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법 시행령 개정, 언론의 백년대계를 세운다는 각오로

[사설]방송법 시행령 개정, 언론의 백년대계를 세운다는 각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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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초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발행된 주간신문인 <렐라치온 Relation>과 <아비소 Aviso>이다. 당시 라이프치히는 유럽 상업의 중심지였고, 상업지역의 최대 관심사인 정치적 상황과 물건 값의 동향을 수집해서 일반인들에게 판매하여 자본이득을 취할 목적으로 신문이 발행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근대 신문은 왕권 강화와 민중동화 등의 공적인 목적으로 발행되기 시작됐고 이를 위해 왕실의 자본이 투입되었지만 당시 문맹률이 높아 신문시장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 현대에 들어 언론의 영향력이 급격히 확대되면서 언론의 공공적 역할의 비중이 높아졌고, 각 나라에서는 공영방송과 상업방송이 균형을 이뤄가면서 발전하고 있다.


공공성이 상업성보다 우선

언론의 역할은 국민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여 사회의 건전한 여론형성 및 여과, 여론유도를 통한 국민의 올바른 정서함양과 문화 창달에 있다. 하지만, 산업이 발전하면서 방송도 하나의 산업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고, 이로 인해 무료 공익적 방송과 상업적 유료방송으로 기능을 분화하는 것이 세계적인 흐름이다. 방송의 공적인 기능은 국민의 여론 형성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상업적 기능보다 중요시되는 것도 세계적인 추세이다. 건전한 공익방송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때 잘못된 정책에 대한 비판 기능을 수행할 수 있고, 국민 여론을 제대로 형성해 나갈 수 있다. 상업방송은 태생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보다 엄격한 제한 기준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사회적 영향력이 큰 만큼 방송은 정치, 자본 등의 외압에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하고, 이를 보장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그 동안 관련 법령에서는 소유제한, 방송 송출 등에 대해 세부적인 사항까지 엄격한 틀 안에서 규제하고 있다.


상업성의 한계

시대가 변하고 경제가 발전하면서 방송의 상업성이 확대되고 있지만, 방송의 공적인 기능은 절대 훼손할 수 없는 가치이다. 최근에 부각되고 있는 방송의 상업성은 품질 좋은 프로그램의 해외 판매가 좋은 예다. 지상파방송사에서 제작하고 있는 프로그램들이 전 세계에 수출되면서 우리나라의 문화도 함께 수출하여 그 나라의 문화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거대 상업자본이 방송사를 운영하면서 좋은 프로그램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상파방송사가 공영성의 틀 안에 갇힘으로서 역설적으로 좋은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었다. 그 동안 정책당국이 지상파방송사 규제를 목적으로 외주제작비율을 높여 왔지만, 제대로 성장한 외주제작사는 전무한 형편이다. 외주제작정책은 실패한 정책이라 할 수 있다.


공공적 기능 강화 필요

언론의 태생이 상업적 목적이었지만, 사회발전에 따라 공공성이 우선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거대 자본이 지상파를 비롯한 각 매체의 방송을 소유하게 될 경우엔 보도기능과 각종 프로그램은 국민(언론 소비자)의 복지향상과는 거리가 먼 자사이기주의적인 방송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바로 상업성의 속성 때문이다. 동일 영역에 있는 자본의 폐해에 대한 비판기능은 전혀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현재의 공영방송에도 문제가 있을 수는 있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이를 보완하고 공공적인 기능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이 강구되어야지, 정부의 비판적인 방송이 된다고 정부의 만들어 놓은 틀 안으로 끌고 들려고만 해서는 안될 것이다. 정부가 신봉하는 자유시장 경쟁체제에 함몰되어 상업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각종 정책과 법률을 개정하려는 것은 󰡐빈대를 잡기위해 초가삼간을 태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방송법 시행령 개정을 위한 공청회가 방송 현업인들의 이의 제기로 연기되었다. 시행령 개정안은 한정된 방송시장 공간에 사업자 확대만 꾀하고 있다. 근시안적인 법률 개정이 아니라 언론의 백년대계를 세운다는 장기적인 계획으로 방송 현업인들이 지적하고 있는 문제가 있는 조항에 대해서는 합리적으로 수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