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공정성 심의의 ‘여전한’ 불공정성 시비

[기고]’이른바’ 공정성 심의의 ‘여전한’ 불공정성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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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콩 밭에서 콩 나고 수수는 수수밭에서 익는다. 해가 바뀌고 조직 구성원의 기수가 변해도 유사한 결과물이 쏟아진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이른바’ 공정성 심의 방식과 제재조치 결정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난 7일 MBC 라디오 ‘박혜진이 만난 사람’에 대해 법정 제재인 ‘주의’ 조치를 결정했다. 이 결과는 전체회의 결과 ‘이른바’ 6대 3으로 제재가 의결됐다고 한다. 무슨 내용 이었을까.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교사들은 일제고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해임되었다가 대법원 판결에 의해 복직된 사람들 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프로그램 진행과정에서 라디오에 출연한 교사가 ‘일제고사를 무작정 거부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자 진행자가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준 것 아니냐’고 되물었던 것이 심의제재를 받게 된  부분이었다. 심의위원회는 이와 같은 발언과 호응이 심의규정 9조의 공정성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비슷한 예는 또 있다. 유성기업 노조파업 문제를 다룬 MBC와 KBS 경제 관련 프로그램도 심의규정 14조 객관성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법정 외 제재인 ‘권고’ 결정된 것이다.

올 상반기에 법정제재를 받은 지상파방송 보도교양프로그램은 모두 12건으로 작년에 비해 3배나 늘었다. 여기엔 천안함 사건을 다룬 KBS의 ‘추적 60분’이 공정성과 객관성을 위반했다며 ‘경고’ 조치를 받은 것도 포함된다.
2008년 5월 출범 이후 심의위원회는 공정성 위반 등을 이유로 여러 건의 방송프로그램에 대해 ‘법정 제재’ 조치를 의결했는데 그 때마다 오히려 심의결정의 ‘불공정성’ 시비가 폭증하곤 했다. 그동안 심의위원회는 방송진행자들이 검정 옷을 입거나 검은색 넥타이를 매고 방송을 진행한 것에 대해 품위를 잃었다며 시청자들에게 사과하라고 결정하기도 했으며 인터뷰 도중 기자가 인터뷰이의 발언에 고개를 끄덕거리거나 마음이 아프다는 식의 발언까지도 심의제재의 대상으로 삼은 적도 있었다. 이런 상황을 볼 때 이제는 방심위의 법적인 성격과 심의의 대상, 심의의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을 경우 불공정성 시비를 원천 차단할 뾰족한 방법은 없어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의 방송심의 제재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가 연계 작동하는 이원적 구조이다. 심의위원회가 제재의 수준을 결정해 방통위원회에 통보하면 위원회가 즉시 처분명령을 내리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행정처분권을 갖고 있지 않고 법령에 ‘독립적’이라고 규정돼 있기 때문에, 더욱이 심의위원들은 모두 민간인 중에서 위촉하기 때문에 심의위원회가 행정기관이 아니라는 엉뚱한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다수의 학자들은 물론 헌법재판소와 법원, 국가인권위원회 등은 방통심위위원회가 행정기구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더욱이 심의위원회의 제재결정은 권고적인 성격을 벗어나 행정처분이라는 점도 확실하게 하고 있다. 이에 머쓱해진 심의위원회는 작년 가을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문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 심의위원회의 행정 기관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당시 국가인권위원회는 통신부문의 심의를 담당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헌법이 금지하는 검열기구라고 못 박고 통신심의를 민간기구에 이관하라고 권고한 부분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한편 심의위원회의 위원 9명은 대통령이 위촉한다. 국회의장이 3인을 추전하고 국회 상임위원회가 3인을 추천한다. 전문가들은 여소야대, 혹은 여대야소의 정치지형에 따라 심의위원회의 의결 양상은 7대2, 혹은 5대4 구조를 갖출 수 있는데 보통은 6대3의 결과를 도출한다고 예견하였다. 공정성 심의와 관련돼 그동안 대체로 비슷한 결과를 낳았다. 물론 사안에 따라 5대0, 혹은 6대0 결론이 내려질 수 있다. 야당의 추천을 받아 위촉된 위원들이 심의결정의 불공정성을 거론하며 회의장에서 퇴장해 버릴 때이다. 프로그램의 상업성과 폭력성 등을 이유로 심의결정을 할 때 잘 드러나지 않은 ‘6대3’ 의결은 사안이 정치적인 쟁점, 노·사 분쟁, 사회경제적 소수자의 표현과 관련될 경우 가차 없이 반복된다. 방통심의위원회가 정치심의, 청부심의, 방아쇠심의 조직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부 급진적인 학자들은 심의위원회의 해체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업무를 민간에 이관하라고 권고하였고 법원은 심의위원회가 행정기구라고 판단하였다. 여기에 시민사회는 심의위원회의 정치적 심의와 청부 심의를 지속적으로 비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몇 달 후 뉴스 전달기능을 가진 4개의 종합편성채널사업자가 방송시장에 진입한다. 모두 정파성 강한 뉴스보도를 공급해 우리나라의 여론시장을 주도해 온 신문사업자들이다. 프로그램의 내용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기존의 심의체제가 유지되는 한 방송의 불공정성을 이유로 한 심의제재와 갈등은 더욱 심화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방송심의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 반대할 이유는 없다. 폭력과 선정, 극단적 상업적 정보로부터 어린이와 청소년, 시민을 보호할 책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적 사안이나 공정성 및 객관성 시비 등과 관련된 심의는 자율적 영역으로 이관하고 폭력과 선정, 상업적 정보의 심의에 국한해 법정 심의위원회의 역할을 재조정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언론중재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 점을 활용하여 방송프로그램의 내용이 충실하지 못하거나 허위라고 여겨질 때 언론중재법상의 반론권과 정정보도청구권, 혹은 명예훼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정성과 객관성, 품위 위반 등을 이유로 행정기구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법정 제재를 반복하고 이에 위축받은 방송이 보도할 가치가 있는 사회적 쟁점들에 대해 침묵해 버린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토대를 야금야금 갉아먹는 공범의 대열에 참여하는 것이리라.

비록 우여곡절 끝에 방송되긴 했지만 방송사 내부의 심의 절차를 적절하게 통과한 4대강 관련 시사보도 프로그램들이 방영직전 경영진의 결정에 의해 결방된 사례들이 있다. 법정 심의 시비를 불러 왔다는 이유로 경영진이 제작진들을 인사조치 했다는 비판도 계속되고 있다. 보도교양 프로그램들에 대한 정치적 심의 시비가 꼭 법정기구에 의해 촉발된 것만은 아니라는 방증이다. 방송심의에 대한 내적 경계가 더더욱 필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