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HD TV’ 벌써 샀니?…또 사야 해 셋톱박스! ...

[기획] ‘UHD TV’ 벌써 샀니?…또 사야 해 셋톱박스!
방송기술저널이 선정한 2017년 방송계 이슈② - 지상파 UHD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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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지상파 초고화질(UHD) 본방송이 5월 31일 시작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안정적인 지상파 UHD 방송을 위해 지상파 3사의 본방송 연기 요청을 일부 수용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관련 장비 구비가 아직 완료되지 않은 KBS는 약 1개월, 현재 방송 장비 도입이 마무리된 MBC와 SBS는 약 3개월 정도의 테스트 기간을 갖게 됐다. 물론 충분한 시간은 아니지만 지상파 3사는 UHD 프로그램 제작과 송출, 송신 링크 장비의 안정성을 점검하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을 확보하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풀어야 할 문제가 산더미다. 가장 큰 문제는 지상파 UHD 본방송을 시작해도 볼 수 있는 시청자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지상파 UHD 방송 표준인 ATSC 3.0이 적용된 UHD TV는 아직 출시조차 되지 않았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가전사는 2월 말에서 3월 초나 돼야 ATSC 3.0이 적용된 UHD TV가 출시된다고 밝혔다.

소비자만 ‘봉’ 됐다
그렇다면 지금 UHD TV를 가지고 있는 시청자들은? 지금까지 국내에서 판매된 UHD TV는 약 100만 대라고 한다. 그런데 기 판매된 UHD TV는 미국식 표준인 ATSC 3.0이 아니라 유럽식 표준인 DVB-T2가 적용됐다. 여기서부터 또 다른 문제가 시작된다. 유럽식 표준이 적용된 TV로 지상파 UHD 방송을 보려면 별도의 셋톱박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부터 셋톱박스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를 놓고 이해당사자들이 모여 논의했지만 결국 정부는 모든 책임을 소비자에게로 떠넘겼다.

지난해 혼수로 UHD TV를 구입한 박모씨(34)는 “300만 원이 넘는 돈을 들여 UHD TV를 구매했는데 7만 원 상당의 셋톱박스를 또 다시 추가 구매해야 한다는 소식을 최근에야 들었다”며 “구매할 당시에는 아무 말도 없다가 이제 와서 셋톱박스를 또 다시 구매하라고 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 같은 문제는 지난해부터 계속 제기됐다. 신상진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미 100만 대나 팔렸는데 팔고 나서 별도의 솔루션을 또 사라고 하는 것은 나쁘다”며 “미래부가 책임 있는 자세로 문제를 검토하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이미 판매된 TV에 3만 원짜리 수신기를 무상으로 지급할 경우 소요되는 비용은 약 17억 원으로 이는 삼성전자가 미르재단에 기부한 60억 원의 3분의 1도 안 되는 돈”이라며 “삼성전자가 갤럭시노트7을 리콜했듯이 가전사는 UHD TV 방송을 볼 수 있을 것이라 믿고 TV를 구매한 소비자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재유 미래부 제2차관은 분명 이 자리에서 “가전사와 협력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셋톱박스 구매 비용은 소비자의 몫이다.

물론 케이블이나 인터넷TV(IPTV), 위성방송을 통해 지상파를 보는 시청자들의 경우에는 별도의 셋톱박스를 구입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아직 지상파 UHD 본방송의 재송신 문제가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유료방송을 통해 지상파 UHD 방송을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직접 수신?…“공시청은 여전히 안 돼” “답은 안테나”
ATSC3.0 방식이 적용된 UHD TV가 판매된다고 해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지상파 UHD 방송에 대한 논의가 시작할 때만해도 ‘무료 보편적 플랫폼 기능 강화’라는 부분이 가장 크게 부각됐다”며 “지상파 UHD 방송의 중점 목표 중 하나가 직접수신율 제고였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전혀 그 목표를 이룰 수 없는, 아니 가까이 할 수조차 없게 됐다”고 말했다.

지상파 UHD 방송이 무료 보편적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하려면 언제 어디서나 TV 선만 연결하면 방송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직접 수신이라고 하는데 직접 수신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공시청 설비(Master Antenna TV, MATV)를 이용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개별 안테나를 통하는 것이다.

먼저 공시청 설비에 대해서 알아보자. 공시청 설비란 공동주택에서 각 세대별로 안테나를 따로 설치하지 않고도 지상파를 수신할 수 있도록 설치된 공동 수신 설비를 말한다. 관련법령에 따라 반드시 설치해야 하는 방송 시설로 안테나, 신호 증폭기, 케이블 등으로 구성되며 유료방송인 케이블 방송의 수신 계통과는 분리된 설비다.

지난 2004년 법 개정에 따라 2004년 이후에 건축된 아파트의 경우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의 분리배선을 의무화했지만 2004년 이전에 건축된 아파트의 경우 케이블에 의해 대부분의 공시청 시설이 훼손된 상태다. 공동주택의 경우 아파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상황으로 직접 수신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일부 공시청 시설의 경우 UHD 방송을 전송하지 못해 교체가 필요한데 이 역시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김희경 한림대 ICT 정책연구센터 교수는 지난해 한국방송학회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송수신 설비 관리 부족의 경우 해결해야 하는 주체가 건물주 등 개인으로 한정돼 있고 그마저도 의무가 없기 때문에 개선하고자 하는 이가 없고, 고층 건물에 의한 난시청 역시 개선을 요구하는 개인이 사실 관계를 입증해야 하는 등 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에 (공시청 시설 문제는)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현행법 안에서 공시청 시설로 인한 난시청 해결이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다.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지상파가 무료 보편적 플랫폼으로 제 역할을 하려면 공시청 설비만한 것이 없지만 방송법이나 주택법 상에 구체적인 관련 조항을 신설하거나 관리 주체를 명기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기 위해선 시간이 상당히 걸릴 것”이라며 김 교수의 의견에 공감을 표했다.

누굴 위한 ‘지상파 UHD 방송’인가?
공시청 설비가 어렵다고 하면 남은 방법은 안테나뿐이다. 이 때문에 학계와 시민사회단체에서는 내장형 안테나 탑재를 여러 차례 요구했다. 김 교수 역시 앞선 토론회에서 “지상파에서는 UHD 방송의 경우 출력이 좋아 내장형 안테나가 설치된 UHD TV만 제조하면 직접 수신 환경이 개선된다고 이야기하는데 기술적으로 증명만 된다면 무료 플랫폼 기능의 회복을 위해서라도 내장형 안테나 설치 의무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정책위원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면 수신 안테나를 내장해야 한다”며 “지금 내장 안테나가 논의되는 것도 공시청 시설 개보수에 대한 사회적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인데 중장기적으로 방송통신위원회를 비롯한 정책 당국이 보편적 서비스에 대한 고민을 통해 이에 대한 답을 내놓지 않는다면 큰 문제로 확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상파와 학계, 시민사회단체의 내장형 안테나 장착 요구에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가전사에서는 “기술적으로 어렵다”며 회의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동훈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선행개발팀 수석은 “내장 안테나 장착이 직수율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가전사 입장에서는 많이 고민된다”며 여러 가지 기술적 문제를 제기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콘크리트 건물이 많은데 건물 특성상 실내 신호 세기가 적게는 1/10에서 많게는 1/100까지 줄어들기 때문에 실제로는 수신이 안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에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UHD코리아에서는 지상파 UHD 수신 안테나 시범 시연을 여러 차례 보인 바 있는데 목동에서 된다는 건 서울 어디서나 가능하다는 것 아니냐”며 “시청자 입장에서는 이렇게 되는데 왜 하지 않느냐고 물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앞서 UHD코리아는 TV 수상기 전원 어댑터에 수신 신호 필터 및 증폭기를 장착한 ‘Plug-In Antenna(장착형)’와 TV 내부 전자파 극복 기술을 활용한 15mm 두께의 초박형 ‘Stacked Microstrip Antenna(내장형)’를 개발해 시연한 뒤 UHD TV에 적용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방통위 관계자는 “필요하다면 1~2개 모델 출시 후 시장 반응을 보고 확대하지 않을까 싶다”며 내장형 안테나 장착에 긍정적인 태도를 취했다.

안테나 내장형 UHD TV

그러나 가전사의 반발 때문일까 지난해까지 내장형 안테나를 장착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인 듯 보였던 방통위는 가전사의 입장을 수용키로 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방통위는 UHD TV에 안테나를 내장하지 않고 외장형으로 분리해 별도로 판매하겠다는 입장이다. 일부 보급형 제품에 내장형 안테나가 장착되도록 하겠다고 했던 태도를 완전히 바꾼 것이다.

이에 대해 앞서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했던 박모씨는 “이미 UHD TV를 구입한 소비자도, ATSC 3.0이 적용된 TV를 구매할 소비자도 몇 백만 원짜리 TV를 구입한 후 또 다시 셋톱박스와 안테나 등을 추가로 사야 하는 거냐”며 “결국은 소비자만 봉”이라고 꼬집었다.

UHD코리아가 지난해 11월 25일부터 12월 5일까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만20세~만69세 성인 남녀 1,001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 10명 중 8명 이상이 ‘안테나 내장형 UHD TV를 출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삼성전자나 LG전자 등 가전사가 추가 비용, 디자인, 민원 문제 등을 이유로 UHD TV에 안테나를 내장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82.8%가 ‘소비자의 권익을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지상파 UHD 방송은 5월 31일 수도권을 중심으로 시작될 것이고, ATSC 3.0이 적용된 UHD TV는 그 전에 판매가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지상파 UHD 방송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질문이다. 시청자나 소비자를 위한 새로운 서비스일까? 가전사의 배를 불리기 위한 것일까? 정책당국의 오락가락 판단으로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누구인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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