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방송 규제완화, 노동자를 내몬다

[기고] 유료방송 규제완화, 노동자를 내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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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식 나눔희망연대 부대표

유료방송 규제완화 정책이 탄력을 받으며 대한민국 미디어 환경도 급속도로 재편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현 상황에서 광역화를 추구하는 케이블 업체의 걸음도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가오는 한미 FTA를 맞아 대형 토종 플랫폼+콘텐츠 기업의 등장을 독려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과연 최선일까.

케이블 SO는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미디어 플랫폼이다. 각 가정마다 케이블과 컨버터를 설치해 주고, 시청료를 징수하는 케이블 사업자다. 여기에는 전국 여러 지역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는 티브로드, CJ 헬로비전 등의 복수 SO와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SO로 분류된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은 상당히 피상적이다. 종합해서 결언하자면, 케이블 SO는 그 자체로 지역 미디어의 공적 영역을 수행하는 일종의 민간 사업체로 정의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케이블 SO의 전국구, 광역화는 많은 부작용이 따른다. 이에 대한 공공 미디어 플랫폼의 약화도 심각한 요인이다. 그러나 필자는 공공 미디어 플랫폼의 분산과 동력의 상실을 논하기에 앞서 케이블 SO를 아우르는 유료방송 규제완화가 가지는 치명적인 폐혜를 중심으로 설명하려 한다. 이는 헌법에 보장된 기본적인 노동권에 대한 문제다.

최근 광역화 케이블 SO로 분류되는 티브로드 사측이 2014년 협력업체와 관련해 ‘1년마다 교체’, ‘영업 실적 점수제 도입·차등지원’ 방침을 밝히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방송법 시행령이 개정되며 권역별 규제에서 풀려난 케이블 SO들이 무리한 쥐어짜기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한편, 이에 필요한 인적희생은 직원들에게 전가하겠다는 뜻이다. 그러자 한동안 사측과의 점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던 민주노총 희망연대노동조합 케이블 방송 비정규직 티브로드지부는 티브로드 본사가 위치한 광화문 흥국생명건물 앞에서 규탄집회를 열었다. 지난해 31일이라는 장기간 파업을 통해 사측과 조합원의 신분과 고용보장, 45만 원 임금인상, 경조휴가 및 경조금의 동종업계 수준 제공, 연장근로 월 35시간 내 실시, 노동조합활동보장 등에 합의하며 조성된 화해무드가 다시 얼어붙은 것이다. 양측이 치열하게 부딪치는 부분이 바로 서두에 설명한 ‘1년마다 교체’, ‘영업 실적 점수제 도입·차등지원’ 방침이다.

여기서 우리는 희망연대노동조합 장제현 조직국장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이 티브로드 사측과 벌이는 투쟁의 이유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언급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장 국장은 “미래창조과학부의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으로 케이블 업계의 노동자들에 대한 영업압력이 심해지고 있다”며 “티브로드의 경우, 한 지역에 하나씩의 고객센터와 기술센터가 운영되면서 영업을 해왔는데 작년 10월~11월부터 티브로드홀딩스 산하 사업부에서 외주업체를 많이 늘리면서 문제가 됐다. 한 지역의 경우 많게는 15개의 외주업체가 들어온 곳도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유료방송 규제완화를 논함에 있어 공공 미디어 플랫폼의 생존전략과 결부시키는 방식을 기계적으로 채택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 관점을 넓혀야 할 순간이다. 원래 ‘법’이란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고 그에 순응하고 화합하기 위해 만들어진 최소한의 규약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유료방송 규제완화에 속도를 내는 것이 과연 실질적인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지 않은가를 고민해야 한다.

현 정부는 방송을 비즈니스 모델로 치부하여 보다 많은 이윤과 실익을 창출하도록 채찍질하고 있다. 그러나 공공의 영역과 가까운 방송이 지나친 자본주의적 속성과 충돌하면 그와 환치되는 개념인 창조경제의 구현은 더욱 요원해질 것이다. 그런면에서 유료방송 규제완화에 따른 노동자의 권익 침해는 경제적 측면에서의 독과점과 유사하다. 부익부 빈익빈의 법칙은 21세기에 들어와 우리 사회를 양극화 모델로 치닫게 만드는 주요한 원흉이다. 방송의 실제적 의미와 공리적 작용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