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수, 그것이 알고 싶다

[칼럼] 펭수, 그것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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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박성환 EBS 정보보호단 단장] 홍당무 씨는 늘 치느님을 영접하면서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던 30대 중반 직장인이다. 배달의 민족 치믈리에 자격시험에 응시하여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았으며, 자신만의 치킨 로드를 전파하고 다닐 정도로 나름 치킨 덕후임을 자처하는 싱글 남자이다. 적어도 치킨 동호회 후배가 카카오톡 펭모티콘으로 펭수의 존재를 알리기 전까지는 오로지 치킨에 빠져있었다. 그러던 그가 ‘홍당무가 달라졌어요’ 증상을 보인다. 그는 지금 ‘펭수 앓이’ 중이다.

펭수? 어디서 이런 귀여운 동물이 와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폭풍 검색해보니 펭수는 2019년 올해를 빛낸 인물 방송·연예 분야에서 1위에 올랐단다. 제야의 종 타종식에도 초대되었다. 방송·연예 분야라면 당연히 세계적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1등 아닌가? 라는 의문이 든다. 도대체 누가 투표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냐고? 취업포털인 인크루트가 성인 남녀 2333명을 대상으로 ‘2019 올해의 인물’을 조사한 결과라고 하니 취준생들이 좋아하는 캐릭터인가? 가수 송가인이 2위, 방탄소년단이 3위에 오른 것을 보니 꼭 취준생 스타일만은 아닌 것 같다. ‘펭수’는 ‘누구시길래 이렇게’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EBS 밀착 취재 ‘펭수가 알고 싶다’를 통해서 의문을 풀어봤다. 취재진의 24시간 추적과 잠복근무에도 그의 정체는 알 길이 없다. 취재진은 돌직구 질문으로 그를 시험해 본다. 질문 1. “펭수는 펭귄이 맞습니까?” 이에 펭수는 남극 유치원 졸업 사진과 가족사진을 증거로 제시한다. 가족과 닮지 않아 보이는 것은 자신이 특별한 펭귄이기 때문이란다. 못 믿겠으면 엑스레이 촬영이라도 하라고 한다. 질문 2. “의사 선생님! 펭귄 맞나요?” 그래서 동물병원을 찾아갔다. 엑스레이를 살펴본 수의사는 개의 뼈도 사람의 뼈도 아닌 펭귄의 뼈 구조와 일치한다는 것을 알아낸다. 그래서 결론은 “펭수는 펭귄이 맞습니다.” 이 영상에 동의하는 즐거운 댓글이 이어지고, 영상을 퍼 나른다. “엑스레이는 조작이 안 되니 펭귄이 맞음”, “우리 집 5살 꼬맹이가 사람이 들어가 있는 것 같다고 자꾸 의문을 제기하기에 이 영상을 보여줬더니 진짜 펭귄으로 믿네요. 펭랑해~”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하나같이 펭수를 지켜주고 그냥 펭수로 존재하기를 응원하고 있다. 그렇다면 직장인들이 펭수에 열광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펭수는 거침없는 ‘사이다’ 발언을 통해 직장인들에게 대리만족을 준다. 그래서 ‘직통령(직장인들의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얻었나 보다. 편견 없는 솔직함에서 나오는 말이다. 펭수의 말과 행동은 기존 방송의 제도권 틀을 따르지 않는다. 1인 미디어의 자유 형식이다. 그러면서도 짜임새 있는 리얼리티를 보여준다. 나아가 펭수의 어록은 많은 사람에게 위안을 준다. “자신감은 자신에게 있어요. 그걸 아직 발견 못 하신 거예요. 거울 보고 ‘난 할 수 있다, 난 멋진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자신을 믿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해요.”, “세상에 친구는 많고 지구는 넓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 등 펭수의 명언을 들으면 10살 캐릭터로 믿어지지 않는 인간애가 묻어난다. 강한 자에 대한 약한 모습도 없다. 나이가 많건 적건 그저 똑같은 사람이고, 펭수는 그냥 펭수라고 주장하며 보통 사람들의 자존감을 높여준다.

다음은 캐릭터이다. 어디에도 집중하지 않는 시선과 표정이기에 오히려 부담이 없다. 뽀로로가 어린이의 귀여움을 가졌다면, 펭수는 거대한 몸인데도 귀여움을 풍긴다. ‘친근한 몸짓’과 언행 때문이다. 동물 캐릭터는 먼저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도 있다. 일방향으로 내가 좋아할 만큼 좋아하면 그만인 것이다. 애초에 캐릭터로부터 사랑을 돌려받을 생각도 없다. 그런데도 실제로는 팬에게 기쁨을 주니 더 좋아할 수밖에. 이런 점은 특정 연예인, 스포츠맨을 동경하여 팬이 되었다가 인간사의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배신당한 이들에게도 안심이다. 그래서 사람을 좋아하다가 상처받고 두려워하는 젊은 청춘들에게 마음의 안식처가 된다. 더불어 1인 가구의 증가와 개인화된 방송 시청 환경으로 주변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으니 더욱 좋다. ‘어쩌다 어른’이 된 이들이 가진 ‘나잇값’에 대한 부담도, 결정 장애로 내몰리는 자신의 부족함도 들킬 일이 없어서 더욱 좋다.

펭수는 우리에게 슬쩍 꿈에 대한 도전 의식도 던져준다. “한국에 뽀로로라는 펭귄이 있다는 소식과 BTS를 보고 스타가 되려고 남극에서 한국으로 혼자 왔다”는 모험정신을 보여준다. EBS 연습생 신분, 10살 어린이 펭귄인데 210센티미터 큰 키로 놀림 받을 것 같지만, 생긴 대로 눈치 볼 것 없이 할 말은 한다. 일상에 지치고 힘든 젊은이들이 펭수 영상을 보고 쓴 댓글이 우리 마음을 짠~하게 한다. “엄마 돌아가신 지 일주일 됐는데, 울 펭수도 엄마 생각하면서 힘들어하는 영상 보면서 많이 울었어. 요즘 너무 지치고 우울한데 펭수 네가 넘 큰 힘이 되어주고 있어! 항상 고맙고 울 펭수 참치 길만 걸었으면 좋겠어!”, 이어 펭수의 응원 댓글이 용기를 준다. “펭수가 꼭 안아주고 싶어여♥ 앞으로도 웃음과 힘이 될게여🐧 펭랑해!” 다른 시청자도 감동을 안고 펭수가 엄마를 그리워하는 영상을 찾아보며 릴레이를 이어간다. 이렇게 펭수의 남극 에피소드를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구독과 좋아요, 수백만 조회 수로 펭수는 오늘도 즐겁다. 지상파 방송사의 수익 모델로 쭉 성장해주길 기대한다. 펭-하!(펭수 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