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마 MBC 노조 홍보국장
MBC가 파업에 돌입한지 어느새 150일을 넘었다. 방송사상 최장기 파업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것이다. 이에 앞서 노사협상을 타결지은 KBS도 100일 가까이 파업을 했다. 전두환 군사정권 당시에도 없던 공영방송사들의 연쇄 파업이다. 우리는 왜 파업을 하고 있을까?
일부 파업 반대론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에도 공영방송사들의 사장 선임구조는 지금과 똑같았다, 그리고 그 당시에도 편파보도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유독 지금만 낙하산 사장이라고 주장하며 파업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 과거에도 공영방송 사장은 사실상 대통령이 임명했다. 그런데 당시에는 왜 ‘낙하산’ 시비가 일지 않았을까? 당시와 지금은 중요한 차이가 있다. 우선 그 당시에는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임기 도중에 사장을 축출하지 않았다. 정연주 KBS 사장과 엄기영 MBC 사장을 잇따라 내쫓은 현 정권과 중요한 차이점이다. 현 정권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에 정립된 절차적 민주주의조차 지키지 않았다.
다음으로 현 정부는 공영방송 사장을 유독 대통령 후보 특보 출신이나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운 사람들로만 임명한 반면 과거 정부는 그러지 않았다. 김중배 전 MBC 사장의 선임은 정권의 간섭을 물리친 ‘방송문화진흥회의 반란’이었다고 보수적 매체인 <주간 동아>조차 평가할 정도였다. 또 노무현 정부 초기 KBS 사장에 대통령 후보 특보 출신 인사의 임명을 시도한 적이 있었지만 야당과 시민단체의 반대에 직면하자 이를 철회한 바도 있다.
마지막으로 공정방송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있다. 공영방송 사장으로 임명된 자들의 행태이다. 비록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었다 해도 이들이 정권과 거리를 유지한다면 ‘낙하산’ 시비를 잠재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 정부 하에서 임명된 사장들은 정권과의 거리는 커녕 정권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행태를 벌였다. 이러한 사실은 현 정부 하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뜻에 따라 김재철 씨를 MBC 사장에 임명했다고 밝힌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최근 평가에서도 드러난다.
그렇다면 실제 방송보도는 어땠을까? 과거 정부에서도 편향적인 보도가 이루어졌다는 일각의 주장과 관련해, 대통령 퇴임시마다 제기된 사저관련 논란에 대한 <뉴스데스크> 보도를 비교해 보자.
“김대중 대통령이 퇴임한 뒤에 거처하게 될 서울 동교동 신축사저를 둘러싸고 호화주택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OOO기자가 현장을 다녀왔습니다.”(2002년 9월 13일) “노무현 대통령의 친인척과 측근들이 노 대통령이 퇴임 후에 거처할 사저 주변의 땅을 꾸준히 매입해 온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 땅 전체 규모가 3만 6000평방미터에 이른다는데 OOO 기자가 보도합니다.”(2007년 9월 10일) 5년 간격을 두고 보도된 뉴스데스크의 두 앵커 멘트는 모두 대통령 사저 관련 문제점을 압축적으로 제기하고, 기자의 리포트에서는 사저 신축 현장을 심층 취재해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반면 작년의 보도는 판이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퇴임후 서초구 내곡동의 새로운 사저에 살게 된다고 청와대가 밝혔습니다. OOO기자입니다.”(2011년 10월 9일) 앵커 멘트에 문제점 지적이 전혀 없고 청와대의 주장만 나오고 있다. 기자의 리포트를 보면 더욱 황당하다. 주어가 대부분 청와대이다. “청와대는…밝혔습니다. 청와대는…해명했습니다.” 이런 식이다. 특히 가장 큰 문제는 리포트를 한 취재기자가 사저 신축현장을 가지도 않고 청와대 관계자의 일방적인 설명을 토대로 기사를 작성한 점이다. 야당이나 시민단체의 비판은 빠져있다.
기사를 이렇게 취급한 것은 혹시 이명박 대통령 사저 관련 문제가 과거 두 대통령 때에 비해 적었기 때문은 아닐까? 전혀 아니다. 오히려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 씨까지 개입되어 실정법 위반 혐의로 고발되었고 야당에서는 특검까지 요구하는 상황이다.
대통령 사저논란과 관련된 기사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국무위원들에 대한 인사 검증, 4대강 사업의 문제,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119 상황실 전화 논란, 한미FTA 날치기 반대시위, KBS의 민주당 도청의혹, 김형태 새누리당 후보의 제수 성폭행 의혹 등 현 정권을 비판하거나 여권에 예민한 기사들은 아예 보도조차 되지 않았다.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올해 4월 총선에서 보인 극도의 여당 편향적인 보도 행태는 두말 할 것도 없다.
1987년 민주화와 더불어 언론의 자유도 높아졌다. 노무현 정부 시절 공영방송은 정치권력으로부터 상당한 정도의 독립을 획득할 수 있었다. 실제 언론의 ‘주적’은 정치권력이 아니라 삼성으로 대표되는 자본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회자될 정도였다.
하지만 현 정부 하에서 언론의 자유는 전두환 정권 시절로 회귀했다. 사라졌던 정치권력이 다시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파업에 대한 이명박 정권과 김재철 사장의 대응도 1980년대식이다. 해고와 중징계를 남발하며 노동조합을 말살하겠다는 의지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탄압정책은 오히려 조합원들의 분노와 저항감을 고조시켜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이 사태악화가 12월 대선을 앞두고 바로 현 정권과 경영진이 원하는 상황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들은 MBC가 정상화되는 걸 절대로 원하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