 있으며 <태양의 후예>와 <돌아와요 아저씨>는 2월 24일 첫 방송을 선보이며 3월 대전에 조금 일찍 들어섰다. 이번 호에서는 주목할만한 특징 4가지를 중심으로 3월에 선보일 드라마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사전 제작 드라마
3월 대전을 앞둔 수많은 드라마 중에서도 연일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KBS2의 <태양의 후예>다. 송혜교가 2013년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이후 3년 만에 드라마로 시청자에게 찾아왔으며, 송중기가 2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복귀작으로 선택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비밀>, <연애의 발견>의 이응복 PD와 <시크릿 가든>, <상속자들>을 성공시킨 김은숙 작가라는 든든한 제작진도 있다. 120억이라는 드라마에서는 좀처럼 없는 막대한 제작비와 그리스에서 이뤄진 해외 촬영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드라마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100% 사전 제작 드라마라는 점이다.
사전 제작 드라마는 이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그 비중이 계속 늘고 있다. <태양의 후예>처럼 100%까지는 아니더라도 반 정도의 분량을 미리 촬영해두는 반(半)사전 제작이 특히 많다.
촬영 날이 되도 나오지 않는 쪽대본 이야기는 방송가는 물론 시청자에게도 익숙한 이야기였고 비판받아 왔다. 그런 가운데 사전 제작은 열악한 드라마 제작 환경을 개선하는 좋은 흐름이다. 제작진도 더 높은 완성도의 작품을 보여줄 수 있고 시청자의 만족도도 높여줄 수 있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사전 제작이 잘 이뤄지지 않았던 이유는 리스크 때문이다. 열심히 제작해놓고서 판매가 되지 않으면 이미 지출된 제작비를 회수할 방법이 없다. 작은 제작사의 경우 자칫하면 부도 위기로 내몰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변했다. 중국 시장의 문이 열렸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드라마를 방송하기 위해서는 6개월 전에 프로그램 방영 계획을 보고하고 3개월 전에 작품 전체에 대한 심의를 받아야 한다. 사전 제작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태양의 후예>는 이 같은 심의를 통과하고 2월 24일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 방영을 시작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100% 사전 제작 드라마가 성공한 사례가 많지 않다. 반사전 제작으로 방영된 tvN의 <치즈인더트랩>은 호평을 받던 방영 초기와 달리 결말을 코앞에 두고 이야기의 흐름에 대해 시청자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그렇다 해도 이미 촬영은 모두 끝나 시청자의 의견을 반영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런 문제를 사전 제작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사전 제작임에도 준비가 부족했다고 해야 할까?
<태양의 후예>를 기대하고 있는 이들 중에는 100% 사전 제작 드라마가 가질 수 있는 탄탄한 스토리, 감각적인 연출, 높은 완성도를 바라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제 와 무슨 말을 들어도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상황에서 <태양의 후예>가 어떤 결실을 볼지 궁금하다.
시즌제 드라마
또 하나 눈에 띄는 작품은 시즌제 드라마인 SBS의 <미세스캅2>다. 경찰로는 백점이지만 엄마로서는 빵점인 정의롭고 뜨거운 심장을 가진 경찰 아줌마의 활약을 통해 대한민국 워킹맘의 위대함과 애환을 그리는 드라마로 지난해 여름 시즌1을 방영했다.
시즌제 드라마는 전편의 설정을 그대로 가져와 소재만 바꿔 제작하는 것으로 미국에서 처음 개발됐다. 케이블 채널에서는 <신의 퀴즈>, <특수사건 전담반 TEN>, <막돼먹은 영애씨>, <응답하라 시리즈>와 같이 많은 시즌제 드라마를 볼 수 있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경우 3시즌 동안 뜨거운 호응을 얻으며 시즌제 드라마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막돼먹은 영애씨> 또한 시즌15가 2016년 방영 예정되면서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고 있다.
시즌제 드라마는 성공한 드라마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시청률과 인기가 보장돼 실패할 확률이 낮다. 시즌1의 성공을 보았기 때문에 광고나 협찬도 쉽게 들어온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지상파 방송사의 시즌제 드라마는 성적이 그리 좋지 못했다. 애초에 지상파방송에서는 시즌제 드라마가 많은 편은 아니다. KBS의 <학교>, <아이리스>, <드림하이> 정도를 꼽을 수 있을 텐데 <아이리스2>와 <드림하이2>의 경우 전작만큼 흥행하지는 못했다.
그 이유야 결과를 보고 이야기하자면 많겠지만, 개인적으로 꼽는 이유는 이 작품들이 과연 진짜 시즌제 드라마였는가 하는 점이다. <학교>, <아이리스>, <드림하이> 모두 전작과 배경만 같을 뿐, 새로운 배우와 전혀 다른 별개의 스토리로 시즌2를 끌어간다. 전작의 팬들이 시즌2를 봐야 할 이유의 상당 부분이 사라지는 것이다. 시즌제가 흔한 미국의 경우, 주요 인물의 큰 변동 없이 5년, 10년씩 이야기를 이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역 배우가 어른이 돼가는 모습을 보는 경우도 많다. 배역을 바꿨다가 시청자가 떠나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반면 <미세스캅2>의 주인공인 ‘아줌마 경찰’은 김희애에서 김성령으로 바뀌게 됐지만, 주변 인물들은 시즌1과 같은 배우들이 연기한다. 같은 캐릭터를 다른 배우가 하는 것이 아니라 FBI 연수를 마치고 강력팀에 온 ‘새로운 팀장’이라는 자연스러운 이야기 연결을 취하고 있다. 전작을 리셋하고 아무것도 없었던 것으로 하지 않은 것이다. <미세스캅2>가 기대되는 이유다.
원작을 둔 드라마
소설, 만화, 웹툰 등 이미 성공한 좋은 작품을 토대로 드라마를 제작하는 일은 이제 흔한 일이 됐다. 시즌제 드라마처럼 원작으로 성공 가능성이 어느 정도 확인됐으며 원작의 인기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분기마다 원작을 둔 드라마가 많이 제작되고 있는데, 3월 역시 다르지 않다.
우선 SBS의 <돌아와요 아저씨>는 우리나라에서는 ‘철도원’으로 이름을 알린 아사다 지로의 소설 ‘츠바키야마 과장의 칠일’이 원작이다. 이미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어 2003년에는 연극 무대에 오르고 2006년에는 영화로 제작됐으면 2009년에는 드라마로 제작된 바 있다. <돌아와요 아저씨>는 원작 소설의 핵심인 ‘역송 체험’을 모티브로 가져왔다. 역송 체험은 생애 미련을 버리지 못한 죽은 사람의 혼이 못다 한 일을 마무리 지을 때까지 이승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돌아와요 아저씨>에서는 가족보다 일을 앞세우며 일만 하다가 과로로 사망한 김영수(김인권 분)와 20년 넘게 깡패로 살아오다 사고로 사망한 한기탁(김수로 분)의 혼이 이해준(정지훈 분)과 한홍난(오연서 분)의 몸을 빌려 이승으로 돌아온 뒤 벌어지는 일들을 담으며 2월 24일 첫 방송을 선보였다.
두 번째로 우리나라 순정만화계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황미나 작가의 ‘굿바이 미스터 블랙’을 드라마로 만나게 된다. MBC에서 3월 16일 첫 방송을 앞두고 있는 <굿바이 미스터 블랙>은 <내 마음이 들리니>, <보고싶다>를 집필한 문희정 작가가 극본을 맡아 기대를 모으고 있다. 복수를 위해 몇 번의 죽음 위기를 겪는 남자가 신분 위장을 위해 가짜 결혼식을 올린 신부로 인해 사랑과 인간에 대한 신의를 회복하는 이야기로 로맨스 드라마에서 좋은 결과를 내온 이진욱과 문채원이 열연하며 2월 22일 첫 촬영에 들어갔다.
세 번째는 해츨링의 웹툰 ‘동네변호사 조들호’를 원작으로 하는 KBS2의 <동네변호사 조들호>다. 잘나가는 변호사 조들호가 검찰의 비리를 고발해 나락으로 떨어진 후 인생 2막을 여는 이야기를 그리는 드라마로 들판의 호랑이라는 이름 뜻처럼 괴상하고 괴팍하며 괴짜인 변호사 조들호의 활약이 기대된다. 최근 예능으로 활약하고 있는 박신양이 조들호 역을 맡아 2011년 <싸인> 이후 5년 만에 브라운관에서 연기를 선보이며 3월 28일 첫 방송을 앞두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 VS 케이블 채널
마지막으로 3월 드라마 대전에서 눈여겨 볼만한 점은 지상파 방송사와 케이블 채널의 대결이다. 지상파와 케이블이 직접 같은 시간대를 두고 시청률 경쟁을 하는 드라마는 없지만, 최근 케이블 채널의 잇따른 성공으로 지상파 방송사의 위기를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tvN에서 좋은 반응을 보이며 방영 중인 <시그널>의 경우 SBS에서 퇴짜 맞은 전력이 드러났다. 방송사에서 시놉시스가 전전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SBS에서 PD가 정해지고 방송 일시까지 논의되던 중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는 ‘장르물’이라는 이유로 편성 불발된 <시그널>이 8%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이런 사실이 주목받고 있다.
tvN은 <시그널>의 후속작으로 3월 18일 <기억>을 준비하고 있다. 알츠하이머를 선고받은 로펌 변호사 박태석이 남은 인생을 걸고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끝내 지키고 싶은 삶의 소중한 가치와 가족애를 그린 드라마다. 오랫동안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여 오다가 <미생>으로 주목받은 이성민이 박태석 역을 맡았다. 게다가 <부활>, <마왕>, <상어>로 이어지는 복수 3부작으로 유명한 박찬홍 감독과 김지우 작가가 다시 한 번 뭉치면서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장르물 <피리부는 사나이>도 3월 7일 tvN에서 선보인다. 과거 기업 협상가였던 천재 협상가 주성찬(신하균 분)이 경찰 내 위기협상팀의 외부자문위원으로 팀을 도우며 많은 사건의 배후에 있는 ‘피리부는 사나이’라는 미스테리한 인물에 맞선다. 협상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중심으로 하는 수사물에, 탄탄하고 짜임새 있는 스토리와 연출로 호평을 받은 <라이어 게임>의 김홍선 감독과 류용재 작가가 다시 한 번 의기투합했다.
이렇게 러브라인은 잠시 내려놓은 참신한 소재의 드라마를 왜 지상파 방송사에서는 볼 수 없는 걸까? 지상파 방송사도 억울한 심정을 말하자면 끝이 없다. 케이블 채널에 비해 공공성과 도덕성 같은 기준은 물론이고 시청률에 대한 기대가 높은 지상파 방송사에서 모험을 강행하기란 쉽지 않다. 2011년 김은희 작가의 <싸인>을 SBS에서 방영하며 마지막회 시청률 22.1%라는 큰 성공으로 작가의 <유령>, <쓰리데이즈> 같은 장르물을 잇따라 편성해보기도 했지만 기대만큼 결과물이 좋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이번 3월 드라마 대전에서 케이블 채널의 성공이 계속 이어질지, 지상파 방송사의 자존심을 세울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