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근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부회장
텔레비전 광고나 종이매체를 통해 잘 알려진 ‘한국인의 두통약’ 게보린은 두통약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팔리고 있는 의약품이다. 그런데 이 유명한 의약품은 재생불량성 빈혈이나 혼수, 어지러움증 등의 심각한 부작용을 가지고 있어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사용을 안 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1년 안에 안전성 데이터를 제출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퇴출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뇌혈관질환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아 시장에서 퇴출된 PPA성분 함유 감기약인 콘택600 역시 2004년 시장에서 퇴출당하기 이전까지 꾸준히 광고되면서 국민들이 즐겨찾던 의약품이었다. 이외에도 여러 매체를 통해서 광고가 되었으나 문제가 되어 전문의약품(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의약품)으로 전환되거나 시장에서 퇴출된 의약품은 여럿 있다.
위의 사례처럼 현행 법규 안에서 충분히 광고할 수 있는 의약품의 경우에도 종종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일반의약품(처방 없이 약국에서 구매할 수 있는 의약품)보다 훨씬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전문의약품 광고다.
방통위는 소비자의 알권리와 선택을 강조하며 우리나라도 전문의약품 광고를 허용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전문의약품 광고를 허용하고 있는 미국의 사례를 살펴보면 전문의약품 광고가 소비자의 알권리와 건강증진에 별로 도움을 주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의약품 광고는 경쟁제품이 없는 신약(NEW DRUG)에 집중되고 있는데 안전성 검증에 있어서 취약하고 기존에 있던 약보다 대부분 비용이 비싸서 불필요한 비용을 증가시키고 있다. 실제로 시장에서 퇴출되는 의약품의 대부분은 출시된 지 얼마 안 되는 신약이다. 대표적 관절염 치료제로 대대적인 광고가 이루어지고 블록버스터 약물에 올랐던 바이옥스는 치명적인 심장질환 부작용이 발견되어 퇴출되기도 했다.
또한 왜곡된 정보로 인해 소비자의 의약품 의존성을 높이고 환자-의사와의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일반 시민들)의 43%가 의약품의 안전성이 완벽하니까 광고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22%는 심각한 부작용이 있는 약의 광고는 미리 금지되었을 것이라고 믿었고, 21%는 매우 효과적인 약만이 광고가 허용될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직접광고는 식단, 운동, 온도변화, 환경오염, 약의 올바른 사용과 같은 공중보건을 언급하지 않았으며, 약에 대한 정보보다는 약을 구입하게 하려는데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고 지적한다. Peter Mansfield’s에 의하면 직접광고에서 주는 정보는 흠이 있고 완전하지 않고, 광고하는 의약품을 보면 약치료의 성공률이나 대체치료 같은 정보는 제공하지 않는다고 한다.
의약품에 대한 왜곡된 정보는 치료율을 높이는데 결코 도움을 주지 않는다. 환자가 잘못된 약에 기대감을 갖게 되는 경우 정보를 다시 수정하는데 시간이 소요되고, 의사가 광고약을 처방하지 않거나 환자에게 굴복하여 적절하지 않은 광고약을 처방해 그 결과가 좋지 못했을경우에는 의사-환자와의 관계를 악화시킨다. 또한 약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을 갖게 하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예를 들면 일상적인 불행이나 불안감의 경우에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하여 항우울제의 복용을 증가시키는 등의 부작용이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특히 약의 효과가 실망스러울 때는 심각한 스트레스를 유발시킨다고 지적하고 있다.
셋째 의약품 직접 광고는 불필요한 비용을 증가시킨다. 1996년-2000년 사이 제약사의 판촉비용은 71%가 증가하였는데 전문가를 대상으로 하는 판촉비용보다 대중광고 비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2004년의 직접광고 총액은 40억불에 이른다. 이러한 광고비용은 고스란히 약값에 반영되어 약값을 상승하게 만든다. 또한 의약품의 사용량이 늘어나게 되니까 보험이나 개인비용 역시 늘어나게 된다. 미국에서의 한 연구는 2000년의 의약품 비용 증가 중 12% 즉 26억 달러가 소비자 직접광고에 의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연구는 1994년부터 2005년까지의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전문의약품에 대한 소비자 직접광고가 약품의 판매량과 가격을 높였다고 결론을 내리고, 소비자 직접광고의 증가 때문에 미국의 전문의약품 처방비용이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이 중 2/3는 소비의 증가이고, 1/3은 가격 증가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정부, 공공기구, 소비자들이 전문의약품 직접광고가 해롭다는 결론을 내렸기에 전세계적으로 미국과 뉴질랜드만이 직접광고를 허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문의약품 광고가 허용이 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의력 결핌증후군에 사용되는 약물이 머리 좋아지는 약물로, 발기부전에 사용되어야 할 약이 정력증강제로, 비만치료제로 사용되어야 할 약이 몸매 관리하는 약으로 둔갑하여 사용되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의약품 광고가 허용되면 종편사와 제약회사만이 이익을 향유할게 확실시된다.
따라서 국민의 경제적 편익과 건강증진에 아무런 실익이 없고 오히려 부작용만 양산할 수 있는 전문의약품 대중광고는 종편사업자에게만 득이 될 뿐이므로 절대로 허용이 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