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안테나만 달면 지상파 방송을 볼 수 있다. 지상파 방송은 무료 보편적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보편적’이라는 의미는 보편적 화질을 통해 보편적 콘텐츠를 보편적으로 접근한다는 뜻으로 해석되고 규정될 수 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디지털 전환 이후 지상파 직접 수신 비율은 10%도 채 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 원인을 분석하고, 직접수신율을 높여 무료 보편적 서비스를 더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지 고민해 보고자 한다.
(전편에 이어)
공시청 설비도 공공재다 … 인식 변화 필요
사실 공시청 설비는 공공재에 가깝다. 지상파 방송은 누누이 말했듯이 무료 보편적 서비스로 공공재의 성격을 갖고 있다. 공공재인 지상파 방송은 공시청 설비만 갖추고 있으면 따로 요금을 지불하지 않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시장에서 거래되는 재화나 서비스는 어떤 사람이 이것을 소비하면 다른 사람이 소비할 기회가 줄어들지만 공공재는 서로 경합할 필요가 없다. 공시청 설비도 이런 공공재의 속성과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정부를 포함한 우리 사회 전반에서는 ‘공시청 설비=공공재’라는 인식이 없는 것 같다.
신진규 MBC 디지털기술국 기술관리부장는 “우리나라 유료방송 요금이 저가로 고착화됨에 따라 정부도 그렇고 시청자도 그렇고 공시청 설비, 지상파 직접 수신에 대한 필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상파 방송이라는 무료 보편적인 플랫폼은 미디어 환경의 매체선택권 보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면 당연히 누구나 무료로 지상파 방송을 직접 수신할 수 있도록 공시청 설비와 같은 수신환경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난 2004년 법 개정에 따라 2004년 이후에 건축된 아파트의 경우 지상파 방송과 케이블 방송의 분리배선을 의무화했다. 하지만 2004년 이전에 건축된 아파트의 경우 케이블 방송사들에 의해 대부분의 공시청 시설이 훼손된 상태다. 주택법 제42조에 따라 공시청 시설을 훼손할 경우 처벌을 받게 되어 있지만 실제로 해당 법이 적용된 경우는 거의 없다. KBS 난시청서비스부 관계자는 “일부 지역에서는 SO들이 고의로 공시청 안테나를 훼손하는 경우도 많은데 제대로 된 단속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법의 실효성의 의문을 표했다.
또한 주택법 제47조를 보면 공시청 설비는 장기수선충당금을 이용해 주기적으로 부분수리(5년), 전면교체(15년)될 수 있고, 그렇지 않을 경우 관리주체는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해진다고 나와 있지만 이 역시도 유명무실이다.
관련 전문가들은 지자체나 방송통신위원회 등 관계기관이 소극적으로 대응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현행법 자체가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에 적용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점검주체, 점검시기 등이 정확하게 명시돼 있지 않기에 법이 있어도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재 관련 기관을 중심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신진규 MBC 디지털기술국 기술관리부장는 “몇 년에 한 번씩 점검해야 하는지, 누가 점검하는지 정해지는 게 중요하다”면서 “특히 점검 주체의 경우 ‘눈 가리고 아웅’식이 되지 않도록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는 단체가 맡아야 한다. 이러한 선구조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공시청 설비 시설은 제대로 갖춰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상파도 AS서비스 지원 센터가 필요하다
법 개정과 동시에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또 다른 하나는 ‘지상파 통합 서비스 지원 센터’다. 케이블 방송을 비롯한 유료방송의 경우 TV가 안 나오거나 하면 바로 와서 고쳐주는데 지상파 방송의 경우 애프터서비스 구조가 확립되지 않아 감감 무소식일 때가 많다.
김광호 서울과학기술대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유료방송 대비 지상파 수신 업무의 유지‧보수 관리 시스템과 조직력이 부족하며, 지상파 방송4사의 수신지원부서는 실질적으로 장기적 조직유지 및 인력수급 등이 불확실해 현실적으로 지상파 공시청망 유지‧보수 관리 업무에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실질적으로 지상파 방송 공시청 시설 공사 이후에도 유지‧보수 관리할 주체가 따로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무료 보편적 플랫폼인 지상파 방송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지상파 통합 서비스 지원 센터가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일각에선 디지털 전환 지원을 위해 만들어진 DTV KOREA를 중심으로 지상파 통합 서비스 지원 센터를 구축하자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DTV KOREA는 미래창조과학부의 위탁사업 중 하나로 ‘지상파 124 콜센터’를 운용해왔다. 아날로그 방송 종료에 따른 민원, 안테나와 컨버터 등 정부지원 신청, 채널재배치 민원접수 등의 업무를 수행했으며, 직접수신가구의 정부지원 시청 장비에 대한 민원, 지상파 직접수신용 안테나 구입 문의, 공시청 설비 지원 접수 등의 업무도 처리해왔다. 학계를 중심으로 한 관련 전문가들은 그동안 업무의 연장선으로 플랫폼 주체인 지상파 방송사들이 모인 DTV KOREA가 지상파 통합 지원 센터로서 가장 적합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물론 주무부처와 많은 논의 과정을 거쳐야 하겠지만 그동안의 과정들을 놓고 봤을 때 직접수신율 하락 원인의 많은 부분을 정부가 차지하고 있는 만큼 지상파 통합 서비스 지원 센터 구축으로 조금이나마 시청자 복지 실현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전환과 직접수신율이라는 이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다채널 서비스(MMS)의 부재다. 그렇기 때문에 얼마 전 발표된 방송산업발전 종합계획에서 MMS 정책을 언급한 부분은 환영할 만하다. 또한 방통위가 KBS의 MMS 실험국을 허가했다고 하니 MMS는 조만간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MMS가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전환과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마저도 한참 늦은 거라고 볼 수 있다.
MMS가 시작된다면 지상파 방송의 직접수신율 상승에도 어느 정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KBS 난시청서비스부 디지털시청100%재단 이혁범 차장은 “요즘 직접 수신 문의 전화가 오면 처음에 묻는 말이 ‘채널 몇 개 나와요?’다. 심지어 시골 어르신들도 몇 개 나오냐고 묻더라”면서 “MMS가 허용되면 직접수신율은 자연스럽게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무료 보편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상파 방송이 MMS로 다양한 방송을 하게 된다면 저소득층에 부담을 주지 않고 자연스럽게 디지털 격차도 해소될 것이다.
지금까지 디지털 전환 이후 지상파 직접수신율이 왜 하락했는지 그 원인을 따져봤다. 가장 큰 문제는 아날로그 방송 종료에만 급급했던 정부의 디지털 전환 정책이었다. 디지털 방송을 수신할 수 있는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아날로그 방송 종료를 추진했기에 유료방송으로 갑작스럽게 갈아탄 가구가 많다는 분석이 대다수다. 물론 지상파 방송4사도 공시청 설비 지원 사업 등에 있어서 안일했던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누가 잘못했느냐가 아니다. 이제 와서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부질없다. 지금은 어떻게 해야 무료 보편의 서비스를 확대할 수 있느냐에 머리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이에 본지는 △공시청 설비도 공공재라는 인식 변화 △법‧제도적 개정 필요 △지상파 통합 서비스 지원 센터 △MMS의 조속한 시행 등을 그 방안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직접 수신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다음에는 후회해도 소용없다. 안테나만 달면 누구나 보편적 화질로 보편적 콘텐츠를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있도록 시청자들은 인식을 변화시키고, 정부는 법‧제도 개정을 통해 한 발짝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직접 수신 환경 구축을 위한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