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타파

[칼럼] 밀실타파

464

[방송기술저널=오건식 SBS 뉴미디어개발팀 부국장] 며칠 전 조디 포스터 주연의 2002년 작 ‘Panic Room’이란 영화를 보았다. 집에 3인조 강도가 들어오자 엄마인 조디 포스터와 당뇨병을 앓는 어린 딸이 집 안에서 가장 안전한 밀실(Panic Room)에 들어가서 강도와 생존 게임을 하는 내용이다. 영화의 밀실에서는 집 안 곳곳의 CCTV를 통해서 강도들의 움직임을 알 수 있지만, 강도들은 두 모녀의 움직임을 알 수가 없다. 일종의 정보 비대칭이 생기고, 영화의 전반부에는 두 모녀가 훨씬 유리한 환경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에는 두 모녀가 밀실에만 머무를 수 없는 요소들을 여럿 배치해 긴장감이 높아지게 된다.

정상적인 정권 교체의 경우 ‘정권 인수위원회’란 것을 통해서 새 정부의 Infra를 만들게 된다. 지난 정부(아직은 현 정부)도 인수위를 통해 정부 조직을 바꾸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근 ‘보안’이다. 아무래도 계획이 미리 알려져서 김새면 새 정부 입장에서는 폼도 안 나고, 해당 부처에서는 행정 공백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일들은 대부분 밀실에서 야전침대 들여다 놓고 작업을 한다. 이렇게 밀실에서 작업을 하다 보면 영화에서처럼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보안을 제1덕목으로 삼아서 해야 할 일들이 분명히 있다. 가령 화폐 개혁이나 금융실명제 같은 경우 보안이 중요한 것은 확실하다. 이러한 사안은 정보의 비대칭이 부의 불법적인 쏠림을 낳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정교과서를 집필하는 데 그 무슨 철통 보안이 필요했을까? 국정교과서 내용 때문에 투자에 실패한 사람이 나올까 봐? 고구려 시대에 만주에 땅을 못 사놓은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될까 봐? 어느 날 갑자기 해경을 해체했다. 해경을 해체한다고 해서, 갑자기 수영 못하는 해경들이 수영을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혹시 ‘내가 새로 소속될 부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수영을 못하는 해경인 내가 갑자기 수영을 잘하게 됐다’던지 ‘나의 수영 실력의 8할은 내가 몸담고 있는 새로운 부처의 이름 때문이다’라면 또 모를까.

방송사에 직접 영향을 미친 결과물 중의 하나는 ‘미래부의 탄생’과 ‘과기부의 해체’였다. 미래부는 주로 정보통신 관련 업무를 하면서 순수 과학의 영역인 과기부 업무도 하도록 했다. 그래서인지 직업 공무원의 꽃이라는 차관직도 미래부는 대부분 ICT 분야의 인사로 채워왔다. 그러면서도 주로 순수 과학 분야의 최고봉에 수여하는 노벨상을 탐한다. 일본은 겁나 잘되는데 우리는 왜 안 되지 라고 하면서. 필자는 현재 Applied Science나 Engineering 영역의 일을 하지만, 한때는 슈뢰딩거나 파인만이란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조금이라도 순수 과학을 지향했던 사람으로서, 과기부가 속절없이 미래부에 통합되는 것을 보고는 헤어진 옛 애인이 어려움을 겪는 현실을 알게 된 사람처럼 가슴이 아렸었다. 레알. 구멍가게라면 계절이나 시류에 따라 잘 팔리는 물건을 중심으로 ‘몰빵’을 해도 좋지만, 정부 정도의 조직이라면 순수와 응용과학의 비중을 적절히 조정하는 기능이 필수적이다. <미운 우리 새끼>에서 혼자 사는 자식이 정말로 미운 것은 아니다. 제목처럼 진짜 미워서라면 자식놈을 블랙리스트에 넣어서 의절을 하는 것이 맞다. 국민이 정부에 바라는 것은 지원 그 자체보다 관심일 것이다. 최소한 관심이 있는 척이라도. 한류의 인기가 시들해진 이유가 과연 온전히 사드 때문뿐일까? 교통이 아무리 불편한 곳에 있어도 맛집은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처럼 재미있고 유익한 콘텐츠는 무한한 생명력을 가진다. 더욱이 교통 불편한 맛집 주위로 도로가 새로 생기듯이 콘텐츠 유통 경로는 갈수록 훨씬 다양해지고 있다.

주위에서는 2013년 이후 콘텐츠 진흥의 소관 부처가 방통위, 미래부, 문체부로 나뉘어서 유기적인 추진이 어려웠다고들 한다. 융합시대에 걸맞게 C-P-N-D 사슬을 통합적으로 관리해야 하는데, 오히려 칸막이를 쳐서 시대를 선도하는 콘텐츠 포맷의 출현을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요즘 SNS에서 청소년들에게 인기 있는 ‘전짝시(전지적 짝사랑 시점)’ 같은 포맷을 상상이나 했을 것 같지 않다. 밀실에서 작업을 하다 보면 형식적으로 칼로 무 베듯 정리한 것이 넘나 폼나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콘텐츠 진흥은 과학에 비유하자면 물리가 아니라 화학에 가깝다. 반응의 과정과 결과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다음 정부는 ‘정권 인수위원회’란 것을 꾸릴 시간적 여유도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어쩌면 효율성이라는 명목 아래 더욱 밀실에서 기획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 나오는 문구처럼 밀실은 점점 더 푸짐해지고 광장은 죽어갈 수 있다. 더 이상 ‘죽어가는 광장’이 되지 않게 하려면 기본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밀실을 타파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동안 비선에 데일 만큼 데이지 않았는가? 더 이상 ‘코너링 연습’이 필요 없는 사회를 위해~

댓글 없음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