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일 전략미디어연구소 팀장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차기 정부의 조직 개편을 발표했다. 개인적으로 아직 디테일한 부분이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또 국회 입법 과정에서 충분히 변경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차기 정부 개편안은 등장했다. 이제 실제적인 정부 조직의 구조가 변경되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이번 차기 인수위의 정부 조직 개편안은 기존 정부들이 ‘작은 정부’를 지향하던것 과는 판이하게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단순히 조직의 비대함을 봐도 그렇다. 신설 부처의 등장으로 정부의 외연은 커지고 그만큼 이러한 조직에 소요되는 연비도 더 크게 생겼다. 물론 이러한 조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의문이다. 긍정적인 바람을 일으키거나 부정적인 결과에만 매몰되는 대한민국의 비극이 되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역시 정부 조직의 비대화는 심각한 동맥경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여기서 문제가 시작된다. 그 문제의 단초는 미래창조과학부가 제공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대한민국의 신성장 동력을 이끌기 위해 만들어진 부처로서 앞으로 경제 성장 및 기타 다양한 분야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이 거의 확실시 되고 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박 당선인의 정책 자문인 이병기 서울대 교수는 최근 공식석상에서 ICT 인프라에 방점을 찍은 ‘정보통신방송부’ 신설을 주장하며 방송 광고 편성 및 방송사 지배구조와 관련된 포괄적 권리를 자신이 주장하는 정보통신방송부가 가져가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은 적이 있다. 여러 시나리오 중 하나였으며, 만약 이렇게 되면 방통위는 분리 수준이 아니라 막대한 예산을 가진 코바코를 다시 문화부에 돌려주어야 하는 등 방송과 통신, ICT 기능 등의 재배치가 연속적으로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가장 유력하게 검토되는 방안, 즉 미래창조과학부 산하에 ICT 전담조직을 두지 않는 방안이 진지하게 논의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된다. 그 전에 미래창조과학부가 ICT 전담조직을 산하에 두는 안도 한 때 비중있게 논의되긴 했지만 지금은 사실상 폐기된 바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의 지나친 비대화를 막기 위해서다. 대신 인수위 안팍에서는 ICT 전담조직을 미래창조과학부와 완전히 독립시켜 독임부처제로 구성하고 그 안에 방송관련 합의제 위원회를 존속시키는 방안을 가장 유력하게 검토했었다. 물론 ICT 전담조직을 업무 연계성이 높은 문화관광부 산하에 넣자는 이야기도 있지만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사장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고 미래창조과학부는 ICT 전담 부처의 기능을 흡수한 대형 공룡 부처로 탄생할 것으로 보인다. 이건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 간단하다. 방송통신위원회의 규제적 성격을 남겨두고 관련 산업의 부흥을 노린다는 이 거대한 부처는 종국에는 미디어 전반에 대한 차기 정부의 진한 연민이 들어있다고 보여진다. 이런 뜻이다. 언론개혁시민연대를 위시한 많은 시민단체가 우려하듯이, 언론장악의 첨병으로 방통위를 존속시키는 한편, ICT 자체에 대한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았다는 것. 바로 이것이 핵심이다.
방통융합 시대를 맞이한 요즘, 대부분의 미디어 안건은 규제와 진흥이 적절히 녹아들어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차기 정부는 이러한 고민이 없었다. 그저 과학이라는 거대한 틀 안에 모든 것을 때려 넣고 모조리 엉망으로 만들 태세다. 당연히 불만이 많을 수 없는 구조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또 그 안에서 자신들의 주장과 고집을 관철시킬 현직 인수위원들이 많이 있느냐다. 분명 파열음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다.
과도한 공룡 부처의 등장은 동맥경화를 불러올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대부분의 과학 기능은 신성장 동력은커녕 천천히 쓰러지는 매머드의 운명을 따를 확률이 크다. 가장 큰 패착은 역시, 당연하게도 규제와 진흥의 분류를 무리하게 만들어 버린 차기 정부의 과오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