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전환 ‘무임승차’한 가전사
‘DTV Korea’ 광고․홍보 담당 이기수
지난 10월 30일 한국지상파다지털방송추진협회(회장 엄기영, DTV코리아)가 공식 출범했다. DTV코리아는 2012년 12월 말까지 완료해야 하는 지상파 TV의 디지털전환을 위한 추진기구다. DTV코리아는 시청자 지원, 홍보활동 등을 비롯해 디지털전환이 어려운 소외계층 돕는 일을 추진하게 된다.
디지털전환은 전국민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국가적 정책인만큼 예산 규모는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내년 2월 17일 디지털로 모두 전환하는 미국은 시청자 직접 지원 등에 쓰이는 예산 규모를 15억 달러(약 1조7000억 원), 영국 약 6억 파운드(1조2000억 원), 이탈리아 약 3억 2000만 유로(약 5400억 원) 등을 책정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608억 원(디지털 전환특별법 비용추계서 기준) 정도의 예산을 배정할 예정이다.
더욱이 현재 2012년 아날로그 방송 종료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약 31.3%(구 방송위원회, 2007 TV 시청행태연구)에 머물러 디지털전환에 대한 인지율은 낮은 편이다. 매년 인지도 상승률은 4%로 2012년에는 50% 중반에 그칠 수 있다.
DTV코리아는 한국방송협회 정책특별위원회가 DTV코리아 설립준비단으로 활동을 시작한 2007년 7월부터 정부, 방송사, 가전사, 유통사 등 디지털전환과 관련한 주요 이해당사자와 연합체를 꾸리기 위해 노력해왔다. 디지털전환은 국가적 정책과제로 산업과 문화적 요소(미디어)가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계해 상호협력하느냐에 따라 전환율을 100%로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DTV코리아는 현재 지상파 방송 4사, 지역MBC 19개 계열사, 가전 유통업체인 하이마트, 소비자 시민 모임, 학계 등이 회원사로 참여하고 있다. 앞으로 한국전파진흥원,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휴맥스, 스펙트럼안테나, 페타미디어 등 회원사로 참여할 계획이다.
하지만 삼성전자, LG전자, 대우일렉트로닉스 등 주요 가전사들이 모두 DTV코리아 회원사 협의과정에서 불참의사를 밝혔다. 세계 디지털TV 판매 시장 점유율 1, 2위를 다투고 있는 삼성전자, LG전자 등은 방송통신위원회 디지털방송활성화추진위원회가 꾸려진 뒤 DTV코리아 참여를 논의할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참여여부가 불투명한 상태다. 문제는 분담금이었다. 가전사들은 분담금 납부에 난색을 표하면서 결국 DTV코리아 참여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알게 모르게 굳이 DTV코리아에 참여하지 않아도 산업 효과는 충분히 누릴 수 있다는 예상이 가능하다.
현재 디지털TV 보급률은 약 385만대(국내 전체 가구의 23.5%)로, 앞으로 4년 내에 국내 가구기준에 보급되어야 할 디지털TV 보급 대수가 1306만대, 가구 내 모든 TV를 기준(가구당 1. 46대)으로 했을 때는 2115만대의 디지털TV( 또는 디지털박스)가 추가로 보급돼야 한다. 결국 가전사들은 어느 이해당사자보다도 한정된 기간 내에 많은 산업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더욱이 디지털전환을 지연시키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디지털TV 가격은 디지털TV 구입에 대한 비용부담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가전사들의 이기적인 얼굴을 보여준다.
모순적이게도 한국의 디지털전환에는 소극적인 삼성전자, LG전자 등은 디지털전환이 진행중인 영국(Digital UK), 미국(DTV Transition Coalition), 일본(D-PA) 등의 디지털전환 추진기구 파트너로는 활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디지털전환은 지상파 방송사만의 몫일까. 가전사와 달리 DTV코리아 회원사로 참여한 지상파 방송4사는 2012년 아날로그 방소 종료년도까지 한정된 기간에 디지털 전환 투자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2000~2007년 약 1조 6000억 원의 디지털전환 비용이 투자된 상태다. 그러나 앞으로 4년(2009~2012년) 동안 이보다 더 많은 약 2조원의 디지털전환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지상파 방송사들은 광고수익 악화 등으로 재원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파 방송사들은 DTV코리아에 참여했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디지털전환을 하는 데 있어서 ‘시청자 복지’가 ‘산업논리’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DTV코리아는 출항했다. DTV코리아는 올해 정부 예산과 회원사들의 분담금으로 2012년 말까지 디지털전환을 위한 대국민 홍보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당장 오는 11월 말부터 한 달간 지상파 방송4사를 통해 디지털전환 공익광고가 전파를 탄다. 이런 홍보과정을 통해 DTV코리아는 국민들에게 디지털전환의 필요성, 디지털전환에 대한 방법 등을 설명해 나갈 계획이다.
국가적 역량을 쏟아 추진하는 디지털전환의 최대 수혜자인 가전사들이 언제까지 DTV코리아에 ‘무임승차’할 생각인지 물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