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 나는 ‘책과 함께하는 여행’을 즐긴다. 같은 책도 서울 도심 속에서 읽는 것과 휴가지에서 읽는 것은 천차만별의 다른 맛과 향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휴가 계획을 앞두면 가장 먼저 서점에 들러 먼 여정을 함께 할 동반자 구하기에 고심한다. 알다시피 여행이란 ‘어디로’ 떠나느냐 보다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곳에 소개할 10권의 책은 내 여행 ‘최고의 파트너’가 돼주었던 녀석들이다. 눈앞의 그림 같은 풍경을 잊게 할 만큼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거나, 여행지를 영원히 기억할 만큼 아름다운 추억으로 물들여 놓은 책들이다.
1. 에릭 와이너 『행복의 지도』
이 책은 한 마디로 ‘행복’에 관해 편집증을 가진 한 남자의 세계유랑기다. 전직 <뉴욕타임스> 기자인 저자 에릭 와이너는 어느 날 누구나 한 번쯤 품어봤을 다음과 같은 질문에 직면한다.
“다른 나라에서 살면 행복할까?”
그는 이 질문을 품고 1년간 지구상 10개 도시, 수만 킬러의 거리를 종횡무진 누빈다. 행복지수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세계 최고의 부자 나라와 신의 섭리에 따라 진리와 성찰로 한 평생을 살아가는 나라까지. 365일간 지상 최고의 행복국가를 찾아 떠난 저자의 기발한 여행은 무엇보다 여행지에서 읽기에 안성맞춤! 그와 함께 자신만의 ‘행복의 지도’를 완성해보면 좋을 것이다.
2. 위화 『허삼관 매혈기』
얼마 전 하정우, 하지원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된 중국 소설이다. 주인공 허삼관은 삶의 고비마다 피를 팔고 또 판다. 아내에게 생활비를 주기 위해, 아들의 병원비를 위해 본인은 고단한 길을 끝없이 걸으며 피를 팔러 떠난다.
국공합작과 문화혁명으로 이어지는 중국의 거친 현대사 물결 속에서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해 피를 파는 한 소시민 가장의 매혈기는 시종일관 눈물겹다. 역사의 폭력 앞에 속수무책인 기층민의 삶을 거장 위화는 무겁고 우울하지 않게, 특유의 유머러스함을 잔뜩 버무려 엮고 있다. 단숨에 읽어 내려갈 정도로 재미 가득한 소설이다.
3. 공지영 『지리산 행복학교』
팍팍한 도시에서의 삶에 지칠 무렵 이 책을 만났다. ‘지리산’과 ‘행복’이라는 낱말이 빚어내는 묘한 앙상블이 책을 기꺼이 손에 들게 만들었다. 모두가 부를 향해 불나방처럼 질주하는 시대, 작가 공지영은 그에 역행하는 ‘이상한’ 사람들을 지리산에서 만난다. 1년 3개월은 일하고 나머지는 순례나 여행을 떠나는 이들, 사진을 찍고 차를 팔며 흙집을 짓고 사는 이들, 연봉 200만원(2000만원이 아니다, 분명 200만원이다)에 만족하며 지리산 중턱에서 시를 짓고 사는 이들까지. 언뜻 현실감이라곤 제로에 가까운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세속과 욕망에서 벗어난 그들은 적어도 도심 속 시민들에 비해 열 배는 행복해보였다.
4. 알프레드 아들러 『항상 나를 가로막는 나에게』
지난 해 출판계의 핫이슈는 ‘아들러의 재발견’이 아닐까 싶다. 프로이트, 융과 함께 심층심리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인물이지만 그 둘에 비해 (적어도 국내에서는)큰 주목을 받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런 그가 『미움 받을 용기』, 『항상 나를 가로막는 나에게』등으로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다.
이 책은 특히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진과 함께 아들러 철학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부분들을 짧은 몇 줄로 요약 정리한 책이다. 책읽기 싫어하는 사람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여행지의 푸른 바다 앞에서 아들러의 들려주는 ‘열정, 용기, 자신감’을 읽는 기분은 직접 경험해봐야 안다.
5. 루이스 세풀베다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
항구의 고양이 소르바스는 어느 날 우연히 마지막 알을 낳으며 죽어가는 갈매기 켕가를 만난다. 켕가는 소르바스에게 자신의 알을 보호해 줄 것과 새끼가 깨어나면 하늘을 나는 법을 가르쳐 줄 것을 부탁하고 숨을 거둔다. 켕가가 떠난 뒤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소르바스를 통해 저자는 어울리지 않는 존재간의 화합과 사랑을 이야기한다.
서로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고 사랑할 때 비로소 다른 존재의 다름과 다양성, 다채로움을 존중하고 아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출간 이후 유럽에서만 200만 부 이상 판매될 정도로 큰 사랑을 받은 ‘어른을 위한 동화’다.
6. 유홍준 『국보순례』
『나의 문화유적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 교수의 국보순례 안내서. 이 책은 국내여행을 계획 중인 분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기막힌 유적을 눈앞에 두고도 볼 줄 모른다면 무슨 소용일까. 유홍준의 책들은 우리에게 ‘보는 눈’을 길러주는 안내자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 책이 지칭하는 ‘국보’는 나라에서 문화재로 지정한 국보와 보물 외에도 저자 자신이 명작이라 여기는 소중한 우리 유물까지 포함해 이른 것이다. 딱딱하기만 한 문화재관련 책들과 달리 넘치는 입담만큼 뛰어난 필력으로 문화재의 뒷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고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다. 추사 김정희의 수선화에서 원삼국시대 항아리까지, 에밀레종에서 쌍봉사 철감선사탑에 이르기까지, 그의 눈길과 발길을 쫓아 의미 있는 국보순례에 동참해봄은 어떨까?
7. 정유정 『7년의 밤』
마치 괴물의 입처럼 강한 흡입력을 지닌 소설이다. 압도적 서사, 생생한 리얼리티와 가공할 상상력으로 무장한 정유정의 필력에 시종일관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소설은 7년의 밤 동안 아버지와 아들에게 일어난 필연적 비극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다. 딸의 복수를 꿈꾸는 남자와 아들의 목숨을 지키려는 남자의 운명을 건 한판 승부, 그리고 진실의 반전까지. 단언컨대, 소설 읽는 재미가 무엇인지를 정유정 만큼 확실히 보여주는 작가는 드물다.
8. 유해진 『살아줘서 고마워요』
‘사랑PD’로 유명한 유해진 다큐멘터리 피디의 잔잔한 에세이다. 가슴 절절한 사랑 풍경과 상처의 자리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이야기를 브라운관에 옮겨 감동을 전하던 그가, 그간 MBC <휴먼다큐 사랑>을 통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뜨거운 가슴으로 삶을 껴안은 이들, 처참한 상처에도 희망의 꽃을 피워낸 이들…… 팍팍한 일상을 떠나 위로와 쉼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희망의 증거’를 보여줄 수 있는 책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9. 말콤 그래드웰 『다윗과 골리앗』
『블링크』,『티핑포인트』등으로 세계적 경영사상가 반열에 오른 말콤 그래드웰이 이번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싸움 중 하나인 ‘다윗과 골리앗’의 스토리를 들고 나왔다. 누가 봐도 승리가 확연했던 골리앗을 단숨에 물리친 소년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 기존의 방식을 깨뜨리고 승리를 거머쥔 ‘창조적 약자’들의 일화를 소개한다.
저자의 메시지는 명쾌하다. 세상은 거대한 골리앗이 아닌 상처받은 다윗들에 의해 진보․발전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는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하여 룰을 깨뜨려야만 승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언더독, 아웃사이더들이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과 전략적 방법론을 아주 과학적인 방식으로 접근해 설명해준다.
10. 리처드 랭엄 『요리본능』
최근 트렌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먹거나, 요리하거나. 일명 먹방, 쿡방이 대세로 통한다. 이 책 『요리본능』의 저자 리처드 랭엄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 인류에게는 불을 다르고 음식을 조리하는 원초적 본능이 숨어있다. 전 국민이 요리사로 빙의한 요즘, 그 말이 진리인 것 같아 놀랍기만 하다.
이 책에서 그는 ‘음식’과 관련된 모든 것을 우아하고 지적인 방법으로 설명한다. 인류의 발전과 함께 요리도 진화해왔다. 요리란 자고로 인류학과 사회학, 생물학, 화학, 물리학, 문학, 영양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종합예술이다. 문명의 원동력이었던 요리, 그 발전과정과 가치를 오목조목 담고 있는 흥미진진한 인문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