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의 시대, 직언으로 고언하다.

[기고] 융합의 시대, 직언으로 고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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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민 융합미디어연구회 연구위원

안철수 전 대선 후보의 영향력일까. 아니면 문화계를 휩쓸고 있는 화합적 결합에 대한 신기한 경외감일까. 현재 대한민국은 융합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단순히 만나서 결합하는 딱딱한 ‘합침’이 아닌 나이브하고 유연한 결합이다. 개인적으로 사회문화는 물론 정치와 과학 등 전 분야에서 융합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환영하며, 아울러 이러한 사회적 함의가 거대한 담론으로 소용돌이치길 바란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정부 조직 개편안 협상에 현미경을 대보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언제부터 미디어 플랫폼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논의가 뜨거웠다고 현재 이러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대한민국을 마비시킨다는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정부 조직 개정안 협상이 공전하는 것에는 어떤 치명적인 함정이 숨어 있을까. 여기에 대해서 논의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권에서 엄청나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정부 조직 개편안 협상의 핵심인 방송정책, 특히 미디어 플랫폼에 대한 논의를 보면 당연히 이러한 상념이 들 수 밖에 없다. 미디어 플랫폼적 가치, 즉 딱딱한 이공계열의 분야에 다분히 인문학적인 정치의 개념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는 것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전략이 필요하다. 양비론을 통한 정치적 레토릭을 거부한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역시 현실적인 정치의 전략이다. 그런데 이런 부분에 대항하는, 혹은 이견을 제시하는 진영은 다분히 전략의 부재를 보여 아쉽다. 소위 언론운동을 한다는 시민사회단체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정치적인 부분은 정치적으로, 공학적인 부분은 공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려는 기묘한 습관을 가진 것 같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융합의 시대를 맞이해 이제 하이브리드 적 정책을 추진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부분에 정책적, 전략적인 선택의 문제가 남았음을 확인해야 하며 동시에 긴밀하게 접근해야 한다.

그 중요한 사례로 케이블 SO 및 주파수 정책에 임하는 소위 이공계의 주장을 모아보자. 같은 이공계라고 해도(필요상 이공계라고 부리지만, 사실 이는 ICT 전반에 거치 이해당사자의 총합이다) 하나의 현안에 접근하는 방안은 다채롭고 그 숫자도 많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필자는 케이블 SO의 방송통신위원회 존치와 주파수 정책의 이원화를 반대하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을 하는 진영을 향해 묻고싶다. 당신들은 융합에 대한 정책적, 전략적 기술들을 완전히 숙지하고 있는가. 동시에 다른 진영에도 묻고싶다. 당신들은 정치적 관점에서 이공계의 주요 현안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고, 또 특정 단체의 이익을 두고 편향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을 용기가 있는가.

그래서 필자는 본 원고를 기고한 [방송기술저널]과 같은 융합의 매체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방송기술저널]의 발행처는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다. 물론 최근에 이르러, 근 10년간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는 친 지상파 성향을 노골적으로 내보이는 경향이 없잖아 있지만 일단 연합회는 대한민국의 방송기술인을 대표하는 직능단체다. 이런 단체야 말로 이공계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방송기술은 그 안에 순수과학은 물론 대부분 현존하는 모든 과학기술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단체에서 다분히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전문지를 발행하고 있다. 여기서 융합이 발생하고 시너지 효과가 만들어진다. 앞으로 [방송기술저널]의 어깨가 무거워질 것이며, 이공계의 고집스러움에 [방송기술저널]이 화학적인 융합을 이루지 못하고 좌초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최근 [방송기술저널]의 매체력이 중가하는 만큼 그에 걸맞는 언론사의 체계를 기대한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이공계의 정책적, 전략적 접근에 다시 집중해보자. 정리하자면 정책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융합의 시대를 맞이해 플랫폼 이해 관계자들의 논란을 스스로 잠재우고 싶다면 다양한 정책적이고 융합적인 결론 도출 능력이 필요하다. 이는 비단 이공계에만 하는 주문이 아닐 것이다. 오로지 하나되어 모든 칸막이를 없애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미래창조과학부의 방송정책 이관을 반대하고 방송통신위원회의 모든 기능을 그대로 존치시키자고 주장하는 진영에 드리는 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