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수 지역미디어발전연구회 연구위원
최근 사석에서 우연히 지상파 방송사 기자를 만난적이 있다. 동시에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하며 근황을 묻다가 갑자기 CPS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아마 케이블 방송의 유해성 등을 이야기하던 중이었던것 같다. 하여튼, 갑자기 화두로 떠오른 CPS 이야기를 신나게 하고 있는데 그 기자가 말했다. “직접수신률과 CPS를 두고 하나만 선택하라면, 일단 CPS를 택해야 하지 않겠어요?”
직접수신률의 가치를 모르는 지상파
개인적으로 CPS에 대한 생각은 상당히 유동적이다. 아니,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해당 분야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지상파 방송은 CPS가 정당한 콘텐츠의 저작권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결과론적으로 CPS는 시청자의 시청권 보장 측면에서 무료 보편의 지상파 방송사가 가지는 가치와는 충돌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직접수신률에 대한 담론이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실 지상파 방송 외부는 물론 내부에서도 지상파 방송 자체가 ‘플랫폼과 콘텐츠’라는 두 가지 요인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즉 ‘지상파’나 혹은 ‘공중파’라고 명명된 방송사의 기본 속성은 당연히 플랫폼과 콘텐츠의 가치를 충분히 살려야하는 것에 그 존재의 의의가 있으며 이 두 가지 중 하나라도 약해지면 당장 그 생명력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 두 가지의 가치가 사라지는 부분도 분명히 있을 수 있다. 또 콘텐츠만 존재하는 방송사도 있고 플랫폼만 존재하는 ‘방송사’가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물론 이 대목에서는 당연히 방송사의 뉴미디어, 즉 유료 방송에 대한 플랫폼 정의를 우선해야 한다는 기본 전제가 걸리게된다. 그래서 굳이 이러한 담론들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은 논리가 나오게 된다. 직접수신률로 대표되는 지상파 공공의 플랫폼이 사라지는 순간 지상파가 가지는 우월적 지위가 상실되며 동시에 지상파 방송사는 일개 PP의 역할만을 강제받는 존재가 된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클리어쾀 논의도 담론의 대상이 된다.
PP가 좋나요?
그런데 이 대목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있다. 특히 방송 기술인을 제외한 기자나 PD 직군의 인사들은 지상파 방송사가 일개 ‘PP가 되어도 좋다’라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아마 콘텐츠 제작에 적을 둔 인사다보니 자연스럽게 자신의 일이 세상을 바꾸는 지상파의 본질이라고 믿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같은 전제와논리는 틀렸다. 지상파 방송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변해도 공공의 미디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본질에서 그 우월적 지위와 정체성이 지속가능한 매체다. 그런데 아무리 콘텐츠를 공공의 의미에 입각해서 제작한다고 해도 플랫폼이 상실되거나 다른 유료 플랫폼에 의존된 콘텐츠를 송출하게 된다면 지상파 콘텐츠의 공공성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이 부분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콘텐츠가 중요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콘텐츠를 담아야 하는 그릇이 공공성과 거리가 멀어진다면 지상파 방송사는 지상파 방송사로 살아갈 수 없게 된다. 그런 상태에서 공공성을 유지한다? 불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직접적인 플랫폼을 가지고 있는 유료 방송의 사업주의에 입각한 정책에 지상파는 속절없이 휘말려 더 자극적인 케이블 및 종합편성채널이 될 뿐이다. 일개 PP가 되어도 좋다는 말. 최소한 지상파 방송사의 구성원이 해야 할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미디어 공공성을 구현하기 위한 조금의 의지라도 포기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플랫폼은 뼈, 콘텐츠는 근육이다
사람이 뼈만 있으면 제대로 설 수 없다. 그렇다고 근육만 있어도 잡아주는 뼈가 없으니 절대로 제대로 서거나, 움직일 수 없다. 아마 플랫폼과 콘텐츠도 같은 원리일 것이다. 이 두가지는 지상파 방송사라는 조직을 지탱하는 뼈와 근육이다. 아마 심장과 필수 장기들은 그 안에서 열심히 뼈와 살을 움직이는 직원들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중에 하나만 중요하고, 또 하나는 덜 중요하다는 논리는 애초에 성립될 수 없다. 뼈와 살이 제대로 힘을 받아 효과적으로 움직이듯이 플랫폼과 콘텐츠도 이 같은 논리로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디어 공공성 측면에서도 이 뼈와 살 논리는 더욱 정당성을 가지게 된다. 올바른 콘텐츠의 전달과 더불어 그 정보의 그릇도 너무나 중요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몇몇 지상파 방송사 구성원들이 이러한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플랫폼을 상대적으로 경시하는 풍조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아니, 안타까움을 넘어 실망스럽다고 표현할 수 있으리라.
지상파 방송사는 그 자체가 지상파 방송사이기 때문에 공공성과 권위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지상파 방송사는 미디어 공공의 의미를 더욱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노력할 때 그 존재의 의미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상파를 PP로 인식하려는 그릇된 인식의 오류가 구성원들에게서 포착되는 순간, 지상파 방송사는 엄청난 위기에 봉착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상식적으로 유료 방송 플랫폼을 가진 공공의 콘텐츠는 그리 쉽게 연상되지 않는다. 생각해보라. 왜 KBS가 존재하는지, 왜 MBC가 존재하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