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수 한빛IT미디어연구소 연구원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용어가 있다. 1968년 12월 13일자 『사이언스』에 실렸던 하딘(G. J. Hardin)의 논문에서 처음 등장한 용어다. 이 논문에서 하딘은 ‘공유지의 비극’을 개인주의적 사리사욕이 결국 공동체 전체를 파국으로 몰고 간다는 개념으로 정의한다. 주로 경제분야에서 많이 쓰이는 단어인 셈이다. 하딘은 이에 대해 공유지의 비극을 적극적인 사례로 들며 이렇게 설명한다. 한 목초지가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다. 즉 그 목초지는 공유지이다. 소치는 사람들은 거기에서 저마다 가능한 한 많은 소를 키우려고 할 것이다. 공유지에 내재된 논리는 비극을 낳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소치는 사람들이 합리적인 사람들이라면, 최대한의 이익을 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기심이라는 지극히 심리학적인 요소와 경제학적이고 실증적인 현실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경우, 공유지의 비극은 빈번하게 벌어지는 일상의 ‘비극’이 된다.
공유지의 비극을 내포한 공유경제라는 개념은 미국의 법학자 로렌스 레식(Lawrence Lessig, 로런스 레시그) 교수가 2008년 지은 [리믹스]에서 등장했다. 로렌스 레식 교수는 경제를 상업경제와 공유경제로 나눴는데 그 경계가 아주 흥미롭다. 우선 상업경제는 단순하다. 돈과 노동, 수요와 공급에 따라 작동한다.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이 있으며,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다. 지극히 단순하고 논리적이다. 다만 공유경제에서 거래되는 물품이나 서비스는 누구의 것이 아니다. 소유주가 불분명하다. 그리고 돈만으로 작동하지도 않는다. 추상적인 경제의 개념을 통한 양극단의 분리는 패러다임적 요소를 가진다. 그리고 우리는 이 지점에서 상업경제와 공유경제의 차이점을 인식할 수 있다.
특히 상업경제의 경우 시공간을 파괴한 인터넷을 기반으로 창출되는 새로운 개념이기 때문에 더욱 타당성을 가진다. 당장 ‘아마존’을 보자. 아마존은 시장경제의 기반인 인터넷을 발판으로 엄청난 선공신화를 쓰고 있다. 물론 고객을 위한 세세한 배려와 확고한 서비스 마인드라는 양념이 있기는 하지만, 아마존은 상업경제의 틀안에서 작동하는 자본주의적 속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물론 ‘넷플릭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상업경제가 공유경제로 발돋음 하는 사례는 인터넷을 통해 무궁무진한 발전의 비전을 내포한다. 즉, 일차적인 심리학+경제학의 원리에서 상업경제가 파생된다면, 이를 인터넷으로 환치했을 경우 더 고차원적인 공유경제의 비전이 창출된다는 뜻이다.
단적인 사례가 바로 ‘위키디피아’다. 위키피디아는 인터넷 이용자가 만드는 백과사전이며 글, 문단, 문장, 단어, 토씨마다 쓴 사람이 다르다. 누군가 이미 쓴 글을 지우고 고치는 과정에서 위키피디아는 브리태니커 못지 않은 방대한 지식을 쌓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위키피디아는 빅데이터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지며 많은 정보를 내포하고 스스로 확장해 간다. 이용자가 글자 수만큼 자기 소유권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돈을 받으려고 참여한 것도 아니다. 자발적인 공유지의 확장. 그리고 내부에서 파생되는 엄청난 데이터. 이것이 상업경제에서 벗어난 공유경제의 핵심이다.
지금 세계 방송시장은 합종연횡중이다. MWC 2014에서 망 사업자와 OTT 사업자가 사이좋게 등장해 기조연설을 주고 받는 장면은 단적인 사례다. 게다가 인터넷은 시공간을 파괴하는, 혹은 파괴할 결정적인 단서다. 우리는 이러한 단서의 확장성을 가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며, 이러한 패러다임은 당연히 방송시장에도 대입된다. 만약 공유경제를 인지하지 못하고 전통적인 미디어 플랫폼의 시대에 잔류한다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 알고 있다. 넷플릭스가 DVD 대여에서 인터넷 방송 사업자로 전업한 사례를 살펴보면 간단하다. 방송 서비스는 다른 서비스보다 추상적인 속성을 가지며, 전파와 IP망, 그 외 눈에 보이지 않는 수단을 바탕으로 시공간을 파괴한다. 그렇기 때문에 방송 사업자는, 특히 뉴미디어 플랫폼을 선도하려는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은 공유경제의 개념에 바탕을 둔 시장전략이 절실하다.
오픈함으로써 이득을 얻는것은 헛된 망상이 아니다. 모든 것을 공유하며 내적인 데이터를 쌓아가는 국내 토종 포털 사이트 ‘네이버’가 될 것인가. 아니면 확장성을 바탕으로 정보의 바다로 인도하는 ‘구글’이 될 것인가. 방송 사업자들이 반드시 유념해야 하는 선택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