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콘텐츠 해외 유통 환경 변화와 대응 전략

[기고] 방송 콘텐츠 해외 유통 환경 변화와 대응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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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용 인하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2000년대 초 중국에서의 드라마 한류(Korean Wave)를 시작으로 일본을 거쳐 지금은 케이팝(K-Pop) 열풍이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국내 방송 콘텐츠 수출이 크게 증가했다. 방송 콘텐츠 수출의 증가는 문화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경제적 효과와 국가 브랜드 가치를 제고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한류 콘텐츠 수출은 소비재 수출을 견인하며, 한국 제품에 대한 선호를 증가시켜 무역을 촉진시키는데, 실제로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문화 상품 수출 100달러 증가 시 소비재 수출이 412달러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류의 시작을 불러온 ‘대장금’ 이후 다양한 드라마는 한국 프로그램 해외 진출을 굳건히 다지는 계기가 됐다. 이후 아이돌 그룹이 주도하는 케이팝(K-POP) 등으로 확대되면서 콘텐츠 다양성 측면에서 성장했고 인터넷, 특히 유튜브를 통해 한국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나 댄스 동영상을 쉽게 접하게 되면서 아시아 지역은 물론 중남미 대륙까지 한류의 지역적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최근에는 완성된 프로그램의 방영권을 판매하는 방식 이외에 국내 예능 프로그램의 포맷이 수출되는 사례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특히 중국에 수출된 <나는 가수다>와 <아빠 어디가> 등이 중국 등지에서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또한 한국의 PD나 작가를 영입하거나 공동 제작, 제작 자문 등이 늘어나고 있다. 여기까지 보면 한류의 열기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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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실상을 살펴보면 한국 방송 콘텐츠의 해외 유통에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최근 10년간 지속되고 있는 특정 아시아 국가 중심의 거래 편중 현상은 우리나라 방송 콘텐츠 수출의 위험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방송 콘텐츠 수출의 주요 거래국은 일본, 대만, 중국 등이며(프로그램 수량 기준), 매출액은 일본의 비중이 가장 높고, 중화권과 동남아권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이와 같은 대일, 대중 수출의존도는 최근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 중국의 문화 보호 정책 강화 등에 따라 콘텐츠 수출이 큰 영향을 받는 문제점 발생하기도 한다. 가령, 한류 프로그램의 인기가 치솟자 중국 광전총국은 한국 드라마의 수입과 방송 규제를 대폭 강화하고 있는 추세며, 2013년 이후 한일관계 악화에 따라 일본 우익 세력 반발 우려로 각종 한류 이벤트 및 K-Pop 진출이 위축된 것이 그 사례다. 게다가 최근 중국과의 공동 제작이 늘어나면서 한국 프로그램을 중국 등 제3국에서 제작하거나 현지화하는 경향이 늘어남에 따라, 이제는 한국 프로그램이 아니라 해외에서 제작된 한류 프로그램이 유통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이런 현상이 현실화될 경우 한류 프로그램의 확산에 따른 한국 방송 사업자의 수익도 크게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

최근 동남아 지역으로의 방송 콘텐츠 수출이 증가 추세에 있으나 수출액은 아직 높지 않다. 방송 프로그램 수출이 활발한 베트남, 태국은 우리나라와 동일한 종교 문화권으로 문화적 근접성이 높으며, 인도네시아는 이슬람국가이나 해외 문화에 대한 개방성이 높다. 특히 이들 국가는 전반적으로 오랜 기간 미디어 산업을 규제해 자국 방송 콘텐츠가 부실하기 때문에 해외 방송 콘텐츠 수입에 적극적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콘텐츠의 진출 노력이 활발하다. 그렇다면 이들 동남아 국가로의 방송 콘텐츠 유통에서 유의해야 할 점이 무엇인가?

첫째, 이들 국가에서 여전히 지상파TV의 영향력이 크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주요 국가들은 디지털 전환을 앞두고 있으며, 방송통신 인프라가 개선되고 방송 채널과 플랫폼이 증가하면서 콘텐츠 수요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이는 한국 프로그램 수출에 있어 또 다른 기회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동남아 지역은 여전히 지상파TV가 주요한 프로그램 소비 매체다. 베트남의 경우 정부에 의해 운영되는 지상파TV 채널이 지상파뿐만 아니라 케이블TV, 위성방송, IPTV 등 유료방송 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에서도 지상파방송 사업자들이 위성방송이나 케이블TV 등 다양한 방송 플랫폼을 소유하고 있다. 따라서 한류의 지속적 확산을 위해서는 지상파TV 채널을 통한 방영이 매우 중요하다.

둘째, 동남아 현지 유료방송 사업자와의 협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현재 동남아 지역에서는 방송통신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면서 유료방송 사업이 점차 발전하고 있다. 전통적인 유료방송 사업자뿐만 아니라 통신 사업자의 방송 진출 시도가 나타나고 있어 콘텐츠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한류 프로그램의 지속적 확산을 위해 유료방송 채널을 통한 한류 프로그램 방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지속적인 경제 성장 추세에 따라 소득 증가가 예상되며 이에 따라 유료방송에 대한 지불 능력이 높아지면 유료방송 가입자가 점차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베트남에서 한국 드라마 방영 편수가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 지역에서 케이블TV 시청이 증가하면서 많은 한국 프로그램이 꾸준히 방영되고 있다. 특히 베트남 한류 드라마 전문 채널도 탄생해 한국 TV 드라마를 꾸준히 방송하고 있다. 이런 채널들을 통해 한국 프로그램에 관심 있는 시청자들을 지속적으로 확보해나가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현지 방송 산업 규모를 고려한 유연한 콘텐츠 가격 정책이 필요하다. 최근 동남아 국가들의 방송 시장 규모에 비해 한국 프로그램들의 방영권 가격이 빠른 속도로 상승하면서 현지 방송사들이 수입을 꺼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동남아에서 K-POP 열풍으로 한류가 재점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송 콘텐츠 수출 증가로 바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한국 프로그램이 높은 가격만큼 시청률 성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동남아 지역에서 유료방송 채널의 증가는 한국 프로그램의 진출 기회를 넓혀주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현지 시청자들에게 여러 나라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접할 기회를 늘려주면서 시장경쟁이 강화되는 요인이 된다. 실제로 베트남에서 유료방송 채널의 증가로 한류 방송콘텐츠에 대한 소비량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동시에 베트남 시청자들에게 중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 아시아권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의 다양한 콘텐츠에 대한 시청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중국드라마는 한국드라마보다 낮은 가격으로 베트남 시장에 확산되고 있다. 한국 드라마와 유사한 스토리라인을 가진 태국 드라마는 동남아 지역의 중화 문화권 국가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장기적 차원에서 한국 프로그램에 대한 탄력적인 가격 정책이 필요하다. 동남아시아는 오프라인 유통에 이어 향후 온라인 유통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 있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넷째, 방송 콘텐츠 장르 다양화가 필요하다. 과거 한류 드라마가 처음 동남아 지역에 소개될 당시에는 전체 시청자층에게 신선함으로 어필하면서 인기를 끌었으나 지금은 여성층이나 젊은 층을 제외한 일반 시청자층에 대한 인기가 사그라지고 있다. 지상파방송에서 한국 드라마를 편성하는 경우도 점차 드물어지고 있다. 특히 한국 드라마는 서로 유사한 포맷과 정형화된 줄거리로 인해 동남아 시청자들이 흥미를 잃어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수출하는 방송 콘텐츠의 장르를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 최근 인도네시아서는 한국 방송 콘텐츠의 인기가 드라마 위주에서 예능이나 K-POP 아이돌 가수들이 참여하는 음악, 버라이어티 쇼 등으로 넓혀지고 있다. 태국에서도 최근 교양 콘텐츠를 강화하고, 예능이 접목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으며, 심층 시사 프로그램의 비중을 정책적으로 높이고 있다. 이러한 취향 변화를 고려해 한류 콘텐츠 수출의 장르 다변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드라마나 예능과 같은 인기가 검증된 장르뿐만 아니라 그간 소외됐던 다큐멘터리나 교육열 상승을 고려한 교육 콘텐츠로 진출 분야를 확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다섯째, 콘텐츠별 타깃 이용자를 명확하게 설정해야 한다. 시청자의 가처분소득에 따라 한류 프로그램의 수용성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는 섬으로 이뤄진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유·무료의 위성방송이 잘 발달해있지만, 시청자의 소득에 따라 방송 수익이 크게 다르게 나타난다. 고소득층은 해외 유명 채널이 제공하는 외국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가 높아 유료방송의 프리미엄 방송 콘텐츠 패키지를 이용하지만 일반 서민들은 여전히 지상파를 통해 TV를 시청한다. 인도네시아 상류층은 초창기 한류에서부터 지금까지 한류를 수용하는 데 매우 적극적이다. 이들 대상으로는 B2B 방식으로 현지의 사업자들과 제휴해 한국의 인기 있는 최신의 콘텐츠를 유료로 제공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 베트남의 경우 도시 거주자는 케이블TV 가입자가 많지만, 도시 이외의 지역에서는 무료 위성이나 지상파에 의존한다. 이러한 현지 상황을 고려해 수출할 프로그램의 타깃 시청자층을 명확히 설정해 유료방송의 채널 패키지를 통해 유통할지, 지상파TV 채널을 통해 유통할지를 사전에 고려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여섯째, 동남아 현지에 진출해있는 한국 사업자들과의 협업이 필요하다. 한국의 중소 방송사업자들이 동남아 지역에서 직접 프로그램 수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현지 상황을 잘 알고 있는 현지 진출 한국 사업자와의 협업이 필요하다. 이미 동남아 각국에 진출해 있는 사업자들이 한국의 방송 콘텐츠 사업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콘텐츠를 현지화하거나 현지 실정에 맞게 판매하고 그 수익을 한국의 방송 콘텐츠 사업자들과 나누는 방식이 적합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현지 진출 사업자들이 현지 시청자의 프로그램 소비 성향뿐만 아니라 시장 상황, 규제 제도 등에 대한 이해가 높다는 점을 고려할 때 프로그램 직접 거래에 따르는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뉴미디어 플랫폼을 활용한 콘텐츠 유통 전략 개발이 필요하다. 한국 방송 콘텐츠의 유통 확대를 위해서는 지상파TV를 통한 진출 노력과 더불어 다양한 콘텐츠 플랫폼을 활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동남아 지역에서 확대되고 있는 광대역 유무선 통신망 구축, OTT 시청에 필요한 스마트 단말기의 보급, 통신 사업자들의 방송 콘텐츠 사업 진출 의지나 정부의 법, 정책적인 지원 등을 고려해 볼 때 전통 방송 플랫폼 이외의 다양한 콘텐츠 플랫폼이 활성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동남아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기존의 방송망보다는 모바일통신망의 급속한 발전이 예상되는 지역이다. 미국의 시장 조사 업체 Strategy Analytics의 조사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스마트폰 시장은 2020년까지 연간 판매량 5,350만 대로 성장해 세계 5위 시장이 될 전망이다. 베트남 역시 연간 2,560만 대 규모로 성장해 한국·이탈리아 등을 제치고 세계 14위 수준으로 커질 것으로 추산된다. 스마트폰 업체 애플이 최근 동남아시아에 직접 진출을 위한 현지법인을 설립하는 등 판매 경쟁이 강화되면서 동남아가 향후 스마트폰 시장이 급성장할 지역으로 꼽힌다.

그러나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도 있다. 유무선 통신망의 발전과 IPTV의 등장은 OTT를 비롯한 새로운 콘텐츠 유통 서비스의 발전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동남아 지역의 젊은 층들이 한국 프로그램을 인터넷 다운로드를 통해 무료로 시청하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동남아 지역에서 일상화된 무료 인터넷 다운로드를 통한 한류 프로그램의 유통은 경제적으로 한국 드라마 공급업자와 수출업자에게 이익을 안겨주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해당 국가의 저작권 보호는 매우 미흡한 실정이다. 이런 현지 상황을 고려할 때 온라인 유통 플랫폼을 통한 방송 콘텐츠 유통 전략은 매우 정교하게 그리고 장기적인 전략으로 수립돼야 한다.

다음호(222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