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전성시대

[칼럼] 동영상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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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오건식 前 SBS 국장] 며칠 전 옛날 비디오테이프를 볼까 하고 먼지 덮인 VCR을 꺼내서 청소를 하고 연결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사를 하면서 이전의 아날로그 AV 케이블을 다 버리고 와서 연결에 실패했다. 3가닥 AV 케이블을 구하러 대형마트에도 가보고 심지어 ‘다있소’에도 가보았는데 구입할 수가 없었다. 파는 것은 주로 휴대폰 혹은 IT 관련 케이블이거나 HDMI 케이블뿐이었다. 매장의 직원들에게 물으니 ‘아~ 옛날 사람’하는 표정으로 측은하게 쳐다보기까지 했다. 소위 RCA 케이블이라고 불리는 케이블을 구하려 몇 군데를배회회하다가 포기하고는 인터넷을 통해서만 어렵게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마주하게 됐다.

그렇다. 도태되는 미디어의 추락 속도는 실로 엄청나다. 이미 다이내믹 코리아에서는 사망진단을 받은 지 오래전이다. 얼마 전까지 사진관에 쓰여 있던 ‘VHS Tape를 CD로 변환합니다’라는 문구도 거의 보기가 힘들어졌다. 필자만 빼고 다들 변환해갔나 보다. TV 매장에 가보면 Full HD라는 용어도 이제는 찾아보기 어렵다. TV 시장은 4K UHD를 넘어서 8K UHD로 유인을 하고 있다. 하물며 4K UHDTV 방송 방식과 주파수 확보를 위해서 몸 바쳐 싸워온 대한민국 방송기술 엔지니어의 공적은 이미 VHS 방식처럼 잊힌 지 오래다. 항상 새로운 방송 방식 도입 이전에는 검토를 위해 날밤을 새우던 방송기술 엔지니어들의 노고가 있었다. 그때는 주 52시간 근무의 제약이 없었던 때였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원래 선지자는 자신의 고향에서 박해를 받는 법이고, 독립운동가는 해방 전에 순국을 하시는 경우가 허다했다. 방송기술 엔지니어들이 이육사님의 시 ‘광야’에 나오는 것처럼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렸기에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들’이 QLED가 좋다거나 OLED가 더 좋다고 하면서 UHDTV를 팔게 됐다고 생각한다. 물론 가끔은 배가 아픈 것도 사실이다. 차라리 씨를 뿌리지 말았으면 하고 생각하지만, 씨를 뿌린 결과로 얻어진 열매인 현재의 동영상 화질만큼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로 환상적이다. HDR까지 가미돼 두 방식의 우열을 가리기가 레알 까리하다. 철 지난 유행가 가사처럼 ‘O’자에 점 하나만 넣으면 ‘Q’가 되는 장난 같은 세상이다. 실제로 두 방식을 적용한 제품의 판매량도 비슷하다고 한다. 여기서 필자는 두 방식을 정밀 비교 분석할 준비가 돼 있음을 두 초인에게 알려드리는 바다. 꼭 필자의 비교 분석에 최신의 TV세트가 필요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1도도 아니다.

방송기술 엔지니어들이 적극 참여해서 만든 동영상 포맷이나 전송 방식에 비해 실제 콘텐츠는 우울한 경우가 많다. 최근 몇 건의 섹스 동영상 때문에 전국이 시끌법적하다. 그중 한 건은 공직자가 연루된 10년 전 것이고 다른 또 한 건은 아이돌 출신들이 연류된 비교적 최근의 것이다. 공직자가 연루된 동영상의 경우, 누구는 영상 속 인물이 그 공직자가 확실하다고 하는데, 누구는 영상이 흐릿해서 특정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고 한다. 역시 우리나라는 피의자의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좋은 나라다. 모 우유 회사 창업주 외손녀는 마약, 섹스 동영상 유포 등에 관련된 혐의를 받고 있다. 요즘 핫이슈가 돼 있는 강남의 클럽들도 당연히 활동 무이다. 이들에게서 공통점은 동영상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어떤 것보다 증거 능력이 뛰어난 동영상을 은폐하려는 시도가 이뤄진 점도 쌍둥이처럼 닮아있다. 사용된 폰을 초기화하거나 별그램으로 대표되는 SNS에 올린 사진이나 동영상을 삭제하는 행태를 보인다. 실제로 세월호의 경우에서 보면, 왜 로또보다 어려운 확률이 적용돼서 결정적 시점의 CCTV 동영상만 녹화가 안 돼 있는지 그저 의아할 따름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은폐하려는 자들도 ‘백문이 불여일견’임을 빠삭하게 알고 있는 것이다.

몇 해 전에 송출 사고가 자주 일어나자 주조정실의 스위처 부분만 녹화를 하는 CCTV를 설치하게 됐다. 물론 사고 원인을 밝히고, 유사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좋은 취지에서 출발한 것이다. 가히 동영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동영상 전성시대이다. 인권 보호를 위해 스위처 부분만 녹화한다고 하였지만, 해당 시간에 근무자가 누구인지를 아는 상황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근무자 이외 사람의 손이 CCTV 영상에 나온다면 그것 자체가 사고 아닌가? 그 결과로 송출 사고가 많이 줄었는지 궁금하다. 이러한 상황을 초월해서 그저 기차는 달린다는 기분으로 묵묵하게 업무를 하고 있는 방송기술 엔지니어들에게 격하게 응원을 보낸다. CCTV가 우리의 Spirit까지 녹화는 못할 것이고, 선지자는 원래 외로운 법이니까. 아 해장으로 선지국 먹고 싶다. CCTV 없는 해장국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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