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ICT 기업들의 ‘이유있는’ 콘텐츠 사업 확장

[기고] 글로벌 ICT 기업들의 ‘이유있는’ 콘텐츠 사업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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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신재욱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최근 ICT 기업들이 사업화를 서두르고 있는 영역이 하나 있다. 바로 방송, 영화, 음악, 게임과 같은 콘텐츠 서비스 사업이다. 사실 ICT 기업들이 콘텐츠 사업을 전개한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이슈는 아니다. 애플의 앱 스토어(App Store), 구글의 유튜브(YouTube) 모두 광의의 콘텐츠 사업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콘텐츠 서비스를 전개하는 목적 및 관여 수준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는 자체 제품이나 서비스를 차별화하는 수단으로서만 콘텐츠를 활용해왔다면, 이제는 엄연히 콘텐츠 서비스를 사업 포트폴리오의 한 축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모습이다. 방송사, 영화 스튜디오와 같이 오리지널 콘텐츠도 직접 제작한다.

① 애플 : 마켓 플레이스 넘어 서비스 ‘주체’로

지금까지 애플의 콘텐츠 서비스를 상징해온 용어는 ‘폐쇄형(Closed) 전략’이었다. 아이튠즈(iTunes), 앱 스토어 등 애플의 서비스는 모두 아이폰, 아이패드와 같은 애플의 디바이스를 통해서만 제공돼 왔다. 하지만 최근 이러한 기조가 바뀌고 있다. 애플이 2015년 출시한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애플 뮤직(Apple Music)’은 애플의 디바이스뿐 아니라 구글의 안드로이드(Android)와 같이 경쟁사 플랫폼을 통해서도 제공된다. 수익 모델도 앱 스토어처럼 중개 수수료 방식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월 9.99달러를 직접 과금한다.

방송, 영화와 같은 영상 콘텐츠에서는 더욱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얼마 전 애플이 미국의 미디어 기업 타임 워너(Time Warner)를 인수하려 했었다는 소식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1) CEO 간의 미팅이 아닌 자리에서 제안된 것이라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회사 내부적으로 형성된 기류가 있지 않고서는 쉽게 제안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애플은 자체 콘텐츠도 제작하고 있다. 애플이 인수한 비츠 일렉트로닉스(Beats Electronics)의 창업자 Dr. Dre의 일대기를 그린 6부작 드라마 을 제작 중이고, 미국의 방송, 뮤지컬 제작자들과 함께 애플의 앱 생태계와 관련한 드라마도 기획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2)

② 구글 : 유튜브 통해 유료방송 서비스까지

구글은 2010년 TV용 콘텐츠 플랫폼 구글 TV(Google TV), 2013년 미디어스틱 크롬캐스트(Chromecast)를 출시하는 등 지속적으로 콘텐츠 영역에서 사업 기회를 탐색해왔다. 그리고 최근 구글의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가 진화하는 방향을 보면, 향후 콘텐츠 사업을 더욱 강화하고자 하는 구글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구글이 2006년 인수하면서 구글 콘텐츠 사업의 한 축으로 자리잡은 유튜브는 본래 비전문가들이 제작한 UCC 콘텐츠 위주였고, 수익 모델도 광고 기반이었다. 하지만 구글은 2015년 9.99달러에 광고 없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튜브 레드(YouTube-Red)’를 출시하면서 사업 모델에 변화를 주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 와 같은 오리지널 콘텐츠도 본격적으로 제작하기 시작했다.

구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월 35달러 수준에 여러 방송 채널을 번들링(Bundling)으로 서비스하는 가칭 ‘유튜브 언플러그드(YouTube-Unplugged)’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3)
온라인에 기반을 두고 케이블TV, IPTV와 같은 전통적인 유료방송 사업자들과 경쟁에 나서려는 것이다. 서비스 명칭에 ‘언플러그드(Unplugged)’를 고려하는 점에서도 구글의 전략적 의도는 분명히 느껴진다.

③ 아마존 : 영화 제작·배급까지 공격적 전개

아마존은 이미 2010년 ‘아마존 스튜디오(Amazon Studios)’를 설립하면서 자체적으로 방송용 콘텐츠를 제작해왔고, 최근에는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를 영입해서 영화 투자, 배급으로까지 확장하고 있다.4) 독립 영화 제작자 Ted Hope를 오리지널 영화 제작 책임자로 2015년 영입
지금까지 아마존이 제작 및 투자에 참여한 작품들은 골든 글로브(Golden Globe), 에미 상(Emmy) 등을 60여 차례 수상한 것으로 알려진다. 올해 칸 영화제에서도 아마존이 배급을 맡은 <Café Society(2016, 우디 앨런 감독)>, <아가씨(2016, 박찬욱 감독)> 등 5개 작품이 개막작과 경쟁 부문에 초청되면서 영화 업계에서 화제가 된 바 있다.

아마존은 기존에 리테일 서비스 아마존 프라임(Amazon Prime)에 묶여 있던 콘텐츠 서비스도 독자 사업으로 육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4월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프라임 비디오(Prime Video)’를 별도 출시한 것이다. 서비스 요금도 온라인 동영상 업계의 선두 주자인 넷플릭스(Netflix)보다 1달러 저렴한 월 8.99달러로 책정하면서, 직접적인 경쟁에 나선 모습이다. 아마존은 향후에도 자체 제작한 콘텐츠를 프라임 비디오를 통해 가장 먼저 서비스하는 방식으로 콘텐츠-플랫폼 간 시너지를 강화해나갈 전망이다. 실제로 아마존이 제작한 TV 드라마 은 아마존의 온라인 서비스에서 제공된 지 4주 만에 가장 많이 시청된 콘텐츠에 오르면서 아마존의 플랫폼 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애플, 구글, 아마존 외에도 최근 콘텐츠 사업을 강화하고 있는 ICT 기업은 많다. 대표적으로 중국의 알리바바 그룹은 2014년 중국의 차이나비전 미디어(ChinaVision Media)를 인수, 알리바바 픽쳐스(Alibaba Pictures)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 투자·배급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의 영화관 체인업체 대지극장(大地影院)에 10억 위안을 투자하면서 영화관 사업에도 진출했다.

ICT 기업들이 ‘지금’ 콘텐츠 사업을 강화하는 이유

말 그대로 ICT 시장에는 콘텐츠 바람이 불고 있다. 그리고 많은 경우 단순히 사업성 검토(Tapping) 수준이 아니라 사업 포트폴리오 자체를 콘텐츠 영역으로 서서히 확장하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 이러한 움직임들이 나타나는 것일까.

① 콘텐츠, 불확실성 시대의 ‘검증된’ 가치 요소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기업들은 검증된 사업 기회에 몰리게 된다. 금융 위기에 금값이 오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러한 관점에서 ICT 기업들이 지금 콘텐츠 사업을 강화하는 첫 번째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최근 ICT 업계에서 미래 성장 동력으로 기대되는 많은 키워드들은 아직 ‘돈’을 어떻게 벌 것인가와 같은 실질적 수익 모델이 불확실한 것이 사실이다. IoT의 경우에도 2020년 시장 규모에 대한 전망이 19조 달러(Cisco)부터 1.9조 달러(Gartner)에 이르기까지 조사 기관마다 편차가 크다. 완성도 높은 기술을 과시하던 구글의 로봇 사업 ‘보스턴 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도 최근 도요타와 매각 협상이 진행 중이다.

반면 콘텐츠는 이미 거대 시장이 형성돼 있다. 2015년 기준 글로벌 가정용 비디오 시장은 3,320억 달러, 게임은 940억 달러 규모다.5) 향후 성장성도 높다. 스마트폰과 같이 콘텐츠 소비에 최적화된 디바이스가 보편화되고, 개인 여가 시간을 즐기는 문화가 강해지면서 콘텐츠 소비량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북미의 경우 모든 연령대에서 디지털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쓰이는 시간은 매년 25%씩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6) 젊은 소비자층에서는 TV 드라마 등의 콘텐츠 시리즈를 한 번에 몰아서 시청하는 ‘빈지 뷰잉(Binge viewing)’과 같은 소비 행태도 확산되고 있다. 스마트폰을 통해 모바일 게임을 접하는 빈도가 높아지면서 게임 소비층도 확대되고 있다. 전체 북미 게임 유저 중 50세 이상의 비중은 26%로, 18세 이하 젊은 층의 비중(27%)과 맞먹는다.7) 향후 자율주행차와 같은 커넥티드(Connected) 환경이 무르익을수록 그 속에서 콘텐츠를 즐기기 위한 소비자들의 욕구는 더욱 강해질 가능성이 높다. ICT 사업자들에게 콘텐츠 시장은 무시할 수 없는 기회의 땅인 것이다.

② ICT 기술과 콘텐츠 서비스 간의 융합 가속화
최근 딥 러닝(Deep Learning)과 같은 인공지능과 센서 기술이 발전하고, SNS 등 콘텐츠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채널들이 다양해지면서, 콘텐츠 서비스와 ICT 기술 간의 융합은 활발해지고 있다. 이는 ICT 사업자들이 최근 콘텐츠 사업을 강화하는 두 번째 이유다.

음원 스트리밍 사업자 스포티파이는 2014년 머신 러닝(Machine learning) 기술 기업 ‘에코 네스트(Echo Nest)’를 인수하고, 이를 통해 더욱 고도화된 음악 추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블로그와 SNS 데이터들을 조합해 50억 개 수준으로 음악 취향을 구분한 후, 사용자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음악을 즐겨 듣는지를 분석해서 선호할 만한 음악을 추천해주는 방식이다. 스포티파이의 ‘Running’ 기능은 사용자가 달리는 속도를 스마트폰 센서로 체크하고, 템포에 맞는 음악을 재생해준다.

인공지능은 콘텐츠 제작 단계에도 스며들고 있다. 넷플릭스가 제작해 2013년 에미상 3개 부문을 수상한 에는 빅 데이터 분석 알고리즘이 적용됐다.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드라마와 감독, 배우 간의 조합을 분석해서 실제 캐스팅 및 제작에 활용한 방식이다. 넷플릭스는 , 와 같은 작품의 제작 타당성을 검토하는 단계에서도 빅 데이터 분석 알고리즘을 활용했다.

자신들이 강점을 지닌 첨단 기술을 활용할 여지가 커지는 한 ICT 사업자들은 콘텐츠 서비스를 지속 강화할 것이다. 실제 애플의 ‘Siri’, 구글의 ‘Google Assistant’, 아마존의 ‘Alexa’ 등 주요 기업의 인공지능 플랫폼은 콘텐츠 서비스와 빠르게 접목되고 있다. 애플은 WWDC2016을 통해 향후 애플 TV에 Siri를 적용하고, 콘텐츠 서비스의 사용 편리성을 더욱 높일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③ 콘텐츠 시장 내부로부터의 변화
많은 산업에서 기존의 지배적인 사업 모델이나 경쟁 구도에 변화가 나타나는 시기에 새로운 참여자들이 진입할 여지가 생겨난다. 지금 콘텐츠 업계 내부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패러다임은 ICT 사업자들을 이 시장에 불러들이는 요소다.

무엇보다 방송 시장의 번들링(Bundling) 모델이 약화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방송 시장은 여러 콘텐츠 산업 중에서도 가장 견고한 진입 장벽을 갖추고 있고, 번들링은 그러한 구조의 근간을 이루는 사업 모델이기 때문이다. 음악 시장도 2001년 애플이 아이튠즈를 통해 앨범 단위 사업 모델을 개별 음원 단위 모델로 변화시키면서 시장의 주도권이 ICT 진영으로 빠르게 넘어갔다. 미국의 IPTV사업자 버라이즌(Verizon)은 2015년 ‘Custom TV’ 서비스를 출시했다. 200개 이상의 채널을 임의로 묶어 제공하던 기존의 번들링 방식에서, 소비자가 직접 원하는 채널만을 골라서 시청할 수 있도록 했다. 유료방송 사업자에게 콘텐츠를 제공하는 개별 콘텐츠 사업자들도 직접 온라인을 통해 채널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인기 채널 HBO는 2015년 월 14.99달러에 스마트폰, 셋톱박스, PC 등으로 콘텐츠를 제공하는 ‘HBO Now’를 출시했다. 이러한 모습은 2000년대 초반 음악 시장이 겪었던 변화 모습과 상당 부분 유사하다.

콘텐츠, 미디어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들의 니즈는 진화하고, 기존 콘텐츠 사업자들은 스스로 틀을 깨는 변화들을 계속 시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혁신적인 기술력, 플랫폼 경쟁력을 갖춘 ICT 기업들에게는 시장 참여 기회가 생겨나는 것이다.

콘텐츠 시장, 이종 기업 간의 각축장으로
콘텐츠는 ICT 기업들이 놓쳐서는 안 될 영역이다. 자율주행 기반의 스마트카(Smart Car), 가상현실(Virtual Reality), 스마트홈(Smart Home) 등 미래 환경 속에서 콘텐츠는 핵심적인 역할을 할 요소기 때문이다. 그렇게 볼 때 최근 ICT 기업의 콘텐츠 사업 확대 움직임은 일시적 트렌드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는 결국 콘텐츠 시장이 이종(異種) 기업 간의 각축장에 진입함을 의미한다. 애플은 이미 애플 뮤직으로 스포티파이, 디저(Deezer)와 같은 음악 스트리밍 업체들과 경쟁하고 있다. 아마존은 프라임 비디오를 통해 넷플릭스와 경쟁하는 동시에, 파라마운트 등과 영화 배급 사업에서 경쟁 중이다. 구글이 유튜브 언플러그드를 실제 출시할 경우에는 컴캐스트와 같은 유료방송 사업자들과 맞서게 된다. 그리고 ICT 기업 대부분이 자체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는 점에서 디즈니와 같은 전문 스튜디오도 이들의 잠재적 경쟁 상대로 볼 수 있다. 콘텐츠 산업 대부분의 영역과 밸류 체인에서 ICT 기업들이 기존 사업자들과 충돌하게 되는 양상이다.

그렇다면 결국 방송, 영화, 게임과 같은 콘텐츠 시장도 ICT 사업자가 지배하게 될까? 콘텐츠 사업에 있어서 폭넓은 소비자 기반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부분의 ICT 기업들이 충성도 높은 사용자 기반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잠재력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콘텐츠 시장의 특수한 속성을 감안한다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일례로 영화 제작의 경우 10편을 만들면 1~2개의 히트 작품으로 수익성을 확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투자, 제작, 스타 에이전트 등 축적된 인적 네트워크도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다. ICT 기업들이 경험했던 여타의 산업과는 상이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1980년대 소니가 컬럼비아 픽처스(Columbia Pictures), CBS 레코드(CBS Records) 등을 인수하면서 콘텐츠 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입했지만, 현재 소니의 모습을 성공적으로만 평가하기는 어렵다. 결국 지금 콘텐츠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ICT 기업이 스스로 증명해내야 하는 것이다.

첨단 ICT 기술과 플랫폼, 그리고 자본력을 무기로 콘텐츠 시장에 진입하는 기업, 오랜 사업 경험과 네트워크로 이를 방어하려는 기업. 뺏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 간의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그리고 많은 산업이 그렇듯 이종 기업 간 경쟁을 통해 시장은 한 단계 진화하게 될 것이다.

1)Financial Times, “Apple executive proposed bid for Time Warner”(2016년5월)
2)NY Times, “Apple’s first foray into original TV is a series about apps”(2016년5월)
3)Bloomberg, “YouTube said to plan ‘Unplugged’ online TV service for 2017”(2016년5월)
4)독립 영화 제작자 Ted Hope를 오리지널 영화 제작 책임자로 2015년 영입
5)McKinsey@Company, “Global media report 2015”(2015년9월)
6)Jefferies, “Digital video will displace TV by end of decade, per youtube chief”(2016년1월)
7)ESA, “2016 Essential facts about the computer and video game industry”(2016년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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