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계의 ‘뜨거운 감자’ 8VSB(1)

[기획] 방송계의 ‘뜨거운 감자’ 8VSB(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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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VBS 전송 방식 허용 여부가 방송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아날로그 케이블 상품에 가입한 가입자들도 별도의 셋톱박스 없이 고화질의 디지털 방송을 볼 수 있다는 포장 때문에 언뜻 시청자에게 이익인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독이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쪽짜리 디지털 전환인데다 저가 콘텐츠 시장 고착화 등 미디어 생태계 파괴라는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종편의 그럴싸한 포장과 케이블의 얄팍한 상술

단어조차 생소한 8VSB(8-level Vestigial Sideband)는 디지털 TV 전송 방식을 말한다. 지금은 지상파 방송만이 이 기술을 사용해 방송을 송출하고 있는데 8VSB 전송 방식이 케이블 방송에도 허용되면 디지털 TV를 보유하고 있는 아날로그 케이블 가입자들도 고화질 방송을 볼 수 있게 된다. 즉 아날로그 케이블 가입자 900만 명 중 디지털 TV를 보유하고 있는 600만 명 정도가 별로의 셋톱박스 설치 과정 없이 고화질 방송이라는 혜택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종합편성채널의 그럴싸한 포장과 케이블 방송의 얄팍한 상술에 불과하다.

실제로 케이블 방송에 8VBS 전송 방식이 허용되면 가장 큰 혜택을 누리게 되는 대상 중 하나가 바로 의무전송채널인 종편이다. 현재 900만 명 정도에 달하는 아날로그 케이블 가입자들은 지상파 채널 외의 다른 모든 채널을 흐릿흐릿한 아날로그 화질로 보고 있다. 디지털 전환을 완료해 고화질 방송을 내보내고 있는 지상파 방송과 종편의 차이는 확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8VSB 전송 방식이 케이블 방송에 허용되면 종편도 지상파 방송과 마찬가지로 고화질 방송으로 송출돼 지상파 방송과 화질면에서 별반 차이가 없게 된다. 종편이 개국 이후 줄곧 8VBS 전송 방식 허용을 주장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더 큰 문제는 8VSB 전송 방식이 반쪽짜리 디지털 전환이라는 것이다. 케이블 업계는 8VSB 전송 방식이 허용되면 아날로그 케이블 가입자도 고화질의 방송을 볼 수 있으므로 일종의 디지털 전환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8VBS 전송 방식은 고화질 방송만 볼 수 있을 뿐 디지털 전환의 또 다른 혜택인 주문형 비디오 시청, 데이터 방송, 양방향 방송 등의 부가 서비스를 할 수 없다. 무늬만 디지털 전환인 것이다.

케이블 업계도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900만 명이라는 아날로그 케이블 가입자 이탈을 막기 위해 반쪽짜리 디지털 전환이라는 사실은 뒤로 한 고화질 방송만을 앞세워 순식간으로 소비자를 현혹하는 얄팍한 상술을 펴고 있다. 이에 대해 IPTV 업계 관계자는 “8VBS 전송 방식이 허용되면 아날로그 케이블 시장이 디지털 시장으로 그대로 흡수된다. 현재 아날로그 케이블 가입자 이탈 방지와 새로운 추가 가입자 확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케이블 업계가 8VSB 전송 방식 허용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무늬만 디지털 전환은 안 돼”

최근 종편 JTBC의 모회사인 <중앙일보>는 미래창조과학부가 8VBS 전송 방식 허용을 골자로 하는 내용을 이달 안에 발표할 것이라는 보도를 한 바 있다. 보도 직후 미래부는 “8VSB 전송 방식 허용 여부는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며 <중앙일보> 보도에 선을 그었지만 오는 2017년까지 케이블 디지털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는 미래부 입장에서는 반쪽짜리 디지털 전환이라도 일단 모양새는 갖출 수 있는 8VSB 전송 방식을 허용할 수도 있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학계를 중심으로 한 관련 전문가들은 “당장 눈앞의 (디지털 전환) 숫자에 연연하기 보다는 장기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며 “양방향 부가 서비스가 가능한 진짜 디지털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재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정책실장도 “지난 10년 동안 디지털 전환에 소요되는 투자를 외면하던 케이블 업계에 8VSB 전송 방식을 허용해주는 것은 정부가 앞장서 유료방송시장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인 동시에 디지털 전환의 본 목표인 국민의 공익에도 걸맞지 않는다”면서 “무늬만 디지털 전환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강력 주장했다. (추후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