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한국도로교통공단 한국교통방송 충북본부 나정모 과장]
● 암스테르담에서 느낀 첫인상
지난 9월 11일부터 5일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IBC 2025에 다녀왔다. 국내 방송장비 전시는 KOBA를 통해 여러 차례 보았지만, 라디오 분야 엔지니어로서 IBC는 조금 특별했다. 영상과 조명, 스트리밍 플랫폼이 화려하게 자리 잡은 한편, 라디오 부문은 여전히 ‘기술의 뿌리’를 지키며 새로운 진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라디오의 미래’를 체감할 수 있었다.
● 오디오 콘솔, 제작 환경을 바꾸다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하루를 보내는 엔지니어에게 가장 중요한 장비는 단연 오디오 콘솔이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관심이 갔던 것은 Lawo와 DHD였다. Lawo는 완전히 IP 기반 제작 환경을 전제로 한 콘솔을 선보였다. 단순히 채널을 믹싱하는 수준을 넘어, 네트워크 상에서 모든 오디오 자원을 통합 관리하는 구조였다. 엔지니어 입장에서는 “이제는 케이블 연결보다 네트워크 설정이 더 중요한 시대”가 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DHD는 사용자 친화적인 모듈형 구성이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버튼과 페이더 하나하나가 직관적이어서,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제작자가 빠르게 적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서 콘솔을 직접 만져보니, 예전의 콘솔보다 훨씬 정밀하고 유연한 제어가 가능했다. 앞으로 내 작업 환경도 이렇게 변하겠구나 하는 체험이 피부로 다가왔다.
● 디지털 라디오 송신 시스템, 유럽의 현실
라디오 분야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끈 것은 디지털 라디오 송신 장비였다. 유럽은 이미 DAB+ 기반으로 본격적인 전환을 진행하고 있었고, 이를 위한 송신기와 관련 장비가 다양하게 전시되고 있었다. 특히 Nautel의 송신기는 높은 에너지 효율과 모듈화 설계가 돋보였다. “송신기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또 얼마나 저비용으로 운용할 수 있는가”라는 현업의 고민을 정확히 짚어준 장비였다. 또 다른 업체에서는 DAB+ 다채널 송출과 데이터 방송 기능을 시연했는데, 단순히 음성만 나가던 FM 라디오와는 차원이 다른 서비스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미 많은 나라에서 FM 종료 시점을 논의하거나 실제 시행 중이라는 것이었다. 한국의 현실과 대비되면서, “우리는 아직 준비가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크게 다가왔다.
● 한국 라디오의 과제와 나의 고민
한국은 여전히 FM 중심이고, 디지털 라디오 논의는 실험 수준에 머물러 있다. IBC 현장에서 느낀 것은 “세계는 이미 달리고 있는데, 우리는 출발선에서 고민만 하고 있구나”라는 현실이었다. 정책적으로는 정부 차원의 디지털 라디오 전환 로드맵이 필요하다. 이에 따른 송신 인프라 구축이 검토되어야 한다. 제작 현장에서는 IP 기반 오디오 네트워크에 대한 이해와 디지털 송신 운용 능력을 갖춘 인력이 요구된다. 현장 엔지니어로서 나 역시 이런 변화를 대비해야 한다는 절실함을 느꼈다. 예전 같으면 콘솔과 송신기의 버튼만 알면 충분했지만, 이제는 네트워크 구조, 프로토콜, 그리고 데이터 송출까지 이해해야 한다.
● 체험에서 얻은 결론
IBC 2025는 나에게 단순한 구경거리가 아니라, “내일의 라디오를 준비해야 한다”는 숙제를 안겨준 자리였다. 현장에서 직접 장비를 만져보고, 메시지를 느끼면서 한국 라디오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더욱 선명해졌다. 라디오는 여전히 강력한 매체다. 그러나 그 힘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디지털 전환이 필수다. 나와 같은 현업 기술자들은 새로운 기술을 두려워하기보다 배우고, 실험하고, 현장에 적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