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수 서울여자대학교 언론영상학부 교수
인텔 CEO 폴 오텔리니는 2010년에 한 연설에서 “휴대폰이 스마트폰으로 진화하듯 TV도 스마트TV로 진화하고 있다. 앞으로 모든 가전이 인터넷에 연결되고, 모든 콘텐츠가 TV로 들어올 것이다”라고 하였다. 사사키 도시나오는 그의 저술 <신문 텔레비전의 소멸>에서 “차세대 STB를 쥔 기업이 틀림없이 텔레비전이라는 미디어의 최강 플랫폼이 된다. 이 플랫폼이 나타나면 종래의 방송국은 컨테이너로서의 역할을 상실하여 플랫폼에서 내려서게 된다”고 전망했다. 텔레비전에 대한 이러한 전망에 몇 년 앞서 구글이 유튜브를 인수한 직후인 2007년에 빈트 서프 구글 부사장은 “전통적인 개념의 TV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외주제도도 이러한 미디어 환경변화에 직면하여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는 플랫폼 파워의 위축뿐 아니라, 콘텐츠 지배력 약화도 동시에 직면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의 플랫폼 파워의 위축은 무엇보다도 미디어 이용행태 변화로부터 시작하였다. 닐슨 코리아의 최근 자료를 참고하면, 스마트폰 도입 이후 텔레비전과 PC의 이용이 다른 미디어에 비해서 급감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빈트 서프의 말처럼, 온라인 및 모바일 플랫폼의 발전으로 다양한 형태의 텔레비전이 가능해졌고, 텔레비전의 개념조차 변화하였다. 또한, 최근 몇몇 PP채널은 시청률에서 지상파방송의 프로그램을 능가하기도 했고, 종편PP도 지상파 방송사의 잠재적 경쟁자로 인식되는 등 지상파 방송사의 경쟁자는 크게 증가했다.
거기다가, 전체광고시장과 방송광고 시장에서 지상파방송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작년 11월말부터 시작되어 케이블방송의 디지털지상파방송 재송신 완전중단 사태까지 갔던 케이블방송과 지상파방송의 채널사용료 분쟁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케이블방송의 플랫폼 파워와 지상파 방송사의 콘텐츠 파워 간의 충돌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지상파 방송사가 콘텐츠 파워는 유지하고 있는가? 이 점에 대해서 지상파 방송사의 콘텐츠 지배력의 점차적인 약화라고 보는 견해와 N스크린 시대에 지상파 콘텐츠 파워가 강화될 것으로 보는 견해가 양립하고 있다. 전자는 최근의 빈번한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간의 저작권 귀속 논쟁, 제작주체의 다원화, 콘텐츠 유형과 수의 폭발적 증가로 인한 경쟁심화 등을 근거로 들고 있다. 반면, 후자는 지상파 방송사는 킬러 콘텐츠를 통한 디바이스와 플랫폼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할 것이고, 인터넷 콘텐츠와 방송 콘텐츠의 크로스 디바이스 통합(cross-device integration)을 통해서 콘텐츠의 가치를 상승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외주제도 논쟁에서 다소의 변화가 있었는데, 방송사와 제작사의 갈등에서 연기자 노조가 제기한 외주제작사의 미지급 출연료 문제, 제작 스텝들의 작업여건 악화 등의 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연기자와 제작 스텝들은 지상파 방송사를 상대로 문제를 제기했고, 지상파 방송사는 이 문제의 책임이 일부 부도덕한 제작사에 있으며, 보다 근본적으로는 외주제도에 있다고 보았고, 제작사는 문제의 근본적 책임이 방송사에 있다고 보았다. 쟁점이 좀 확대되기는 했지만, 외주제도 논쟁의 본질적인 면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지상파 방송사는 외주제도가 지상파 제작여건을 악화시키고 수익성을 제한하는 여러 가지 비대칭적 규제들 중 하나로 보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며, 그 결과로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반대의 입장은 외주제도는 제작주체의 다원화로 다플랫폼 환경에 대한 대응이며, 합리적 거래관행을 정착시킴으로써 콘텐츠 상품화와 사업화에 보다 강한 동기를 가진 생산주체가 등장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미디어 환경이 급속히 바뀌고 있는데, 이해관계 혹은 방송콘텐츠 시장에 대한 철학에 따라 외주제작 환경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입장의 차이는 크다. 과거와는 달리, 방송사, 제작사 외에 연기자, 제작 스텝 등 다양한 주체들의 입장도 드러나고 있다. 저작권, 표준계약서, 제작환경, 간접광고, 협찬 등 사안에 따라서도 입장이 다 다르다. 이럴 때일수록 문제를 통합적으로 바라보고 기본적인 원칙을 준수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최근의 스마트 미디어 환경에서는 미디어 산업의 모든 플레이어들이 기술, 서비스 등에서 수직수평적 협력관계를 통해서 변화에 대응해야만 생존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고립적이고 폐쇄적인 생존전략은 기업의 체질을 약화시켜 기업의 도태를 자초하게 된다. 둘째, 지상파 방송사는 N스크린 전략을 통해서 플랫폼 영향력을 회복하는 전략을 모색하는 등 새로운 미디어 방식에 대한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지상파 방송사는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자사의 권리를 지키려는 소극적인 수성(守成) 전략으로는 플랫폼과 콘텐츠 영역 모두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 셋째, 방송뿐 아니라 사회전반이 다원화되고 있고 합리화되고 있는 가운데, 방송사와 제작사간의 불합리적 거래관행이 있다면 척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외주제작 인정기준의 마련 및 공정한 시행이 요구되며, 그렇게 정착된 거래관행이 제작사와 종편채널의 거래 기준에도 광범위하게 참고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넷째, 다양한 플랫폼과 디바이스에 적절한 다양한 규모와 형태의 콘텐츠가 필요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규모와 형태의 제작사 및 유통사가 건실한 기업으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 미디어 생태계가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관련 플레이어들의 서로 다른 역할에 대해서 상호 인정하고 협업적 관계를 만들어냄으로써, 새해는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방송 콘텐츠 외주관련 상황들을 풀어내는 실마리를 잡는 한 해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