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 몰래 카메라 시대: TV 뉴스 자료 영상 이대로 좋은가?

[기고]전국민 몰래 카메라 시대: TV 뉴스 자료 영상 이대로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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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구 교수

저널리즘이라는 용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뉴스라는 정보 전달 양식은 인쇄매체에서 출발했다. 미국의 초기 라디오 뉴스는 신문 기사를 그대로 읽어주는 것이 서비스의 전부였다. 하지만 TV가 등장하면서 방송은 인쇄 매체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저널리즘 양식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영상을 통해 구현된 TV뉴스의 현장성은 신문의 문자와 사진이 전달하지 못하는 생생한 느낌을 그대로 시청자들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언제나 자료 영상 확보는 TV 뉴스 제작의 가장 큰 골치 덩어리였다. 신문  보다 많은 인력과 장비를 필요로 한 것은 물론, 자료 영상 확보 여부가 TV뉴스 가치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돼버린 것이다. 그리고 속보성과 함께 현장성은 신문과 경쟁에서 TV 뉴스가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그리고 IT 기술의 발전은 TV 뉴스 자료영상 확보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휴대용 디지털 카메라, 스마트 폰 등으로 개인이 촬영한 영상은 물론 감시카메라, 차량용 블랙박스 등을 통해 자동으로 촬영된 영상도 TV 뉴스의 자료 영상이 되고 있다. 설령 사건 현장에 카메라 기자가 없더라도 뉴스의 자료 영상을 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과거보다 훨씬 더 높아졌다. IT 기술의 발전으로 오랜 기간 동안 TV 뉴스를 옥죄고 있던 제약성이 엷어진 것이다.

IT기술 발전으로 뉴스 자료 영상 확보가 용이해진 것은 방송사의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겠지만, 과연 사회전체의 관점에서 긍정적인 것인지는 좀 더 냉철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하지만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감시사회에 대한 무감각의 확산이다. 우리는 이미 고도 감시사회에 살고 있다. 개인들의 일상생활이 촬영되고, 기록되며, 데이터 베이스에 저장된다. 가히 전 국민 몰래 카메라 시대에 살고 있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감시카메라나 차량용 블랙박스는 단기적으로는 범죄 예방이나 교통사고 등 개인들 간의 갈등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인권의 최후 보루인 사생활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을 가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공신력 있는 TV 뉴스를 통해 이러한 영상이 공개되면서, 감시사회에 대한 일말의 경계심마저 허물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시민 스스로 더 많은 감시 카메라를 요구할 것이고, 사생활의 위협 수준이 더 높아질 것이다.

개인들이 스마트 폰이나 디지털 카메라 등으로 촬영한 영상물의 뉴스 공개도 따지고 보면 많은 부정적 요소들을 내포한다. 개인들은 사회적 문제를 고발하기 위해 영상물을 촬영하고, 방송사에 제보한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사실은 이 과정에서 시민 개개인이 서로 감시자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시민들 서로 감시한다면 사회가 더 투명해지고, 공정해지며, 살기 좋아질까? 하지만 반드시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서로 감시자가 되는 사회에서 사회에 대한 신뢰, 친밀감, 관용과 같은 가치가 성장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부정적이다.

최근 TV 뉴스를 보면 OOO 단독 등을 내세운 자료 영상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방송사들 간에 자료 영상 구하기 경쟁이 가열되고 있으며, 구해진 자료 영상은 특종(?)의 보증 수표다. 자료 화면의 확보로 해당 기사의 뉴스 가치가 부풀려지기 쉬우며, 범죄 묘사나 잔혹한 장면이 그대로 담긴 영상물도 전파를 탄다.
이 같은 현상은 어쩌면 영상물을 통해 현장성을 강조하는 TV 저널리즘의 태생적 한계로부터 비롯된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 할지라도 방송사들은 현재 상황에 대해 스스로 지금보다 훨씬 더 엄격하고 냉정하게 대응해야 한다. 꼭 필요한 자료 영상인지? 적합한 뉴스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지? 개인들의 사생활 침해 우려는 없는지? 등의 여부에 대해 뉴스 제작진들은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수립해야 한다.
방송은 공공성의 최후 보루이다. 어떤 현상을 공개할 것인지, 말 것인지 그리고 어떠한 형태로 공개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모두 언론 특히 방송의 몫이다. 방송에 부여된 윤리는 이 과정에서 우리사회가 보호하고 지켜나가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편견 없이 고민하는 것이다.

언론자유와 사생활보호는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는 가치이다. 사생활이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언론자유는 꽃필 수 없다. 언론자유의 주체로서 방송도 마찬가지다. TV 뉴스의 생생한 자료 화면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전 국민 몰래 카메라 상황을 더욱 부채질해서는 안 된다. 감시사회에 맞서는 편이 방송의 본래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