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 글래스로 본 증강현실의 미래

[기고] 케이 글래스로 본 증강현실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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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중식 글로스테크 연구위원

증강현실과 가상현실은 서로 비슷하지만 그 주체가 허상이냐 실상이냐에 따라 명확히 구분된다. 가상현실이 완벽하게 구축된 가상의 공간에서 새로운 구조와 시스템을 발현해 판타지를 제공한다면, 증강현실은 실제를 바탕으로 그 위에 가상의 구조를 합치는 것으로 정의된다.

가상현실 격투 게임은 ‘나를 대신하는 캐릭터’가 ‘가상의 공간’에서 ‘가상의 적’과 대결하지만, 증강현실 격투 게임은 ‘현실의 내’가 ‘현실의 공간’에서 가상의 적과 대결을 벌이는 형태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증강현실은 가상현실에 앞선다. 최소한 인간의 피부를 완벽히 구현해내는 시대가 오기까지는. 증강현실은 내부적으로 대단히 복잡하고 어려운 영상 기술이지만, 의외로 구동조건과 시스템은 간단하다. 증강현실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지리/위치 정보를 송수신하는 GPS 장치 및 중력(기울기+전자나침반) 센서(또는 자이로스코프 센서), 이 정보에 따른 상세 정보가 저장된 위치정보시스템(인터넷 연결 필요), 그 상세 정보를 수신하여 현실 배경에 표시하는 증강현실 애플리케이션, 마지막으로 이를 디스플레이로 출력할 IT 기기(스마트폰, 태블릿 PC) 등이다. 이러한 시스템과 구동원리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리고 새로운 것도 아니다. 지금 출시된 기술로도 충분히 구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증강현실의 발전을 측정하는 바로미터에는 무엇이 있을까? 바로 구글 글래스다. 한 때 사생활 침해에 대한 전사회적 담론을 몰고왔던 이 증강현실의 산물은,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시각을 전혀 색다르게 재구축하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우리가 만화 드래곤볼에서 봤던 ‘스카우터’의 재림이 말 그대로 생생하게 벌어진 격이다. 참고로 스카우터는 만화 드래곤볼 속 등장인물들의 필수 아이템이다. 상대를 바라만 봐도 전투력을 측정할 수 있는 스카우터는 시대를 앞서간 얼리 아이템인 격이다.

그런데 최근 국내 연구진이 구글 글래스보다 처리 속도가 30배 빠른 ‘케이 글래스(K-Glass)’를 개발했다. 당장 구글 글래스와 비교해 손색이 없다. 증강현실 시대를 앞당길 것이라는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이 대단한 위업을 달성한 이들은 KAIST 전기및전자공학과 유회준 교수팀. 이들은 세계 최초로 전용 프로세서를 내장한 머리 장착형 디스플레이(HMD) 케이 글래스를 개발했다.

이번에 개발된 ‘케이 글래스’는 기존 상용칩이 아닌 증강현실 전용 프로세서를 이용해 속도는 30배 이상 빠르면서도 사용시간은 3배 이상 늘어난 것이 특징이다. 지금까지 구글 글래스의 약점으로 지목되던 부분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것이다. 또 ‘시각 집중 모델’을 이용해 불필요한 연산을 제거하여 증강현실 알고리즘의 연산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인것도 중요하다. 구글 글래스의 단점 중 하나가 시각이 분산되고 시야각이 지나치게 넓어진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케이 글래스는 전력 소모를 줄이기 위해 ‘뉴런의 신경망’을 모방한 네트워크 구조를 적용, 프로세서 내에서 데이터를 전송할 때 생기는 병목현상을 해결했다.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을 쓴 연구팀의 노고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케이 글래스의 발명은 우리의 생활을 어떻게 바꿀까? 물론 증강현실의 미래가 성큼 다가왔다는 다소 뻔한 대답이 우선일 것이다. 하지만 IT 전문 연구원인 필자로서는 약간 색다른 대답을 할 수 있을것 같다. 그것은 기존 증강현실의 지향점 변경이다. 지금까지 증강현실은 실제세계에 다양한 바코드를 인식시켜 이를 구체화하고, 홀로그램을 목표로 하는 구체적인 가상세계에 바탕을 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번 케이 글래스는 홀로그램과 증강현실의 개념을 합쳐 기존의 ‘다양한 정보 추구’에서 ‘다른 가전제품과의 결합’으로 방향을 바꿀 것이다. 케이 글래스는 단순한 바코드 인식에서 벗어나 세상의 유기물과 무기물을 따로 인식하는 획기적인 발전의 지지대가 될 것이다.

CES 2014에서도 증명했듯이 IT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상호보완적 발전을 추구하는 최적의 상대는 바로 가전제품이다. 결국 케이 글래스도 이러한 전철을 밟을 것이다. 증강현실의 스펙트럼을 확장시키고 홀로그램으로 점철된 마지막 지향점은 포기될 것이며, 우리의 실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필수품이 될 전망이다. 물론 그 필수품이 무조건 케이 글래스일 필요는 없다. 구글 글래스 3.0이 될 수도 있으며 애플 글래스, 애플 왓치 5.0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갤럭시 기어의 출시가 뒤이어 등장할 가전과 IT의 행복한 결합이라면, 최소한 증강현실과 케이 글래스도 비슷한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의 증강현실 역사는 다시 쓰여져야 한다. 이제 3배와 30배의 시대가 왔다. 대중화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며, 이는 가전과의 결합을 필수적으로 부추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